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기록적 엔저에...2만엔 덮밥집엔 외국인, 200엔 식당엔 일본인

김지원 기자 2024. 2.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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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인바운드 소비’ 급증… 日 내수 양극화 불러
일본 도쿄 도요스 시장의 한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1만8000엔(약 16만원)어치 초호화 덮밥/X

세계 최대 수산시장인 일본 도쿄 도요스시장의 한 식당에서는 최근 1인분에 1만8000엔(약 16만원)짜리 가이센동(일본식 회덮밥)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도쿄 시내 3성급 호텔 1박 요금에 맞먹는 이 가이센동은 참치·연어·연어알 등이 들어 있는 보통 가이센동과 달리, 성게알 여섯 종류와 주도로(참치 중뱃살) 등 값비싼 재료가 들어간다. ‘고테동(황제 덮밥)’이라고도 하는 이 가이센동은 값이 2000~3000엔 선인 평범한 가이센동의 6~9배나 되지만, 이 식당에서만 하루에 300그릇 넘게 팔린다. 오후 2시 전에 다 팔리는 일이 허다하다고 블룸버그 재팬은 전했다.

최근 일본에서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기록적 엔화 약세로 중국·베트남 등지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 끼에 20만원에 육박하는 고가 음식을 즐기거나 명품을 사들이는 가운데, 고물가에 신음하는 내국인들은 지갑을 닫고 있다. 엔화 약세는 수입 비용을 상승시켜 일본 물가를 끌어올린다. 블룸버그 재팬은 “내국인 손님은 지갑을 열기 어려운 가격이지만, 외국인 손님의 소비는 점점 더 고급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고가 덮밥 열풍 때문에 일본 내국인들 사이에서는 ‘인바운드동(丼)’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의 자국 방문을 뜻하는 ‘인바운드(inbound)’에 일본어로 덮밥을 뜻하는 ‘동(丼)’을 합친 말이다.

발 디딜 틈 없는 日아사쿠사 - 최근 일본에서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들 간 소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기록적인 엔화 약세로 외국인들은 일본을 방문해 고가 음식 등 소비를 즐기는 반면, 내국인들은 수입 물가 상승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 12일 일본 도쿄의 인기 관광지인 아사쿠사의 나카미세 거리 상점가가 관광객으로 가득 찬 모습. /EPA 연합뉴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방일 관광객들의 일본 내 씀씀이를 뜻하는 ‘인바운드 소비’는 지난해 기준 5조2923억엔(약 48조원)에 달한다. ‘연중 5조엔’이라는 일본 관광 당국의 인바운드 소비 목표치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지난해부터 지속된 엔저 현상 때문이다.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지난 14일 달러당 150엔을 돌파(엔화 가치 하락),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석 달 만에 150엔을 넘어섰다. 블룸버그 재팬은 “홋카이도의 한 식당에서는 장어덮밥을 3500엔, 야키토리덮밥을 2000엔에 파는데 손님의 95%가 외국인”이라며 “이런 모습을 전국 관광 명소에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인바운드동’처럼 외국인 손님을 겨냥한 고가 음식을 내놓는 식당도 늘고 있다. 도요스시장의 덮밥집 직원은 현지 매체 ‘스마트플래시’에 “일본인 손님은 비싸게 느끼겠지만, 엄선한 고급 재료를 쓰기 때문에 높은 가격은 당연하다”며 “손님 대부분이 중국인인데, 오전 7시 개점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1970년대 한국에서 정부가 관광산업을 국가 전략 사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한 이후 서울과 부산 등지에 외국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한 고급 호텔 음식점·커피숍 등이 생겨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명품 의류나 가방, 보석 등 고가 제품 소비도 크게 늘어 일본 백화점들의 지난해 하반기 면세 매출액은 2000억엔을 기록, 하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관광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중 1인당 지출액이 큰 외국인 관광객의 국적은 중국(12만6516엔), 베트남(8만9002엔), 말레이시아(7만898엔) 순으로 집계됐다.

반면 일본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로 4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세를 감안한 1인당 실질임금이 전년 대비 2.5% 감소하면서 일본 내국인들의 체감 경기는 더 혹독하게 나빠졌다. 실제로 일본의 개인 소비 지출은 지난해 2분기부터 3분기 연속으로 전 분기 대비 감소세가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일본을 찾아 돈을 펑펑 쓰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외식값이 상향 평준화하자 내국인들은 허리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생활이 이전보다 힘들어져서 점심값을 200엔으로 한정하고 있다” “싸게 장 보는 방법을 알려 달라” 같은 글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하세가와 요시유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도쿄무역관은 “국내 여행·출장에 나선 일본 내국인들이 물가가 비싸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1월 저소득층 지원금과 전기·가스 요금 보조금 대책을 발표하는 등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인바운드 소비

인바운드(inbound)는 외국인의 국내 여행, 아웃바운드(outbound)는 내국인의 해외여행을 각각 뜻한다. 엔저 장기화로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이들의 일본 내 식당·호텔·면세점 등 소비도 급증하자 일본 정부는 ‘인바운드 소비’라는 표현을 따로 쓰며 관련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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