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0일!] 100년 푸대접에도… 마침내 되찾은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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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2월20일.
대한민국의 가장 큰 명절이자 음력 한 해의 시작을 가리키는 음력설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됐다.
━신정(新正) 강요한 일제 "음력설은 폐지해야"━일제 강점기 무렵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제는 양력설을 지냈기 때문에 조선에 양력설을 쇨 것을 강요했다.
양력설을 신정(新正), 한국인이 쇠는 음력설을 오래된 것이어서 폐지해야 한다는 의미로 구정(舊正)으로 부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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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은 대대로 달의 모양에 따라 날짜를 세는 음력을 사용했다. 새해 첫날도 마찬가지. 음력설은 '삼국사기'에도 기록될 만큼 오래된 전통이다. 음력에 기반한 달력 체계를 사용했던 터라 설은 음력의 새해 첫날을 의미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1896년 조정에 개화 바람이 불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을미개혁에 따라 태양력이 시행됐고 음력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나라에서 쓰는 연호는 양력을 세운다는 뜻의 건양(建陽)을 사용했다. 고종은 공문서에 양력을 표기하도록 했고 고종실록에도 양력을 기준으로 날짜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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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한 후에도 음력설은 정부 논란의 대상이었다. 이승만-박정희 정부의 경우 양력설과 음력설을 모두 쇠는 '이중과세'(二重過歲)는 경제발전을 방해할 수 있다며 음력설을 규제했다. 그럼에도 국민은 음력의 의미를 기리고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음력설에 성묘하거나 신정이 일제의 잔재라며 반발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이농(離農)현상이 본격화하면서 음력설이 되면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고속도로 정체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에 1976년 음력설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했지만 되레 혼란이 가중된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1981년에도 내무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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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정부는 음력설의 명칭을 공식적으로 '설날'로 복원했고 연휴 기간을 3일로 연장했다. 하지만 양력설과 음력설 모두 연휴 기간이 3일이기 때문에 휴일이 너무 많아 근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1991년부터 양력설 연휴 기간을 3일에서 2일로 줄였다. 1999년 1월1일 정부는 외환위기 여파가 강했던 탓에 양력설을 1월1일 당일만 쉬도록 했다. 이 같은 설 형태는 25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음력설은 개화기와 식민지,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푸대접을 받았다. 그럼에도 끝내 음력설을 되찾은 것은 국민에게 전통적 음력설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희인 기자 acnes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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