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잇슈]후분양 늘었는데 분양가가 왜 이렇죠?
건설사, 규제 피해 분양가 높일 수 있지만
청약자에겐 입주까지 자금마련 부담 불가피
건축공정 80% 이후 입주자를 모집하는 후분양제 아파트가 지난해 분양 물량의 16%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율로는 1년 새 2배 높아진 것이다. 고분양가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데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종전보다 쉽도록 공급자 유인책이 마련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수분양자 입장에선 실물을 확인하고 청약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선분양 대비 높은 분양가는 부담 요소다. 전문가들은 후분양 단지 청약시 중도금, 잔금 납부 일정이 촉박한 점을 고려해 자금운용 계획을 치밀하게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골조공사 마치면 HUG 보증 없이 후분양 가능
착공 직후 입주자를 모집하는 선분양과 달리 후분양은 일정 수준 공사가 진행된 시점에 분양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는 2018년 '제2차 장기주거종합계획 수정계획'에서 후분양 활성화 방안을 담기도 했다.
여기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경기주택도시공사(GH) 등 공공부문에 후분양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민간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후분양 사업자에 공공택지를 우선공급하고 기금대출 지원대상 확대, 후분양 대출 보증료율 인하 등 혜택을 주기로 했다.
민간 사업자들은 인센티브를 받는 것과 더불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관리 등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후분양에 주목했다. 일례로 '과천주공1단지(과천 푸르지오 써밋)'는 2017년 3.3㎡(평)당 3313만원으로 선분양하려 했으나 HUG가 분양보증을 거부하면서 2019년 후분양으로 전환했다. 평당 분양가는 3998만원으로 높였다.
후분양을 장려하겠다던 정부는 이를 '꼼수'로 보고 그해말 HUG의 분양보증 없이 후분양이 가능한 공정률을 60%에서 80%로 높였다. 기존에는 전체 동의 3분의 2 이상 골조공사가 완료되면 HUG의 분양보증 없이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었지만 법 개정으로 전체 동의 골조공사가 완료된 때에야 가능해진 것이다.
HUG 관계자는 "선분양은 HUG의 분양보증을 받아야만 입주자모집을 실시할 수 있지만, 후분양은 공정률 80%를 충족하고 주택건설사업자의 연대보증을 받은 경우 분양보증 없이도 입주자모집공고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6%가 후분양…"높은 분양가 기대감"
이후 광주 화정, 인천 검단 등에서 부실시공 이슈가 불거지면서 후분양이 다시 대안으로 부상했다. 2006년부터 공정률 80% 후분양을 시범 도입한 SH는 2022년에 90%로 기준을 높였다. 사전청약을 실시한 마곡지구 16단지와 위례지구 A1-14블록 등이 본청약에 나서는 2027년께 세부내용이 확정될 예정이다.
고금리 지속과 자잿값 상승에 따라 분양가가 고공행진 하는 점도 선분양을 포기하고 후분양으로 분양 시기를 늦추는 배경이 됐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분양한 아파트(19만2425가구) 중 16.2%가 후분양이었다. 후분양 비율이 2022년(8.3%) 대비 2배로 상승한 것이다.
김성환 건산연 부연구위원은 "현재 건설사들이 후분양을 택하는 주된 이유는 분양가를 높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HUG 분양보증에서 제외돼 고분양가 심사를 받지 않으며,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더라도 택지비, 건축비 등에서 유리하다는 기대감에 선택 비율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앞서 서울 영등포구 '브라이튼 여의도'와 용산구 '한남더힐', '나인원한남' 등 초고급(하이엔드) 단지의 경우 고분양가 규제를 피하고자 선분양 대신 '선임대 후분양' 방식을 택했다.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으면 주변 구축아파트 시세대로 따라야 해 분양수익을 예상만큼 뽑지 못하고, '명품 마케팅'에도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최근 후분양에 나선 단지들의 청약 성적표는 그리 좋지 못했다. 경기 광명시 '광명2구역(트리우스광명)'은 2021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아 평당 2000만원의 분양가를 받아들자 선분양을 포기했다. 이후 지난해 10월 평당 3270만원에 후분양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고분양가 논란으로 미분양이 발생해 지난 6~7일 임의공급을 실시했다. 여기서는 105가구 모집에 344명이 신청했다.
서울 동작구 상도11구역을 재개발한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 역시 2021년 선분양 예정이었으나 부지 소유권 문제 등으로 분양이 밀려 후분양을 택했다. 시공사는 PF로 공사비 70%를 확보해 우선 착공했으며 토지 문제가 해소된 뒤 분양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이 단지는 지난해 9월 본청약에서 전타입 1순위 마감에 성공했지만 계약 포기가 속출해 올해 임의공급을 세 차례 실시했다. 공급물량은 1차 197가구, 2차 158가구, 3차 92가구였다. 현재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 동호지정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실물 보고 청약 장점…자금 확보 부담도
자금 조달이 쉬운 대형 건설사라면 후분양의 장점이 작지 않다. 비교적 여유롭게 사업을 진행한 뒤 입주께 시장상황을 고려해 분양가를 책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분양대금을 받아 공사비로 활용하는 선분양과 달리 후분양은 토지비와 사업비는 물론 공사비까지 PF로 조달 가능하다"며 "공사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해 시장상황을 지켜보며 사업을 진행할 수 있고, 모델하우스나 분양 제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수분양자 입장에선 주택의 일조권, 조망권, 동별간격 등 많은 정보를 확인한 뒤 청약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선분양에서 막연하게 이미지나 VR로만 접할 수 있는 특장점을 후분양은 실물로 확인할 수 있어 청약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SH가 지난해 공개한 '서울시 주거정책에 대한 서울시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민 1000명 중 79.6%가 후분양 제도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하자 예방과 부동산시장 혼란 저감 등 효과가 기대된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높은 분양가와 촉박한 일정은 부담이다. 3~4년 전에 분양가를 책정하는 선분양과 달리 후분양은 입주와 가까운 시점에 공급돼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높다. 계약금 납부 이후 중도금, 잔금을 치를 날이 금방 찾아오는 만큼 자금 확보도 필수다.
김성환 부연구위원은 "높은 분양가를 감당할 소비자가 한정돼 있다"며 "높은 분양가에 버금가는 입지를 확보한 단지만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권일 팀장은 "후분양은 입주시점의 가치가 반영된 만큼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더 높아 보일 수 있다"며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 일정이 분산돼 여유로운 선분양과 달리 후분양은 잔금까지의 기간이 촉박해 자금여력이 부족한 사람 입장에선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가격 경쟁력을 충분히 따져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진수 (jskim@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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