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에서 20등 의사, 국민이 원치 않아”…또 말로 민심 잃는 의협

이승준 기자 2024. 2. 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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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성적을 의사 자질로 삼는 치우친 인식
정부의 의대 정원 2천명 확대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결근 이틀째인 21일 오전 의료진들이 의과대학으로 가는 통로로 향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의대 증원을 주제로 열린 티브이(TV) 토론회에서 ‘반에서 20~30등 하는 의사를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의료계 인사 발언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인재전형 확대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인데 현실과 맞지 않은 않은 주장인데다 고교 ‘등수’로 의사 자질을 판단하는 편향된 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대 증원과 의사 집단행동을 주제로 지난 20일 밤에 방송된 문화방송(MBC) ‘100분토론’에서 의사 쪽을 대변해 나온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지역의사제에서 성적 낮은 학생을 뽑아서 의무근무를 시키면 근로 의욕도 떨어질 것이고, 그 의사한테 (국민들이)진료받고 싶겠나”고 정부의 지역인재전형 확대 방침을 비판하며 ‘성적’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지역의사제로 성적이 많이 떨어지는 인재를 뽑을 수밖에 없다”며 “그 지역 인재를 80% 뽑아봐라. 지역에 있다고 해서 의대를 성적이 반에서 20~30등 하는 사람을 뽑아서 그다음에 또 거기서 의무근무도 시킨다”고 했다. 그는 “국민들의 눈높이를 무시하고 그냥 산술적으로 양만 때워서 맛없는 빵을 만들어서 사회주의에서 배급하듯이 이렇게 하면 국민들은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리며 지역·필수의료를 강화한다는 취지로 지역 의대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을 60% 이상 올린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다.

이 회장의 발언은 “국민들이 최상의 진료를 받고 싶은데 정부가 양(의대 증원)으로 때우려 한다”는 주장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인데 고교 성적 위주로 의사의 자질을 판단하는 의사들의 편향된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지역 학생들을 바라보는 의사들의 시각도 자연스레 드러났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은 21일 브리핑에서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해 “‘지역인재전형을 하면 성적이 낮은 사람이 입학을 해서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 이런 취지의 발언이시라고 이해를 한다.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박 차관은 “반에서 20등, 30등 이게 너무 좀 감성을 자극하는 발언 같다. (지역인재전형이) 의료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하는 거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며 “지방에 있는 학생들은 공부를 못 한다, 이런 감성을 자극하는 것 같은데, 지금도 규정에는 40% 이상의 학생들을 지역 전형으로 뽑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방침은) 이 40%의 수준을 조금 더 올리는 방법을 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의 질이란 것은 좋은 교육 그리고 좋은 실습 이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다음에 의료인으로서의 사명에 대한 또 분명한 생각들이 적립되는 것이 좋은 의사가 되는 것 아니겠냐”며 고교 성적을 언급한 이 회장의 발언을 에둘러 비판했다.

2020년 9월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대 정책을 비판하며 페이스북 등에 올린 게시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이 회장의 발언은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지난해 기준 전국 고등학교의 수는 2379개로, 전교 3등까지 학생을 추리면 7000명이 넘는다. 정부가 의대 입학 정원을 3058명에서 내년부터 5058명으로 늘려도, 하위권 학생의 의대 입학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회장의 발언은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대 정책을 비판하며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올린 게시물로 벌어졌던 논란을 연상케 한다.

2020년 9월1일 의료정책연구소는 페이스북에 ‘정부와 언론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사실: 의사파업을 반대하시는 분들만 풀어보세요’라는 제목의 카드뉴스를 올렸다.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매년 전교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가 예시문으로 제시됐다. 의사들의 ‘특권의식’을 드러낸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연구소는 게시물을 삭제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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