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줌마] "20대로 돌아가고 싶냐구요? 70대인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윤성중 2024. 2. 2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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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줌마'가 간다 (7) 하남 양재연씨
하남의 양재연씨 집. 그녀는 올해 72세로 작년 말 100대 명산을 완등했다. 뒤에 앉아 있는 남편 윤근일씨가 그녀의 든든한 후원자다.

양재연씨를 만나기 위해서 5호선 미사역에서 내렸다. 출구로 나와서 두리번댔다. 뒤쪽 사거리는 복잡했다. 사람과 차가 많았고, 높은 빌딩들이 무섭게 솟아 있었다. 수없이 많은 창문 안에는 또 사람들이 가득 들어앉아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신기했다. '이 거대한 도시는 대체 언제 생겼을까?' 서울에서 사는 나는 서울 바깥에 있는 이런 거대한 공간과 맞닥뜨렸을 때 가끔 생각의 방향을 잃고 헤맨다. 이 도시를 만들고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다시 양재연씨를 생각했다.

양재연씨는 올해 72세라고 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알프스 몽블랑 둘레길TMB을 걸었으며 작년 말 '100대 명산'을 완주했고, 그 와중에 영국 CTCCoast to Coast Walk까지 완주했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도시와 대단한 그녀의 관계를 상상했다. 이를테면 이렇게. '그녀의 도전정신은 이 거대함에서 비롯됐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도시에 사는 사람이 많다' 등등의 가설을 세웠지만 이걸 뒷받침할 만한 주장이 떠오르지 않았다(말이 안 되는 가설이니까). 머릿속으로 저 생각들을 지우고 다른 이미지를 떠올렸다. 거대한 생명체 안에서 꼼지락대는 어떤 세포! 그녀는 이른바 조혈모세포다. 끊임없이 자가 복제하면서(그녀는 자신의 산행기와 여행기를 글로 기록하면서 책을 만들고 있다. 그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거대 도시의 구성 요소로 왕성하다. 나는 또 생각했다. 그녀에게 '건재'라는 왕관이라도 씌워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신세한탄 한 적 없음!

"띵동!" 그녀의 집 앞에서 벨을 눌렀다. 현관문이 열렸다. 백발의 노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는 키가 작았다. 국내와 해외의 산길을 맹렬하게 다닌 사람 같지 않았다. 집안은 조용했다. 남편 윤근일씨가 뒤에서 나타났다. 그는 키가 컸다. 그가 오히려 '산악인' 같았다.

"제가 있으면 방해가 될 테니 아내와 이야기 나누세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안방으로 사라졌다. 나는 거실 식탁에 앉았다. 맞은편에 양재연씨가 앉았다. 그녀의 얼굴에선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가 할머니라면 할머니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할머니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사람에게 알렸으면 좋겠어요."

양재연씨는 환한 표정으로 내 앞에 여러 문서와 책을 펼쳐놨다. 식탁의 절반이 종이들로 덮였다. 2015년 남편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내용, 딸과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았을 때를 기록한 책과 최근 100대 명산 완등 기록들, 인터넷 카페에 올린 본인이 작성한 산행과 관련한 시와 글이었다. 나는 이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진 않았다. 그녀가 산에서 겪은 경험담보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재연씨는 내 앞에서 자신의 삶과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진 않았다. "제가 여태 살아온 이력이 산과 관련이 있을까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설득했다.

'명산 100' 완주 인증서. 국내 100개 산 정상에 모두 오르는데 505일 걸렸다.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기록이다.

"선생님이 갑자기 산을 타게 된 건 아닐 텐데요. 분명 인생의 어떤 변곡점이 선생님을 산으로 이끌었다고 봅니다. 저는 그것이 궁금해요. 왜 늦은 나이에 이처럼 맹렬해지셨을까요? 분명 어떤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수긍했는데, 그래도 자신의 삶이 세세하게 공개되는 것이 썩 내키진 않았던 모양이다. 아래와 같이 요약해 달라고만 했다.

