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건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기초예술, K컬처 성공의 버팀목… 稅 혜택 등 활성화 시급” [세계초대석]
예술 경영가·행정가로 40여년 외길
무대세트·의상·소품 등 자체생산 가능
국립극장, 대한민국 유일한 제작극장
‘교향악축제’와 같은 대표 축제 구상
관객 접근성 높이고 공연 확대할 것
“공연기획팀장이던 1989년 음악당 개관 1주년 기념으로 뭘 할까 고민하다 교향악축제를 만들었다. 전국에 교향악단이 10여개밖에 없을 때인데 일일이 찾아다니며 축제 참가를 독려했다. 지휘자 임헌정(71) 씨가 ‘부천도 시립교향악단 만드는데 내년에 나가겠다’고 해서 ‘형님, 내년이 어디 있습니까. 금년에 나오세요’라고 독촉했다. 부천시향 단원들이 합숙하며 연습한 뒤 그해 참가했는데 히트를 쳤다.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가 아직까지 잘 이어지고 지금은 국내 교향악단이 40여개나 돼 뿌듯하게 생각한다.” 박 극장장은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전국 국공립 무용단이 참여하는 마당 등 국립극장에서도 ‘교향악축제’처럼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을 축제를 구상 중이다.
―1999년 세종문화회관으로 왜 옮긴 건가.
“공연기획부장일 때인데, 1997년 재단법인화한 세종문화회관의 이종덕 사장(1935∼2020·전 예술의전당 사장)이 ‘야, 만 원 더 줄 테니 세종문화회관으로 와라’고 해서 예술의전당 급여보다 1만 원 더 받는 조건으로 가 공연기획부장을 맡았다. 그런데 오히려 50만원이 줄자 이종덕 사장이 미안했는지 부사장으로 해주더라.(웃음) 개인적으로 13년 일한 예술의전당이 ‘본가(친정)’, 6년 일한 세종문화회관이 ‘시집’이라고 생각한다.”
―곧 취임 1주년을 맞는데 돌아보면 어떤가.
“그전까지 극장장 자리가 1년 반이나 비어 있다 보니 직원들도 매너리즘(타성)에 젖어 있고 처음엔 어디서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나의 철학은, 공연장 업종이 서비스업인 만큼 우리 무대에 서는 예술가와 공연장을 빌리는 사람(대관자),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에게 최대한 좋은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극장 안팎을 깨끗하게 손질했다. 또 (3호선) 지하철 동대입구역에서 내릴 때 열차 안내 멘트에 국립극장이 안 나오는 걸 알고, 광고 비용을 지불한 뒤 나오도록 했다. 해오름극장(대극장)에 쾌적한 북카페를 열고, 식당도 입점시킨 것처럼 관객 편의성을 높여나갈 것이다. 사실 (국립극장장으로서) 나의 사명은 3개 산하 예술단체의 기량과 3개 극장 공간을 활성화하는 것이라 여기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국립극장의 정체성은 전통을 기반으로 한 제작극장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극장들 공연 횟수가 너무 적었다. 1년에 100회 정도더라. 그래서 내 임기(3년) 동안 연 200회까지 늘리는 것으로 목표를 세우고 단원들을 설득해 횟수를 늘리고 있다. 각 단장과 예술감독에게도 단원들의 동료나 선배 역할이 아니라 리더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다. (국립극장 환경과 예술단체 체질을 바꾸느라) 직원들이 피곤했을 텐데도 잘 따라와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성과라는 게 그렇다. 나는 여기를 자주 찾는 사람들이 ‘어? 국립극장이 조금 바뀌었네, 서비스도 좋아졌네’ 하는 소리를 가장 듣고 싶다. 국립극장의 변화가 좋은 반응을 얻게 되면 직원들도 더 신이 나서 일하고 공연(작품)을 만들지 않겠는가.”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보다 공연 횟수도, 공연장 좌석도 적다. 국립극장만의 강점이 있는가.
