민중 속으로 들어가 ‘일본신’이 된 신라도래인의 신
[서울&] [교토, 걸으며 생각하며]
고대 한반도 3국 중 신라계 신사가 다수
주신 ‘스사노오노미코토’는 고대 신라인
신불습합 등으로 점차 불교신으로 변모
오랜 역사 속에서 도래신이 토착신으로
교토 교외 한 절에서 신라명신당 ‘발견’
신사가 사라진 뒤 휴게소 들어선 곳도
제례악 속에 남은 “우리 한신 불러오세”
“한·일 민중들, 역지사지하며 살았으면”
1939년생인 데와 히로아키 선생이 늘 건강하기를 바란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선생이 쓴 <신라신사와 고대 일본>(초간 제목은 ‘신라신들과 고대일본’)이 이 소략한 교토 신라신사 답사기를 촉발했다.
은행원이었던 선생은 1980년대 중반 우연한 인연으로 일본 속의 ‘신라신사’를 찾아나서기 시작해 20여년간 전국 29개 광역을 답사한 내용을 모아 2004년 책을 펴냈다. 그 후 9곳을 추가해 낸 재판(2016년)을 필자가 대학 도서관에서 ‘발견’한 건 2022년이었다.
선생의 책을 보면 신라신사와 관련해 몇 가지 양상이 특징된다.
첫째, 일본에 신라, 백제, 고구려 3국 신사가 있지만 수적으로 신라계가 월등히 많다. 둘째, 신라신사의 계보를 추적해가면 주신이 대개는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鳴命)라는 일본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신라신(인)’에게 집결된다. 셋째, 고대 신라인이 일본 북규슈를 거쳐 현재의 긴키(近畿. 교토, 오사카, 시가, 나라, 효고, 미에, 와카야마 현 등 일본혼슈 중앙부 지역) 지방에 들어온 루트는 크게 세토내해 루트와 동해연안 루트 두 가지이다. 긴키 지역은 지리적으로 이 두 루트가만나는 가장 큰 교차지역으로, 결국 국가로서 일본의 탄생지가 됐다. 넷째로는 신라신의 토착화 내지 현지화 양상이다. ‘토착화’는 신라신사의 신들이 서서히 ‘본적’을 지우고 일본화하는 것이다. 주신도 불교신이나 다른 일본신으로 대체되는 양상이다. ‘현지화’는 일본에서 태어난 신라신의 등장이다. 일본 중세의 무장 미나모토노 요시미쓰가 신라명신이 되어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간 것이 대표적이다.
책을 읽고 나니, 교토 지역만이라도 직접 신라신사를 찾아가보고 싶어졌다. 장보고가 신라명신이 된 세키잔선원과, 미나모토노 요시미쓰가 신라사부로가 된 미이데라 신라선신당(연재 10회, 19회 참조)을 찾아간 것도 그 여정의 일환이었다. 교토부 우지시 미무로도지(三室戶寺) 절에서는 단독 신사로서는 처음으로 신라명신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마치 잃어버린 조상의 사당을 찾은 것 같은, 감정의 과잉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신라대명신사당은 미이데라 절의 권청(勸請)을 받아 미무로도지의 수호신사로 세운 것인데, 현재 모시는 신은 스사노오노미코토와 그의 아들 이타케루노미코토(五十猛命)이다. 원래 절 경내에 있었는데, 근대의 신불분리정책에 따라 현재의 위치(절 입구 매표소 건너편)로 옮겨졌다고 한다. 절 이름 미무로(三室)는 본래 신이 태어난 암굴이나 암실의 의미인 미무로(御室)였다고 하는데, 미무로‘도’(戶)라는 이름으로 미루어 보면, 이 절도 처음에는 신석(神石)신앙의 ‘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이 지방에 들어온 신라인들이 처음에는 산토신(産土神. 자기가 태어난 땅을 지키는 수호신)을 모시다가 불교가 들어오자 절로 바뀌었고, 모시는 신도 부처의 수하권속이 되어간 자취이다. 불교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섞여 들어간 신라신의 모습에, 시간의 풍화 속에서 서서히 ‘토착화’되어가는 도래인의 모습이 겹쳐진다.