양재연씨는 1952년 부산에서 맏딸로 태어났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녀는 부모님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이 대구로 이사 갔고, 그녀는 대구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쳤다. 교대를 나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다. 첫 발령지인 경주에서 남편(남편 윤근일씨는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으로 천마총 발굴에 참여했다)을 만나서 결혼했다. 여기서 10년 동안 육아와 직장생활로 바쁜 일상을 보냈다. 다른 어떤 여가생활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1990년 즈음 남편이 서울로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가족이 서울로 이사했다. 양재연씨는 경주에서 다녔던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서울에서 다시 임용고시에 응시, 합격한 후 다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다. 서울에서도 직장에 다니면서 가정을 돌봤다.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해보거나 할 생각은 전혀 못했다. 여유가 생긴 건 2014년 퇴직하고 나서부터였다.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녀는 퇴직 이전 자신의 이야기를 얼른 마무리 짓고 싶은 것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또 매사에 적극적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신세한탄을 한 적이 없고 한탄할 만한 일을 겪은 적도 없어요. 지극히 평범했어요."

양재연씨가 퇴직하자마자 산행을 시작한 건 아니다. 그녀는 먼저 '유유자적'이라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카페 회원들과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찾아 걸어 다녔다. 코스가 주로 평지를 걷는 정도의 난이도여서 다니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꽂혔다. 그녀는 그 이유에 대해 특별한 설명을 달지 않았다. "그냥 좋은 길이 있다면 가봐야지" 싶었단다. 그녀가 2015년 남편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다음 만든 책자(Camino de Santiago) 프롤로그에 더 자세하게 나와 있다.

그녀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알프스 몽블랑 둘레길, 영국 CTC를 걸었다. 다녀와서 만든 기록들이 테이블의 절반을 덮었다.

"어느 날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이들의 글을 읽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후배 교사 K의 글은 구체적이고 일목요연하게 요약정리가 잘되어 있어 나는 더욱 꼼꼼하게 읽었고, 곧 자문을 구한 뒤 일사천리로 진행한 것이다.- 중략 - 남편은 작년 3월 말에 척추관 협착증으로 8시간 30분에 걸쳐 대수술을 받아 아직 회복 중에 있고, 나도 반월상 연골 파열로 왼쪽 무릎을 시술하였으며, 재작년에는 뒤로 넘어져 요추압박 골절로 한 달을 꼼짝 않고 누워서 보존치료를 받았으니, 부부가 시원찮은 상태라 장거리 여행은 꿈도 못 꿀 판이다. 하지만 너무나 가고 싶은 마음에,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예약을 하겠노라 하니 남편이 힘없이 '그래'라고 한다. 그리고 남편은 그날 밤 화장실을 일곱 번이나 들락거리며 설사를 한다. 보통 그 정도면 내가 양보하거나 포기해 버리는데 그러기 싫었다. 짐짓 모른 체 한다."

여행 준비 또한 철저하게 했다. 그녀는 컴퓨터 앞에서 날밤을 새며 자료 수집에 열중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민박집까지 가는 방법, 민박집에서 자고 다음날 이동 방법, 볼거리, 먹을거리 등 코스 정보를 찾았다. 눈이 나빠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기가 힘들어 아예 문서를 출력했다. 그 양은 자그마치 84쪽에 달했다. 여행 정보를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그녀는 현지 교통편, 숙박 예약 등도 혼자서 해결했다. 영어 사전을 펼쳐놓고 안내문을 해석하거나 여러 블로거들의 기록을 수없이 참고했다. 결국 그녀는 남편과 39일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여행은 무사히 끝났다. 그녀는 책 에필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이번 여행길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단어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Hello again!'이다. 다시 만나 반가워요. 얼마나 좋은 말인가? 얼마나 다정하고 정감 있는 말인가? 미국인 할리는 길을 걷다가 우리를 볼 때마다 반가워서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Hello again! How are you?'라고 한다.

