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 작아지고 수식어는 길어지고···‘두부값에 콩깍지’

정유미 기자 2024. 2. 20. 1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풀무원 ‘부드러운 찌개용 두부(380g)’ 4550원
국산 콩 도매가 3년째 하락해도 두부가격 올라
“용량 줄이거나 포장지 바꾼 신제품으로 인상”
풀무원 홈페이지 캡처

서울 현저동에 사는 주부 최모씨(55)는 동네 마트를 찾았다가 한숨만 내쉬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만 해도 두부 1모를 2000원대에 샀지만 매장에 진열된 제품은 4000~5000원에 육박하는 등 가격이 너무 올라 장바구니에 담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안 오르는 게 없는 물가폭탄 세상이라지만 두부 가격이 언제 또 이렇게 오른 것인지 답답했다”면서 “집에서 항상 두부를 넣고 끓여 먹던 된장찌개와 김치찌개조차 밥상에 올리기 힘들다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고물가·고금리 시대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두부 가격이 소리소문 없이 오르고 있어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두부 제품 가격 자체가 크게 오른 것은 물론, 용량이 줄었거나 겉표지를 살짝 바꾼 값비싼 신제품들이 쏟아지고 있어서다.

2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풀무원 등 식품업체들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만 두부 가격을 2차례나 인상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형마트 소매가 기준으로 풀무원 소가찌개두부(300g)의 경우 2019년에는 1300원이었지만 2022년 1590원으로 22.3% 올랐고, 소가부침두부(300g)는 같은 기간 1400원에서 1700원으로 21.4% 인상됐다.

CJ제일제당의 부드러운 찌개두부(300g)는 2019년 1180원에서 2022년 1590원으로 34.7% 올랐고, 대상의 종가집 찌개두부(300g) 역시 2019년 1000원에서 2022년 1490원으로 49% 인상됐다.

주목할 점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두부의 주재료인 콩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는 데 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산 콩(백태·흰 콩) 도매 가격은 2021년 평균 40㎏당 25만6515만원이었지만 2022년 23만원대로 하락했고 지난해엔 19만6500원, 올해 들어서도 19만5250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주부 장모씨(45)는 “풀무원 큰두부(1㎏)만 해도 2900~3000원대였는데 지금은 4900원으로 올랐다”면서 “콩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는데 두부 제품 가격은 왜 고공행진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식품업체들의 두부 제품 가격인상 방식도 논란이다.

통상 두부 1모 하면 500g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시중에 판매되는 두부는 100g, 200g, 300g, 320g, 350g, 420g 등으로 용량이 줄어 값이 올라도 가격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연일 쏟아지는 신상품의 경우 포장지 제품명에 접두어 ‘특등급’ ‘느리게 만든’ ‘한끼몽글’ ‘네컵’ ‘네모’ ‘두컵’ ‘양념이 잘 배는’ 등을 넣고 있지만, 사실상 가격이 비싼 제품들이다.

실제 국내 1위 두부업체인 풀무원은 홈페이지에서 부드러운 찌개용 두부(380g)는 4550원, 국산콩 투컵 두부(320g·찌개용)는 4600원, 하이프로틴 두부(200g)는 3480원, 한끼몽글 순두부 맑은순두부탕(269g)은 3980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물가안정 대책으로 식품업체를 압박하자 두부 용량을 줄이거나 포장만 바꿔 신제품으로 둔갑시키는 수법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인건비와 물류비에 전기료와 수도요금까지 인상돼 두부 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면서 “불확실한 경제상황에 환율과 유가 등의 변동이 심한 만큼 궁여지책으로 제품을 세분화하거나 포장을 달리해 신상품으로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두부 가격은 따로 인상 고지를 할 필요가 없는 데다 수천가지나 되는 두부 제품 가격을 전수조사하기가 힘들어서다. 또 용량과 포장지를 달리해 신제품으로 내놓을 경우 가격 인상 여부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국소비자원이 공개하는 ‘참가격 정보’만 보더라도 두부 제품은 겨우 3~4개에 불과하고 상품명과 판매점을 일일이 찾아야 하는 데다 가격 비교 기간도 짧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두부도 g당 단위가격 의무표시 품목에 포함시켜 소비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정부는 고물가시대 식품업체들이 교묘히 두부 가격을 올리지 못하도록 보다 강력한 감시체계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수산식품 유통공사 홈페이지 캡처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