신라신사의 토착화 양상을 잘 보여준 신사는 교토 시내 한복판 나카교구의 주택가에 숨은 듯이 서 있는 나카야마(中山)신사였다. 나카야마라는 신사 이름은 이 터에 저택이 있었던 중세 권신의 이름에서 유래하지만, 신사 자체는 교토 천도 당시 대궐의 석창을 지키는 신을 제사하기 위해 간무덴노의 칙령으로 세운 것이었다고 한다. 신사를 세울 당시 이 대궐수호신사의 주신도 스사노오노미코토였다고 하니 고대 일본 민중이 느끼고 있던 이 신의 ‘친화력’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이 신사가 풍파 많은 교토 한복판에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칙령신사라는 ‘족보’와 함께 터 잡은 나카야마가문의 ‘권세’에 더 힘입은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나카야마신사는 1602년 도쿠가와 막부의 니조성이 지어질 때 궁성 안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고, 건물은 1788년 불탄 뒤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사 쪽은 나카야마라는 이름보다는 암(岩)신사라는 ‘본적’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신사 도리이에 걸린 편액도 이와가미미야(岩上宮)이다. 일반 민중에게 익숙한 신석 신앙에 기대어 신도의 신앙심을 붙잡았을 것 같다. 이처럼 교토에는 조상신이 바위를 타고 하늘(바다)에서 왔다는 석주(石舟)신,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낸 바위가 그대로 신이 된 반좌(磐座)신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교토 동북쪽 교외 지역 이와쿠라(岩倉)에 이와쿠라(石座)라는 신사가 있다. 역시 도래인들의 신사이다.
이와쿠라신사는 그 이름처럼 제사를 지내던 바위를 신으로 삼아 880년 이전에 처음 세워졌고, 현재의 신사는 971년 근처 다이운지 절이 세워질 때 창건된 것이라고 한다. 신사에는 동·서 두 개의 신전에 모두 12신이 합사돼 있다. 동사는 주신인 이와쿠라(石座)를 필두로 신라(新羅), 하치만(八幡), 산노(山王), 가스가(春日), 스미요시(住吉), 마쓰오(松尾), 가모(賀茂)를 제사하고, 서사는 동사의 8신에 이세(伊勢), 히라노(平野), 기부네(貴船), 이나리(稻荷) 4신을 더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대부분 신이 신라와 관련이 있는 가운데, 교토를 세운 간무덴노와 밀접한 백제계 히라노신이 합사돼 있는 것이 이채롭다.
이와쿠라신사 옆의 폐사지는 사라져간 신라신의 ‘운명’을 보여준다. 지금은 노인요양시설이 되어 있는 자리에는 본래 다이운지(大雲寺)라는 천태종계의 큰 절이 있었다. 이 절에도 미이데라가 권청한 신라명신당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1982년 출판된 옛 그림(<쇼와교토명소도회>) 속에 사당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1985년 요양시설이 들어설 때 없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림 속 자리에는 주차장과 작은 흡연휴게소가 있었다. 휴게소 기단으로 사용된 석조와 뒤에 쌓여 있는 옛 기와들만이 신사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교토의 옛 궁성에 있었다는 소노가라가미노야시로, 즉 원한신사(園韓神社)는 오래 전에 사라지고 없는 신라신사이다. 소노가미(園神) 1위, 가라가미(韓神) 2위를 모신 격이 높은 궁내청 제사의 신사였다고 한다. 신사 건물은 오닌의 난(1467~1477) 때 소실된 뒤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위치는 현재의 교토시 2조 아동공원 부근으로 비정된다.
신사 이름의 ‘소노’(園)는 신라를 가리킨다. ‘가라’(韓)는 도래계 신의 총칭이지만 여기서는 ‘가라쿠니’(辛国)처럼 신라신으로 본다(백제 또는 가야를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교토건설을 후원한 하타씨족 수장 하타노가와카쓰(秦河勝)의 저택 자리가 왕궁이 됐다는 전승을 생각하면, 신사는 원래 하타씨의 지주 신사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데와 선생에 따르면, 원한신제(園韓神祭)는 지금도 일본 궁중 제사의 하나로 거행된다고 하는데, 가라가미, 즉 한신(韓神)은 제사 마지막 제례악 속에 노래로 불린다고 한다. 그 신락가(神樂歌)의 마지막은 “미시마무명(三島木綿) 어깨에 걸치고, 우리 한신(韓神), 가라가미를 불러오세, 가라가미를 불러오세”라고 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외국에서 만나 친해지면 두 가지에 놀란다는 말이 있다. 처음엔 “왜 이렇게 똑같은 거야?”라며 놀라고, 나중에는 “왜 이렇게 다른 거지?”라고 해서 놀란다고 한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말처럼 쌍둥이 형제가 오랫동안 헤어져 살다가 다시 만날 때 느끼는 동질감과 거리감일 것이다. 지금의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필자도 하고픈 말이 많지만 각설하고, 민중의 정서란 어느 시대, 어디서나 비슷한 것이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두 나라가 서로를 상대했으면 하는 게 필자의 소박한 생각이다.
글·사진 이인우 리쓰메이칸대학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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