그녀가 신는 등산화. 많이 낡았다.

내가 영국인 질에게 오늘 날씨가 좋았고, 공기는 신선하고 경치가 너무너무 아름다웠노라고 주저리주저리 말하면 그녀는 내 말에 수긍하느라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도 경치를 떠올리면서 딱 한마디 한다. 'Lovely!' 야! 이 말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Hello again'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따스한 마음이고, 'Lovely!'는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기쁨이다."

내가 아는 어떤 노인은 스마트폰으로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려다가 끝내 스마트폰을 던져버렸다. 최근에 본 어떤 노인은 매장에 설치된 '키오스크(무인단말기)' 앞에서 30분간 서서 버튼을 눌러대다가 포기하고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갔다. 40대인 나 역시 국세청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여러 링크를 타고 길을 잃은 것처럼 헤맸다. 간편해진 것 같지만 여러모로 더욱 복잡해진 AI 디지털 시대에 양재연씨 같은 '노인' 대다수는 여행사 없이 떠나는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꾼다. 그런데 그녀는 이렇게 외쳤다.

"'하고 싶은 마음'과 '호기심'만 있다면 누구나 저처럼 할 수 있어요!"

그녀가 자주 이용하는 등산 배낭. 배낭에는 서울둘레길 완주 배지 등 여러 코스에서 얻은 핀버튼이 달려 있다

나는 믿어지지 않아서 더 캐물었다.

"혼자서 여행 정보를 알아보신 건가요? 여행사를 통한 게 아니고요?"

그녀가 답했다.

"네, 그런데 어렵지 않아요. 출발지인 생장에 도착하면 순례자 사무실이 있어요. 거기 가서 등록하면 일정표와 고도표를 줘요. 그걸 보고 그대로 따라가면 돼요.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미 많이 알려졌잖아요. 여러 정보를 쉽게 찾았어요. 길 찾기도 어렵지 않았어요."

"말이 안 통했을 텐데요?"

"영어는 잘 못해요. 중학생 정도 실력을 갖고 있는데, 그걸로도 충분했어요."

'소용돌이'처럼 돌진하다

"저는 뭐든지 하는 사람이에요. 목표만 설정되면 무조건 달리죠."

소용돌이 같은 성격을 가진 양재연씨가 100대 명산 완등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때는 2년 전이다. 퇴직하고 해외에서 여러 트레킹 코스에 도전하는 중에 그리기, 만들기, 수예, 서예, 뜨개질, 노래 부르기, 글쓰기 등 이것저것 배웠다. 그런데 소질이 없었던 탓에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후배가 100대 명산 등정을 권유했다. 그녀는 산을 좋아했는데, 그동안 제대로 정상을 밟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날 5시간쯤 걸려 도봉산 신선대에 올랐는데, 기분이 좋았다.

"정상에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어요. 그랬더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왠지 100개 산 정상 등정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요."

집 뒤 공원에 있는 구산 중턱에 선 양재연씨. 그녀는 걸음이 빨랐다. 쫓아갈 때 숨이 약간 찼는데, 이 속도로 산을 탄다고 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달렸다'. 물론 힘들었다. 이전의 '걷기'와 '100대 명산 완등'은 달랐다. 이전까지 평지를 걸어 견딜 만했는데, 오르막을 올라야 하니 웬만한 각오와 기운 없이 산에 가는 게 쉽지 않았다.

"해남 달마산 정상을 밟는데 세 번 도전했어요. 높이가 489m밖에 안 됐는데도 말이죠. 산 능선이 전부 바윗덩어리였어요.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주저하는 바람에 시간이 항상 부족했죠. 첫 번째 도전 때는 정상을 600m 남겨놓고 포기했어요. 두 번째 도전할 땐 1,200m를 남겨두고 돌아섰죠. 세 번째 도전 때 있는 힘을 다해 가까스로 정상에 올랐어요."

