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도교육청이 국회의원의 여론조사 하청업체인가

조선일보 2024. 2. 20.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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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전경. /뉴스1

서울시교육청이 국회의원의 요청에 따라 학부모를 상대로 설문 조사를 대행해 준 사례가 최근 4년간 25건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온라인 가정통신문을 통해 의원들이 만든 설문 조사에 응하도록 안내했다는 것이다. 가정통신문은 학부모들에게 학사 일정, 교내 행사와 같은 교육 관련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발송하는 것이다. 이런 상식이 서울교육청에선 수시로 무시됐다. 전국 교육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교육청이 국회의원들의 여론조사 대행 업체로 전락했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설문 조사의 문항 자체도 정치적·편향적이었다. 한 의원은 작년 6월 대통령이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하자 ‘이 발언이 적절한가’ ‘수능을 앞둔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이 없겠나’ 등을 묻는 설문 조사를 전국 시도 교육청에 의뢰했다. 특정 답을 유도하는 설문 조사 후 해당 의원은 ‘윤 대통령 수능 발언 부적절, 93.1%로 압도적’이라는 발표를 했다. 늘봄학교 확대 방침, 의대 정원 증원 등 민감한 교육 관련 이슈가 나올 때마다 특정 정파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설문 조사가 이뤄졌다. 엄격한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교육청이 이런 정치적 설문 조사를 그대로 받아줬다.

일선 교사들은 과중한 업무 부담을 받고 있다. ‘방과후학교’의 경우 강사 위촉과 계약, 강사비 지급부터 프로그램 안내, 수납, 만족도 평가, 운영위원회 심의 등을 교사 혼자 처리한다. ‘학교폭력’ ‘기초학력’ 등 다른 업무들도 벅찬 일이다. 다음 수업을 위한 교재 연구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국회 교육위원들이 교사들의 업무 경감을 고민하긴커녕 여론조사 대행 부담까지 지웠다. 이런 일을 앞장서 막아줘야 할 교육청은 의원의 여론조사 요구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줬다. 시도 교육감이 정당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이런 일을 막기 위한 것인데 전혀 효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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