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언론 마녀사냥 용납하면 ‘이선균’ 또 나올 것”

이춘재 기자 2024. 2. 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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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문화예술인연대회의’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

연예계 인사 2800명 참여한 연대회의
국회·경찰·KBS 찾아가 후속 대책 요구
KBS는 기사 삭제 거부, 경찰은 수사 시늉만
“이선균 책임감 강하고, 평판 좋은 배우”
“‘마녀사냥’으로 그를 잃은 건 영화계 큰 손실”
“그의 죽음 진상규명 위해 끝까지 활동할 것”
이선균씨는 포토라인에 세 번이나 서야 했다. 이씨 쪽은 약물검사에서 음성이 나온 다음인 세 번째 조사는 비공개로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진은 2017년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에 마련된 포토라인에 마이크들이 놓인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배우 이선균씨가 세상을 떠난 지 두 달이 채 안 됐는데도 벌써 세상에서 잊힌 느낌이다. 신문이나 방송, 심지어 유튜브까지 더 이상 ‘이선균’을 말하지 않는다. 수사기관과 언론의 ‘야합’이 얼마나 위험한지 적나라하게 목격하고 분노를 쏟아냈지만, 아직 아무런 책임도 묻지 못했다.

지난 1월12일 영화감독 봉준호, 배우 김의성, 가수 윤종신 등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성명을 발표한 것은 더 이상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2800명이 넘는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칭)’를 결성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연대회의는 성명서 발표 뒤 국회와 경찰청, 한국방송(KBS)을 찾아가 각각 수사기밀 유출에 대한 진상규명(경찰청)과 기사 삭제(한국방송), 관련 법 제정(국회) 등을 요구했다. 국회는 더불어민주당 인권위원장 주철현 의원이 ‘이선균 방지법(수사 관련 공무원의 인권침해 방지법)’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도 같은 취지의 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청과 케이비에스는 이런 요구에 냉담하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씨를 수사한 인천경찰청 마약수사팀을 지난 1월23일 압수수색한 뒤로 감감무소식이다. ‘수사기밀 유출 의혹 규명’이라고 떠들썩하게 언론에 공개했지만, 정작 경찰수사 문제점을 보도한 언론사를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수사 의도가 상당히 의심스럽다. 케이비에스는 이씨와 유흥업소 종업원(구속)의 통화 녹취록을 보도한 문제의 기사 삭제를 거부했다. 케이비에스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다각적 취재와 검증 과정을 거친 기사”라며 “이씨의 죽음과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는 이유를 댔다.

장원석 비에이(BA)엔터테인먼트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이선균 사건’ 문화예술인연대회의 활동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8일 ‘이선균’을 이렇게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에 모인 연대회의의 실무를 맡은 장원석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장 대표는 영화 ‘끝까지 간다’(2014)로 이씨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장 대표의 시나리오를 본 이씨가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은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장 대표는 “케이비에스가 기사 삭제를 거부한 이유에 공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영방송의 권위를 스스로 포기했다.” 영화 및 드라마 제작자가 케이비에스와 각을 세우는 건 부담스러울텐데도 그는 단호하게 케이비에스를 비판했다. 장 대표뿐 아니다. 앞서 연대회의의 성명서 발표 때 가수 윤종신은 “혐의 사실과는 동떨어진 사적 대화를 보도한 케이비에스는 공영방송의 명예를 걸고 오로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고 일갈했다. 장 대표는 “성명서 발표에 나서주신 모든 분들이 큰 용기를 내주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연예인들이 혹시라도 닥칠 ‘불이익’을 감수하고 나선 것은 그만큼 ‘이선균 사건’이 준 충격이 컸기 때문”이라며 “이번에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안 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케이비에스 못지않은 ‘악의적’ 보도가 티브이조선의 유서 내용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유족이 공개하지도 않은 유서 내용을 보도한 이 기사에 대해 이씨의 소속사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는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해당 기자를 고소했다. 유서 내용을 ‘제3자’에게 전해듣고 작성된 듯한 이 기사에 대해 소속사는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했다. 티브이조선은 이 기사를 삭제한 상태다. 하지만 이 기사를 인용 보도한 다른 인터넷 기사들은 지금도 온라인에서 유통되고 있다.

