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큰 화면, 넓은 좌석... 안락한 영화관 특별관, 장애인엔 '문전박대'

오세운 2024. 2. 2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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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성동구 CGV왕십리점을 찾은 중증장애인 배재현(45)씨는 상영관 입장이 불가하다는 영화관 직원의 설명에 이렇게 되물었다.

뇌병변을 앓는 배씨는 이날 50석 한정으로 보다 편안한 좌석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특별관을 예매했지만 상영관 입구에서 가로막혔다.

일반 상영관에만 장애인석을 만들어 기준을 충족하면, 좌석당 단가가 높은 특별관에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꼼수가 가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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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 3사 특별관 둘러보니]
계단만 있는 출입구, 입장부터 어려워
장애인석 없어 맨 앞에서 관람하기도
전체 기준 장애인석 비중 정한 현행법
꼼수 가능하게 해... "장애인 배려해야"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배재현씨가 18일 CGV왕십리점 씨네&리빙관에 입장하려다 계단에 가로막혔다. 오세운 기자

"장애인은 왜 일반관에서만 영화를 봐야 하나요?"

18일 오후 서울 성동구 CGV왕십리점을 찾은 중증장애인 배재현(45)씨는 상영관 입장이 불가하다는 영화관 직원의 설명에 이렇게 되물었다. 뇌병변을 앓는 배씨는 이날 50석 한정으로 보다 편안한 좌석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특별관을 예매했지만 상영관 입구에서 가로막혔다. 입구는 그가 탄 전동휠체어가 이동할 수 없는 계단으로 돼 있었다. 배씨는 "장애인에게 편안한 영화 관람은 아직 먼 나라 얘기인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하반신 마비 가수 강원래가 영화관을 찾았다가 휠체어 입장이 어려워 발길을 돌린 사연이 공개됐다. 당시 강씨가 찾은 상영관도 일반관보다 가격이 비싼 특별관(컴포트관)으로, 출입구에 경사로 없이 계단만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3년 넘게 이어진 감염병 사태로 매출 타격이 큰 영화관들은 특별관 운영으로 수익성 회복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상영관 대다수에 장애인 배려공간이 부족해 이들의 문화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인은 돌고 돌아야 특별관 입장

이날 기자와 배씨는 강씨가 다녀간 CGV강변점과 왕십리점을 방문해 상영관 장애인석 현황을 살펴봤다. 두 곳 모두 일반관에는 상영관마다 장애인석이 마련돼 있었다. 큰 화면, 편안한 좌석을 구비한 특별 상영관만 예외였다. 국내 3대 멀티플렉스 롯데시네마(신대방)와 메가박스(목동)도 사정은 비슷했다.

영화관 측은 "강씨 사례는 당시 설 명절 기간이라 관람객이 많아 아르바이트생이 응대가 제대로 안 된 것 같다"며 장애인도 특별관 이용이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출입을 막지는 않는다는 얘기인데, 직접 체험해 보니 입장부터 관람까지 장애인이 넘어야 할 문턱은 수두룩했다.

우선 계단 입구를 이용할 수 없는 휠체어는 출구로 우회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엘리베이터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또 장애인 혼자 이동이 어려워 직원이 문을 잡아주는 등 보조와 안내가 필요했다. 어렵사리 입장해도 휠체어에 앉아 좌석 맨 앞에서 목을 꼿꼿이 세운 채 영화를 봐야 한다. 넓은 좌석 등 특별관이 내세우는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편안한 관람 가로막는 법의 사각지대

롯데시네마 신대방점의 씨네컴포트관. 해당 상영관은 1인칭 소파로 이뤄진 특별관으로 장애인석이 없다. 오세운 기자

영화관 측이 법을 위반한 건 아니다. '장애인등편의법'상 영화관은 관람석 1% 이상을 장애인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구조·위치로 설계해야 한다. 문제는 이 기준이 '개별 상영관'이 아닌 '전체 상영관'으로 설정돼 있다는 점이다. 일반 상영관에만 장애인석을 만들어 기준을 충족하면, 좌석당 단가가 높은 특별관에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꼼수가 가능한 셈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런 사각지대를 인식해 2021년 장애인석을 개별 상영관 기준 1% 이상 설치하라고 권고했다. CGV 측이 권고를 받아들여 2023년까지 상영관마다 장애인 관람석을 1% 넘게 설치하기로 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어 이행은 더디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장애인도 다양한 선택지를 갖고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시설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국회도 개별 상영관을 기준으로 한 장애인석 설치가 가능하게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예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장애인석에 더해 영화관 내 장애인 접근성 향상을 위한 구조 변경이 이뤄지도록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특별관의 특수성 탓에 장애인석 설치가 어려운 곳이 일부 있어 우선 일반관 위주로 설치한 것"이라며 "장애인의 편안한 관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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