“진정한 제작극장은 자체 극장과 산하 예술단체가 있고, 무대 장치와 세트, 의상, 소품 등 공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별도 제작소에 무대 담당 직원만 70명이나 될 만큼 제대로 된 제작극장 형태를 갖춘 곳은 국립극장이 국내에서 유일하다. 다른 제작극장은 대부분 무대 세트와 소품 제작을 외부에 맡기는데 국립극장에선 직접 도면을 가지고 무대를 만든다. 예를 들어 연출이 ‘지팡이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면 뚝딱 만들어주고, ‘그거 좀 짧은데’ 그러면 바로 알맞게 잘라 준다. 이런 극장은 대한민국에 국립극장밖에 없다. 또 수익성을 크게 신경 써야 하는 다른 극장과 달리 국립극장은 돈(예산)만 잘 쓰면 되기 때문에 장애인을 위한 공연 등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지만 꼭 해야 하는 좋은 작품도 만들 수 있다.”
―장애인을 위한 공연은 어떻게.
“가장 아쉬운 건 대극장(해오름극장) 좌석이 원래 1550석에서 (4년간 새 단장을 거쳐 2021년 재개관한 뒤) 1200석으로 바뀐 거다. 음향 등 시설은 좋아졌지만 300석이 날아가면서 대관에 어려움이 있다. 좋은 공연을 하려면 그만큼 많은 제작비가 투입돼야 한다. 2000∼3000석은 돼야 이틀 공연을 하더라도 제작비를 뽑아내는데 1200석은 이틀 매진시켜봐야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의 1회 공연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좋은 상업적 공연의 대관 신청이 별로 없다. 그래도 지난해 자체 기획공연 좌석 점유율이 85%를 넘어 (마케팅용 초대권을 빼면) 사실상 거의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창극단은 물론 무용단과 국악관현악단 작품도 그렇다. 우리 전통예술을 사랑하고 아끼는 관객층을 보이지 않게 확보하고 있는 국립극장이 어떻게 보면 자랑스럽더라. 올해는 기획공연 좌석 점유율을 90%로 높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K컬처(한국 문화) 열풍이 거세다. K컬처 위상을 실감하는가.
“그렇다. K팝뿐 아니라 한국의 기초예술 위상도 몰라보게 높아졌다. 2000년쯤인가 세종문화회관 시절 이탈리아 베로나 극장에 가서 오페라 내한 공연을 요청했는데, 극장 측이 ‘우리 비싼데 너희 진짜 우리 부를(초청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시큰둥해서 되게 기분이 나빴다. 나중에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 시절 다시 베로나 극장을 찾아가니 사장이 달려 나오면서 반갑게 인사하는 걸 보고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해외 유수 오페라단들은 이제 한국 성악가가 없으면 제대로 공연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해 국립창극단이 ‘트로이의 여인들’을 들고 영국 에든버러 축제에 갔을 때 큰 호평을 받았다. 현지 할머니 관객들이 감동받아 막 울기도 했다. 이에 영국 바비칸센터가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오는 9월 창극단을 초청했다.”
―이런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우선 중요한 건 뭐라고 보나.
“연극, 무용, 국악, 클래식 등 기초예술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방탄소년단(BTS)도 나오고 K팝이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많은 예술단체가 정부와 민간의 지원 없이는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게 어렵다. 그래서 자꾸 상업적인 데로 가다 보면 기초예술이 무너진다. 정말 의미 있는 작품보다 돈 되는 것만 하려 한다. 기초예술 지원 예산 확충과 기업 등 민간의 예술 지원 활성화를 위해 세제 혜택 같은 대책이 시급하다.”
●1957년생 ●경희대 음악대학 기악(바이올린 학사) ●경희대 대학원 음악교육학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장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부장 ●충무아트센터 사장 ●경기아트센터 사장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관장 ●KBS교향악단 사장 ●부산문화회관 대표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 ●국립중앙극장장
대담=송용준 문화체육부장, 정리=이강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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