이씨에 대한 경찰의 내사 착수 기사가 처음 보도된 지난해 10월20일부터 그가 숨진 채 발견된 12월27일까지 68일은 ‘야만의 시간’이었다. 장 대표는 “사형제가 사실상 폐지된 나라에서 수사 도중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도 기가 막힌다”고 했다. 유죄가 확정된 사형수도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헌법에 ‘무죄 추정의 원칙’이 보장된 나라에서 기소도 안 된 사람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이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를 처음 봤을 때 장 대표를 비롯한 지인들은 가짜뉴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장 대표는 “다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약에 의존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방 아닌 걸로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이씨에 대한 3차례 마약 검사에선 모두 음성반응이 나왔다.

배우 이선균씨 발인식이 열린 2023년 12월29일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운구차가 유족과 동료들의 배웅을 받으며 병원을 나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하지만 경찰은 좀처럼 이씨를 놔주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검사에서도 음성반응이 나오면 무혐의 처분하는 게 마약수사의 일반적인 처리 방식이다. 이씨와 같은 시기, 같은 수사팀(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서 조사를 받았던 가수 지드래곤(본명 권지용)도 국과수의 정밀검사 결과 음성반응이 나와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됐다. 하지만 이씨는 계속 경찰의 소환 요청을 받았다. 그것도 소환 장면이 언론에 공개되도록 포토라인에 세워졌다. 이씨의 변호인은 세 번째 소환은 비공개로 해줄 것을 경찰에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전형적인 ‘망신주기’였다. 장 대표는 “세 차례의 공개소환 조사와 19시간의 밤샘 조사 등 이런 수사방식은 인권을 위해 원칙적으로 금지된 것인데, 왜 이번 사건에선 수사 원칙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더욱이 이씨를 조사한 내용이 다음날 언론에 고스란히 보도됐다. 명백한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김희중 인천경찰청장은 이씨가 숨진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의 공개 출석 요구나 수사기밀 유출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기자들에게 “경찰 수사가 잘못돼서 그런 결과(이씨의 죽음)가 나왔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5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사건의 시작부터 이씨 소환까지 (경찰의) 정보 유출이 있었다”고 밝혔다. 우 본부장은 “언론에 보도된 사진이 우리(경찰) 보고서 원본이었다”, “공식적으로 인천경찰청에서 발표한 적이 없는 소환 날짜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앞서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희중 인천경찰청장이 했던 말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우 본부장은 신속한 수사로 수사기밀 유출의 전모를 밝히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내사 단계에서 이씨의 혐의를 언론에 흘렸다. 매우 이례적이다. 내사는 혐의가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해서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가 아니다. 혐의를 입증할 물증이 없기 때문에 수사로 전환될지도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경찰 수뇌부가 ‘마약수사 실적’을 독려해도 ‘일개 경찰’이 함부로 언론플레이를 하지 못한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음모론’이 제기되는 바탕이다. 당시 대통령실은 김승희 의전비서관 자녀의 학폭 의혹이 터져 곤경에 빠져 있었다. 야당은 경찰이 이 이슈를 덮기 위해 이씨의 마약 내사 정보를 흘린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실관계는 확인된 게 없다.

