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이 풀어야 대표팀이 산다

김고금평 에디터 2024. 2. 20.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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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의 열화일기] 최악의 위기에 놓인 최강의 축구 대표팀---팀원의 화합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축구대표팀 이강인(22·PSG). /사진=뉴스1

손흥민이 손을 먼저 내밀기엔 구차하고 이강인이 뒤늦은 타이밍에 진심의 사과를 던지기도 애매하다. 서로의 속마음이 간절해도 뭔가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어설픈 상황이 계속되면서 사태는 점점 꼬여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다음 월드컵 예선 전부터 '멘붕'과 '어색함' '낯섦' '따로 또 같이' 같은 단어와 마주하고 생활할 게 눈에 선하다.

코치진 입장에선 너무 훌륭한 선수들이어서 빼기도 쉽지 않아 고민은 더 쌓일 수밖에 없다. 해법은 하나다. 이강인이 먼저 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이 '한국인이 가장 원하는' 모양새다.

주장이라는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설 땐, 나머지 팀원이 경기장 밖 '감독'보다 전투를 치르는 경기장 내 '주장'을 더 신뢰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주장에게 주어진 나름의 역할과 책임이 적지 않다.

주장은 그만큼 팀원을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고 위압이나 횡포 정도까지 아니라면 약간의 통제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도리어 주장이 하는 일에 대해(사안의 명백한 팩트에도) 강압적이라고 '느끼는' 주관적 감정만으로 대들 권리를 갖거나 반감을 표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팀이 대략 어떤 수준이고 어떤 결속력인지 알 수 있다.

손흥민은 착하고, 이강인은 무례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조직력이 가장 중요한 축구에서 팀원의 태도와 정신력, 한 마음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선수들은 자기 스타일이 있으니, 뺀질거릴 수도 있고 게으를 수도 있고 내성적일 수도 있고 다혈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하는 몸만큼 중요한 것이 정신의 무장이다. 그 무장은 후배가 선배를 따르고, 선배가 후배를 보살피는 관계로부터 시작되고 믿음에서 완성된다.

지난 7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준결승전 당시 손가락에 붕대를 맨 손흥민. /사진=뉴시스


여기서 이 사태가 벌어진, 여러 이해 가능한 추측들이 있다. 우선 주장 손흥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다. 손흥민은 4강전까지 힘들게 올라온 과정을 고려해 팀원이 '딴짓'을 하지 않기를 권고했다. 쉽게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있는힘, 없는 힘 다 쥐어 짜내 겨우 올라온 극적인 인간 승리 뒤에 쌓인 피로감과 정신적 위기감을 덜기 위해 주장 입장에선 최소한의 절제와 자제를 통한 힘모으기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저녁 식사 후 탁구를 제지한 것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으로 주장은 이해했을 것이다.

물론 딴짓을 해서 경기를 힘들게 했다고 볼 수 없지만, 어쨌든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심리적으로나 분위기적으로 (주장이 보기엔) 맞지 않다고 보고 단합과 결속을 위해 일심동체 되기를 바랐을 수 있다. 자중하면서 좀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고, 이를 따라주기를 간절히 바랐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저녁을 만드는 엄마가 "저녁 먹어야 하니, 간식 먹지 말라"고 주의를 줬는데, 자식이 어느새 간식을 꺼내 먹는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양상과 비슷하다고 할까.

주장의 멱살을 잡힌 이강인의 입장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9살 차이 나는 형이자 주장이 하는, 비록 바른말이라도 너무 간섭한다는 느낌을 받아 순간적으로 '욱' 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간식을 먹어도 저녁 다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에게 있었는데, 이런 것까지 통제받아야 하는지 '멀티 세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을 수 있다. 이강인이 주먹을 휘둘렀는지 안 했는지를 중요한 관전포인트로 여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핵심은 여전히 '조직력 붕괴'와 '신뢰 상실'이다.

결과적으로 주장은 '통제'든 '간섭'이든 주장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과 좌절로 고개 숙이는 장면을 여러 번 연출했다는 점이고, 팀원은 어쨌든 주장의 말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화를 풀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앞으로 주장은 고개를 똑바로 들고 후배에게 어떤 말을 던질 권리나 권한을 가질 수 있을까. 한 번 반기를 든 막내가 (여론을 의식하든, 논란의 중심에 있든) 다시 반기를 들 리 만무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일그러진 분위기를 상쇄하기를 기대하는 이들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배가, 주장이 더 선배답고 주장다울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은 어쨌든 잘못한 후배가 먼저 손 내미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어지러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이가 막내 이강인이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손흥민, 황희찬이 지난 5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에글라 트레이닝 센터에서 훈련하는 모습./사진=뉴시스


"형들 말들 잘 따라야 했는데…"는 사과가 아니다. 대상은 복수(형들)도 아니고, 후회(했는데)의 종결어도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장이 고지식해도 그가 '주장의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이니, 그와 일심동체가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그에게 미안하다는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런 직접적인 화해의 제스처만으로도 손흥민은 즉각 반응할 것이다.

껄끄러운 과정도, 어색한 상황도, 마주치지 못했던 눈도 모두 눈 녹듯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꽃 가득한 사이로 금세 전환될 것이다. 막내의 진심어린 우선 사과와 주장의 호쾌한 수용 만이 축구 국가대표팀을 한 마음으로 되살릴 수 있다.

이 상황을 당사자가 해결하지 못하는 한, 어떤 감독이 와도 팀원들은 '불편한 동거'를 할 수밖에 없고 최악의 경우 경기도 다 같이 뛰지 못하는 '우스운 현장'이 계속 연출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화가 나는 건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을 포함한 외국 코치진이다. 무관심 또는 방관으로 자신에게 100% 쏟아질 욕과 비난을 피하기 위해 톱스타 2명에게 내분이라는 명분으로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넘기는 '얄팍한 전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런 내분 때문에 내가 감독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거나 '주장 말도 안 듣는데, 내 말이 먹히겠나' 같은 식으로 철저히 자신을 옹호하기 바쁜 사람에게 100억원 가까운 돈까지 줘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경기가 다 끝났는데도 또 다른 이상한 경기를 관람하며 목이 터져라 응원, 아니 고함을 지르고 있는 중이다.


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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