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주째… ‘전셋값 상승열차’ 탄 서울 아파트
작년초 폭락장 이후 하반기 상승
교통 편리하고 학군지 위주 인기
1월 전세가격 한달새 0.3% 올라
전문가들 ‘전세값 우상향’ 전망
상승폭은 ‘완만 vs 급등’ 엇갈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39주째 오르고 있다. 아파트 매매 시장에 찬 기운이 도는 가운데 수요자들의 선호가 매매보다는 전세로 기울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자리가 많은 지역과 교통이 편리한 지역, 학군 수요가 받쳐 주는 지역 위주로 전세가 상승세가 확대되고 있다. 전세 시장이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면서 부동산 시장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2024년 시장이 매매 수요가 실종되고 전세 수요가 넘치면서 전세가 상승이 다시 매매가 상승을 이끌었던 2010년대 중반과 닮아 있다는 진단도 내놓는다.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비율을 뜻하는 ‘전세가율’은 서울의 경우 2011년 50%에 머물다가 점차 오르기 시작해 2012년 60%를 넘어섰다. 2016년 한때 71%까지 육박한 바 있다. 전세가가 무섭게 치솟자 재계약 만기 때 수억 원의 보증금을 올려줘야 했던 세입자들은 “이럴 거면 차라리 집을 사자”며 시장 참여 포지션을 매수로 전환했다. 세입자들이 집을 사기 시작하자 매매가가 오르고 전세가율은 하락 사이클로 접어들었다. 이후 꾸준히 하락한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현재(2023년 12월 기준) 53.66%다.
아파트 매매 시세의 절반 정도 가격으로 전세를 살 수 있는 지금의 시장 상황에서 수요자들은 전세를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로 여길 수 있다. 지난 10년간 서울 대부분 지역의 아파트 시세가 최소 2배 넘게 상승했다. 전세 계약은 2년짜리지만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면 전세 거주 기간은 4년을 보장받는다. 서울 아파트 전세 시세가 최근 지속적인 오름세를 보이는 데도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 20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월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전달 대비 0.30% 상승했다.
그렇다면 올해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은 급등 열차를 타게 될까. 부동산 참여자들은 대부분 우상향 가능성을 점친다. 다만 상승 폭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2023년 초 한 달에 3∼4%씩 하락하는 ‘폭락장’을 연출한 이후 하락 폭이 점차 줄기 시작해 지난해 하반기 내내 상승세를 유지했다. 상승 폭은 0∼0.5% 내외에 머물렀다. 2024년 1월 전세 가격(한국부동산원 월간 주택가격동향 조사 기준)은 2020년 12월 대비 여전히 10.66%나 하락한 수준이다. 현재의 전세 시장은 그동안의 하락분을 만회하는 반등장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전세 시장이 단순히 수급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현재 임대차 시장은 여러 차원의 그물망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단지의 같은 평형 물건인데도 시세가 수천∼수억 원가량 차이 나는 매물이 공존한다. 지난 2022년 2월 13억 원짜리 서울 서초구 30평대 아파트 전세 계약을 맺은 A 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3억 원을 돌려받았다. 보증금을 반환하는 조건으로 전세를 갱신하는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다. 반면 2020년 같은 아파트를 8억 원 초반대에 전세를 줬던 B 씨는 이번에 세입자를 바꾸면서 1억5000만 원을 올려받는다. 세입자가 2022년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면서 시세보다 저렴하게 전세를 줘야 했지만 이제는 시세대로 보증금을 받을 수 있어서다. 설 이후 서울 용산구에 20평대 아파트를 알아본 신혼부부는 5억∼6억 원 예산보다 저렴한 3억6380만 원에 전셋집을 구했다. 같은 단지 동일 평형 매물의 전세 시세는 5억 원이 넘었지만 집을 보러 간 시점에 주택임대사업자 물건을 잡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임대차 시장의 복잡한 생태계는 여러 규제가 중첩되면서 만들어졌다. 주택임대사업자가 보유한 물건은 최장 10년 동안 계약 갱신 시 전세 보증금을 5%만 올릴 수 있다. 주택임대사업자 물건은 2018년 집중적으로 등록됐다. 상당한 주택들이 2018년 당시 시세에서 큰 변동이 없는 상태로 임차 보증금이 유지되고 있다. 이 가운데 2020년부턴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 시행으로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면 임대료를 5%만 올리고 4년간 전세 거주가 가능하게 됐다. 이런 생태계 탓에 시세가 급등한 전세 거래가 나오더라도 전체 전세 시장의 흐름으로 굳어지거나 시세에 반영되기까지는 시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박원갑 KB 국민은행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5년 누계 상승률로 봤을 때 6.54% 오른 아파트 매매가와 달리 전세가는 1.41% 빠졌고, 이에 따라 회복세에 있다고 봐야 한다”며 “올해 내내 강한 반등장보다는 완만한 회복장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전세 수요 급등세가 예상보다 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고준석 연세대 경영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학군지처럼 수요가 강한 지역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지 않고 전세 보증금 시세대로 올려서 신규로 계약하는 경우까지 나오고 있다”며 “향후 수년간 서울 아파트 신규 공급이 거의 없는 데다 빌라·오피스텔 거주층이 아파트로 유입되는 수요까지 더해져 전세가가 생각보다 더 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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