지난 2017년 개봉한 영화 ‘더 킹’은 유력 대선주자의 비리 의혹을 덮기 위해 검찰이 캐비닛에 묵혀두었던 연예인 스캔들을 터뜨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 대표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음모론 따위는 믿고 싶지 않다”고 단언했다. 그는 “권력이 자신의 비리를 덮기 위해 다른 사건을 만든다? 차마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만약 (음모론이) 진짜 사실이라면 언젠가는 밝혀지지 않을까? 반드시 밝혀질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런 권력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12일 오전 열린 ‘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봉준호 감독(가운데)이 생각에 잠겨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씨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문화예술인들이 뜻을 모은 곳은 이씨의 빈소에서였다. 배우 문성근은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그날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문상객이 가득 차 있는데 조용하다. 큰 소리 내는 사람이 없다. 빈소에 도착해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일단 부둥켜안고 운다. 큰 소리는 안 내고 흐느낀다. 그러다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듯 한 친구가 비명처럼 말하더라. ‘연예인이라고 이렇게 마녀사냥 당해도 되는 거냐.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 소리들이 불쑥불쑥 들렸다.” 장례식이 끝난 뒤 장 대표를 비롯해 이씨와 동년배인 배우, 감독, 제작자들이 성명서 작업에 나섰다. 불과 10여일 만에 2천여명이 서명했다. 문화예술계에서 이런 규모의 집단서명은 처음이다. 장 대표는 “이전에도 연예계에서 수사 도중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재판 결과 무죄를 받아도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 때문에 연예계에서 퇴출되거나, 장시간 활동을 중단한 배우들도 많다. 이런 경험들이 이번 대규모 집단서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지난해 12월29일 이씨의 발인식에서 오열하는 부인 전혜진씨와 영정 사진을 든 어린 아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공개돼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씨와 같은 소속사인 전씨는 최근 소속사 공식 채널에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있는 프로필 사진을 올려 배우 활동을 곧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장 대표는 “그런 큰일을 겪은 가족이 어떻게 잘 지내겠나. 잘 지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씨의 ‘마약 수사’ 기사가 쏟아진 직후 그가 출연한 영화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기우였다. 배우 정유미와 함께 출연한 영화 ‘잠’은 최근 프랑스 제라르메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대상을 받았다. 미개봉 영화 ‘탈출’과 ‘행복의 나라’도 개봉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부인 전씨가 출연한 영화 ‘크로스’는 올 추석 무렵 개봉할 예정이다. 이씨의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그가 “배우로서의 책임감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연예계에서 평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기간 여러 사람의 평가가 쌓여서 한 배우의 평판이 만들어진다. 고인은 평판이 매우 좋은 분”이라고 말했다. 그런 배우를 잃게 된 것은 한국 영화계의 큰 손실이자, 비극이다. 만약 ‘망신주기’ 수사가 아니었다면, “고인은 재판 결과에 따른 대가를 당당하게 치렀을 것”이라고 장 대표는 믿고 있다. 장 대표는 언론도 바뀌어야 한다고 각별히 주문했다. 그는 “언론이 연예인 사건을 흥미 위주로 다루고 있는 것 아닌가. 최소한의 자제도, 필터링도 작동하지 않은 채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가 계속 됐다. 이는 심각한 폭력이다. 유튜버가 만든 콘텐츠를 언론이 받아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더 중요한 사건들이 많은데, 왜 사실로 확인된 것도 아닌 내용을 그렇게 많이 썼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같은 그런 기사를 더 많이 써야 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이선균’이 이렇게 잊혀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장 대표는 “누구나 이런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유명 연예인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도 이선균씨가 겪었던 것처럼 극한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진 것이다. 그래서 제도적 개선이 절실하다고 장 대표는 말했다. 30개 단체, 2831명이 참여한 연대회의는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수사정보 유출 의혹 진상규명 △고인에 대한 선정적 보도 삭제 △이선균 방지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그는 “이선균의 죽음은 문화예술계 사람들에게 일종의 트라우마가 됐다. ‘이런 비극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다. ‘왜 우린 가만히 있었을까’라는 자책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선균 방지법’에 대해 “수사기관의 잘못된 판단으로 내가 한 일보다 훨씬 심하게 인격모독을 겪는다면, 부당하게 공개적으로 망신당하고 여론재판을 받는다면 누가 버틸 수 있겠는가”라면서 “그래서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그 필요성을 언급했다. 구체적으로는 사문화된 피의사실공표죄를 제대로 정비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고인이 우리에게 ‘이런 일을 이젠 끝내달라’는 숙제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이선균 사건’이 이대로 잊혀져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어떤 사건이든 잊혀지기 마련이다. 비극적인 사건을 망각하는 건 순작용도 분명 있다. 하지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사건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기 전까지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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