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얼굴을 한 고양이 조각… “현대성은 모든 것의 뒤엉킴”

유승목 기자 2024. 2. 2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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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념미술 김홍석 작가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 展
서양미술의 한계 느낀 한국인
캔버스에 사군자 수묵화 그려
하이힐은 시멘트 위 슬리퍼로
익숙한 대상에게서 낯선 광경
모호함으로 경계 허무는 시도
김홍석, Tension II(Homage to Qi Baishi), 2024. 국제갤러리 제공

서구, 백인, 남성. 우리가 배운 미술사는 대체로 이 흐름을 벗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남성이 독식했던 미술에 여성과 퀴어가 침투하고, 하얀 피부에도 여러 색깔이 스며들었지만 여전히 미술의 근간은 서구에서 비롯된 모더니즘적 사유체계의 틀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아름다움, 완전함, 옳음 같은 미학적 인식은 서구의 시각에서 정의되는 것이다. 예컨대, 헬레니즘 조각이나 원근법을 사용한 풍경화는 ‘정상 예술’에 속하지만 캔버스에 수묵화를 담거나 몽고어로 쓴 회화를 그리는 건 ‘비(非)정상예술’이다. 서구적 형식을 따르긴 했어도 과정이 비서구적이라 이도 저도 아닌 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 개념미술의 주요 작가인 김홍석(60)은 이런 관점에서 스스로를 주변인으로 여겼다. 동양에서 태어나 서양의 문법을 모방하는 그림엔 한계를 봤다. 그렇다고 학창시절 미술 커리큘럼엔 없었던, 실습 한 번 해보지 않은 동양 미술을 그릴 수도 없는 노릇. 주변인이라 느낄수록 중심부로 파고들 수밖에 없었던 그가 새롭게 눈을 뜬 건 독일 유학 시절 “너는 한국적 현대미술을 보여줘야 한다”는 교수의 조언을 듣고 나서라고 한다. “그 질문이 없었다면 아직도 서구 미술에 더 깊이 빠져 있었을 것”이라는 김홍석은 “믿어 의심치 않던 기존 인식을 변화시키는 게 미술가의 책임”이라며 견고한 질서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김홍석, 실재 악당, 2024. 국제갤러리 제공

김홍석은 중심과 주변부, 서구와 비서구, 정상과 비정상이 명확한 선을 지우는 데 예술적 역량을 쏟았다. “피자와 김치, 소주를 먹는 내 모습이야말로 한국적인 것”이라는 김홍석은 경계를 허무는 힘을 ‘뒤엉킴’(entanglement)이라고 표현한다. “뒤엉킨 세계는 이원론적 사유서 벗어나는 중요한 실천의 시작이다. 아마도 현대성은 곧 모든 것의 뒤엉킴일 것”이라는 그는 익숙하고 보편적인 서구 모더니즘적 개념들이 해체돼 엉켜 있는 상태를 자유와 해방을 실현하는 대안으로 삼았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는 이런 그의 뒤엉킨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라 들러볼 만하다.

뒤엉킴은 우선 모호함에서 시작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보이는 ‘실재 악당’은 유명한 빌런(악당) 조커의 얼굴에 고양이의 몸을 하고 있다. 이 조각에 시선이 멈추면 정체성에 의구심이 싹튼다. 조커가 고양이 털옷을 입은 건지, 고양이가 조커의 탈을 쓴 것일 뿐인지를 분간할 수 없다. ‘만약 조커가 아니라면 악당은 실재하는 게 맞는 건가’란 질문과 함께 이분법적 사고와 양자택일적 접근의 문법이 깨지기 시작한다. ‘하이힐 한 켤레’란 이름이 붙은 작품의 감상도 이와 비슷하다. 하이힐이라 해놓고선, 두꺼운 시멘트 덩어리 위에 청동 슬리퍼 조각이 얹어진 형태다. 이 돌덩이 슬리퍼는 하이힐이 맞는 걸까. 비록 존재에 쓸모는 없고 목적성에 부합하지도 않지만, 굽 높이 5㎝ 이상인 여성화라는 하이힐의 일반적인 정의에 따르면 하이힐이 맞다 볼 수도 있다. 익숙한 대상에게서 보는 낯선 광경은 김홍석이 의도한 질서의 뒤엉킴인 셈이다.

화랑 3관(K3)에 있는 ‘믿음의 우려’는 유쾌하다. 전시장 천장을 뚫고 추락한 모습의 운석 덩어리가 설치돼 있는데, 깨진 운석 속엔 박힌 별(★) 모양의 조형물이 보인다. 바닥에 떨어진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된 돌과, 그 안에 지구인들이 부지불식 간에 불문율처럼 합의한 ‘별’의 생김새를 한 조형물은 실재적 존재와 해석적 존재의 개념을 뒤튼다.

동양화를 그려본 적 없다던 김홍석이 그린 사군자 페인팅도 압권이다. 개념미술가가 회화에 도전한 것, 연꽃과 대나무 같은 동양화를 한지가 아닌 캔버스에 담고 먹이 아닌 아크릴 물감을 쓴 것, 매난국죽 같은 대신 텐션(긴장), 유니티(통합) 같은 영어 단어로 이름을 지은 것 모두 경계를 허문 뒤엉킴의 일환이다. 사군자가 걸린 2관(K2)에 흘러나오는 블루스는 현대미술에 대한 마지막 뒤엉킴이다. “현대미술이라 해서 특별한 존재는 아닌데 어쩌다 보니 대중과 거리가 생겼습니다. 갤러리나 미술관도 일상적인 공간처럼 느끼길 바라는 의미에서 배경음악을 틀었어요.”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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