"죽기 살기로 산에 다녔군요. 산에 가면 뭐가 좋던가요?"

"즐겁고 기뻐요! 스틱을 양손에 꽉 잡고 준비 자세만 갖춰도 잠자던 몸의 모든 세포가 봄비를 맞은 새싹들처럼 생기발랄해지는 기분이에요. 저는 그 느낌이 무척 좋아요. 머릿속은 계곡의 물소리, 청량한 공기, 푸르른 숲으로 가득 차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죠. 온 신경을 집중해서 한발 한발 내디뎌 올라가는 기분도 좋고요."

"산을 탈 때 쓰는 에너지가 어디서 나올까요?"

"저는 보통 때 그냥 죽은 듯이 가만히 있어요. 늘어져 있는 거죠. 그러다가 산에 갈 때 확 터뜨려요. 아! 저는 아차산(서울 광진구에 있는 산)에 굉장히 많이 다녔어요. 그때 기른 체력이 도움이 좀 된 것 같아요."

그녀는 나에게 '명산 100' 완주 인증서를 내밀었다. '도전 번호 442,107', '완주 번호 14,251', '도전 기간 505'. 그녀는 1년 반 만에 100개 산에 올랐다. 그동안 다친 데는 없었고, 여러 산에서 본 풍경만 머릿속에 남았다.

"모악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리산 산군이 기억에 남네요. 운해를 허리띠처럼 두르고 있었어요. 금수산 정상에서도 운해를 봤는데, 월악산 산군이 다도해 섬처럼 구름 위에 둥둥 떠 있었어요.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두타산 베틀봉에서 본 경치였어요."

'자중자애'하자

양재연씨는 요즘 시도 쓴다. 산에 갔다 온 다음 얻은 영감을 글쓰기로 푸는 것이다. 얼마 전엔 광주 무등산에 갔다가 너무 좋았던 나머지 그 자리에서 술술 써 제꼈다. 그녀가 쓴 시를 잠깐 볼까?

무등산 서석대 가는 길

서설을 밟으며

서석대를 올랐다

얼어붙은 눈꽃이 너무나 황홀해

가다 서고

가다 서고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여

너에게 말하기 쑥스러워진다

아,

이 겨울도 이리 아름다울진대

봄은 어떠할까?

한겨울 속에서

나는

너의 봄을 바라본다

"70 예찬이라고 쓴 글도 있네요. 지금 많이 행복한가보죠? 젊었을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요?"

"그렇죠. 지금이 제 인생 중 가장 행복한 때예요. 남들은 20대로 돌아가고 싶어, 30대로 가고 싶어 그러는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30대 때는 몸이 많이 아팠어요. 20대 때는 놀러 다니지 않았고요.

현관에서 산행에 나서기 전 양재연씨. 가까운 산에 갈 땐 남편 윤근일씨가 자가용을 이용해 바래다주고 데리고 온다.

"지금까지 살면서 깨달은 게 있을까요?"

"깨달은 거요? 음, 뭐 인생은 아름답다? 아, 저 80세가 되면 책을 한 권 내려고 해요. 제목도 미리 지어 놨어요. <살며, 사랑하며> 제 수필집이에요."

"<살며 사랑하며>의 사랑의 대상은 누군가요?"

"아, 저는 요즘 어떤 때 기분이 너무 좋아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제 좌우명은 안 물어보세요? 제 좌우명은 '자중자애'예요. 나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신을 사랑하자."

자신과 비슷한 연배를 가진 의기소침한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없냐고 묻자 그녀는 "용기를 내시라"고 했다. 곰곰이 따져보니 이건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 아닌가! 그녀처럼 용기를 낸다면 세상에 못할 건 없을 것 같았다.나는 마음이 동했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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