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석 노아목재 대표, 무료급식소 봉사하다 직업도 바꿔

김종구 기자 2024. 2. 2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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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소 봉사하고 고치다보니 ‘김반장’ 별명 얻어
어르신 얘기 들어드리고 밥 한끼하며 봉사
김태석 노아목재 대표. 김종구기자

 

“봉사를 통해 삶의 원동력을 얻고, 즐겁게 봉사하다 보니 봉사는 남을 위해서보다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김태석 노원목재 대표(51)의 봉사에 관한 생각이다. 그는 ‘밥 한 끼 얻어먹으러 갑니다’라며 봉사를 하다 생업도 바꾼 사람이다.

김 대표는 부천의 ‘향기네 무료급식소’에서 5년째 무료급식 봉사를 돕고 있다. 생업으로는 인천 남구 숭의동에 있는 ‘노아목재’ 목공소와 ‘김반장’ 인테리어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원이었던 그는 ‘김반장’이란 타이틀로 인테리어와 목재소를 운영하게 된 계기도 향기네 무료급식소라고 한다.

향기네 무료급식소는 2000년부터 매일 부천지역의 홀몸노인과 노숙인 약 150명에게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그가 처음 봉사를 시작한 건 25세쯤 교회를 통해 알게 된 민간 어르신 보호소였다. 처음엔 오물 냄새와 악취가 심해 바로 도망쳐 나왔지만 반년 후엔 그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한번은 보육원에 봉사하러 갔는데 봉사자가 많다 보니 2시간씩 시간을 나눠 봉사하는 현장이었다. 4~5세의 아이들과 놀아주다가 한 아이가 품에 안겨 “가면 안 올 거죠”라고 했다.

그 질문에 김 대표는 솔직히 계속 갈 자신이 없는데 아이에겐 상처가 될 것 같아 그 뒤로는 보육원을 가지 않았다.

김 대표는 ‘주방장이 꿈인 꼬맹이’였다. 태안 출신의 김 대표는 10대에 홀로 올라와 청량리역에서 물로 배를 채우며 굶주렸던 순간이 있었다. 그 바로 옆에 무료급식소가 있었지만 알지 못해 며칠을 힘들게 보낸 적 있어 무료급식소가 있으면 기꺼이 봉사할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는 향기네 무료급식소에서 매일 봉사를 했던 때가 있었다. 그동안 사람들이 불편했던 구석구석을 조금씩 고쳐나가자 그에게 ‘김반장’ 타이틀이 생겼다.

그 후 김반장으로 집수리를 해보라는 제안에 인테리어 사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목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목공소까지 차리게 됐다. 그는 봉사하면서 생각지 못한 분야로 경로가 바뀌었다며 많은 것을 얻는다고 전했다.

그는 주로 어르신들, 장애인 관련 봉사를 계속 이어왔다. 지체‧시각‧농아 장애인들을 만나 봉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봉사자들과 상대 서로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필수적으로 인식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엔 서로 인식이 달라 봉사자들이 불편해지고 봉사 받는 상대자도 불편해져 오래갈 수도 없다고 한다.

김 대표는 봉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봉사는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 맞다”며 “자신이 조금씩 꾸준히 할 수 있을 때 그 마음으로 봉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그냥 밥 한 끼 먹으러 간다고 생각한다. 같이 먹으면서 어르신들 이야기도 듣고 챙겨드리면서 스스로 참 많은 것을 얻는다”고 전했다.

김종구 기자 kjg70@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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