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모자라도 근성·협동심으로 트럭 전문가 될래요" 또 다른 유리천장에 맞선 그녀들

나주예 2024. 2. 20.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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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여성 상용차 정비사 양성 교육
3주간 교육 거쳐 전국 각지 정비사로 채용
현장 속 어려움 근성·협동심·노하우로 돌파
"여성 진입 장벽 깨고 다양성 확대 노력"
지난달 23일 경기 평택시 볼보트럭 종합출고센터에서 여성 정비사 교육생들이 타이어를 끼우는 작업을 실습하고 있다. 볼보트럭코리아 제공
힘으로 하면 절대로 안 되고 요령을 써봐.
이문길 볼보트럭코리아 상무

지난달 23일 오후 눈발이 휘날리는 경기 평택시 평택항 인근 볼보트럭 종합출고센터 테크니컬 센터에서는 전문 여성 트럭 정비사 실습이 한창이었다. 이날 교육은 100kg에 달하는 트럭 타이어를 구동축1에 끼우는 작업. 3기 교육생 전현주(45)씨가 왼쪽 발로 타이어를 고정한 채 오른손에 50cm짜리 레버2를 잡았다.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레버로 타이어를 들어 올려 구동축의 볼트에 끼워 넣으면 성공.

잠시 숨을 고른 전씨가 있는 힘껏 오른손에 힘을 주자 꿈쩍도 않던 타이어가 지면에서 떨어지며 구동축에 고정됐다. 이런 작업은 전문 정비사들이 현장에서 차량 내부 상태를 살필 때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생을 가르치는 이문길 볼보트럭코리아 상무는 "타이어가 무겁다 보니 남성들도 버거워하지만 여성 교육생들도 노하우만 익히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곳에서는 1979~2001년생 여성 일곱 명이 전문 트럭 정비사가 되기 위해 3주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다. 여성 정비사 교육 과정은 볼보트럭코리아가 여성의 사회 참여 기회를 넓히고 다양성을 확대하려고 2022년 국내에서 처음 마련했다. 한국에서 자동차 정비사 중에서도 여성 상용차(상업적 용도를 위해 사용되는 영업용 차량) 정비사는 드물고 진입 장벽 또한 높지만 이 회사는 18명의 여성 정비사를 키워냈다. 이 상무는 "수료생 중 떠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며 "여성 교육생들이 남성보다 힘은 부족해도 열정과 근성으로 승부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경기 평택시 볼보트럭 종합출고센터에서 여성 정비사 교육생이 타이어를 본체에 끼우는 작업을 실습하고 있다. 볼보트럭코리아 제공

진로 고민 취준생·경력단절 여성까지…"제한 없이 누구나"

지난달 23일 경기 평택시 볼보트럭 종합출고센터에서 여성 정비사 교육생들이 실습 수업을 받고 있다. 볼보트럭코리아 제공

놀랍게도 대부분 여성 교육생들은 자동차 관련 전공 지식이 전혀 없다. 2월 명지대 법학과를 졸업할 예정인 3기 교육생 황예원(24)씨도 마찬가지. 그는 내세울 수 있는 스펙은 '배우고자 하는 의지' 하나뿐이었지만 당당히 두 자릿수 경쟁률을 뚫었다. 황씨는 "중학교 때까지 운동을 좋아한 만큼 몸이 힘들어도 노동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며 "남들보다 몸이 작아 힘이 달리고 파스를 달고 살지만 그만큼 요령을 더 열심히 익히며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볼보트럭코리아의 여성 정비사 교육 과정은 경력 단절 여성에게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가정주부로 지내다가 교육 과정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전현주씨는 17년 동안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성취감을 맛보고 있다. 그는 살림을 하면서도 고장 난 가전제품을 손수 고치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정비 업무에 도전했다.

"현주씨, 손재주가 좋네요. 잘하네요. 이 칭찬 한마디가 자존감을 높여주고 내 경쟁력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줬어요." 지금은 중학생, 초등학생으로 성장한 아이들도 엄마의 도전을 응원하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전씨는 "엄마니까 당연히 했던 일에서 한발 더 나아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배우면서 지인들이 '신이 난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볼보트럭코리아에서 여성 정비사 교육을 받고 있는 전현주(45·왼쪽), 황예원(24) 교육생. 볼보트럭코리아 제공

"기회의 문 활짝…누구든 당당히 지원하세요"

경기 평택시 볼보트럭 종합출고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성 정비사 교육 현장. 볼보트럭 제공

정식 교육생이 되면 오일 교환, 휠(타이어) 탈부착, 볼보트럭 신차 기능 이론과 현장 체험을 경험한다. 회사 측은 이들에게 훈련비와 숙식, 유니폼, 작업복 등을 제공한다. 과거에는 자동차·기계·전기 관련 전공자 또는 관련 업무 종사자 등 자격증 보유자를 우대했지만 최근에는 비전공자의 비중이 커졌다. 이들은 3주 교육 뒤 최종 채용 면접 과정을 거쳐 현장 사업소에서 실무를 맡는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현장에서 기초 업무를 익히면 18개월, 1년, 2년 등 3년짜리 집중 훈련 과정을 거쳐 '멀티 플레이어' 정비사가 될 기회도 얻는다. 정비 관련 모든 과정을 섭렵하면 트럭 정비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 프로그램도 갖췄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요. 망설이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1 구동축
변속기에서 나오는 동력을 차축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축
2 레버
무거운 물건을 움직이는 데 쓰는 막대기

평택=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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