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학폭 피해’ 전직 형사, 학폭 조사관 됐다

최은경 기자 2024. 2. 2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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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육청 188명 선발, 3월부터 학교 현장에 배치

19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성동공고 대강당이 머리가 희끗한 중·장년층 인사들로 북적였다.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처음 선발한 ‘학교 폭력(학폭) 전담 조사관’ 188명이 이날부터 닷새간 진행되는 업무 연수에 참석한 것이다.

서울 등 전국 시·도 교육청 17곳은 올해 3월부터 ‘학폭 전담 조사관’ 총 2000여 명을 뽑아 학교 현장에 투입한다. 학폭 신고가 접수되면 가·피해 학생들을 만나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보고서로 정리하는 업무를 한다. 지난 20년간 학폭 조사는 모두 교사들의 몫이었는데, 교육부가 앞으로는 별도의 조사관을 뽑아 맡기기로 했다.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고, 학폭 조사의 전문성을 높이고자 제도를 대대적으로 바꾼 것이다.

올 3월 새 학기부터 '학교 폭력 전담 조사관'으로 학교에 투입될 조사관들이 19일 서울 중구 성동공고에서 기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경재(전직 경찰)·주지헌(시민단체 활동가)·전민식(퇴직 교사) 조사관. /최은경 기자

서울에서는 다양한 경력자들이 뽑혔다. 퇴직 경찰과 퇴직 교사가 전체의 60%,청소년 상담사 등 청소년 전문가들이 30% 정도다. “은퇴 후 청소년과 교직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나선 이가 많다. 이 외에도 국정원, 검찰 수사관, 군인 출신도 있다. 당초 교육청은 261명을 모집했는데 350명이 몰렸다. 이 중 컴퓨터를 못 다루는 사람 등을 빼고 188명만 뽑았다.

신임 조사관 전민식(63)씨는 38년간 교사로 일하다 작년 퇴직했다. 전씨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초보 교사부터 교장 때까지 수년간 생활지도와 학폭 업무를 맡았다”면서 “그런 경력을 살려 현역 교사들의 짐을 덜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학폭 처리가 녹록지 않아 교사들이 학폭 업무를 기피하고, 갈수록 학폭이 늘어나면서 업무 부담이 커졌다”고 말했다. 퇴직 교원 동료들은 “학폭 조사 업무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조사관 지원을 만류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내가 작년에 퇴직했으니 퇴직 교원 중에 가장 어린 ‘새내기’ 아니냐. 현장 교사 어려움을 잘 알고 젊은 내가 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관으로 뽑힌 전경재(61)씨는 작년 6월까지 서울 성동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던 전직 경찰이다. 전씨는 “여청과에서 6년간 근무하면서 학폭 업무로 고생하는 교사를 많이 봤기 때문에 조사관 업무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폭 피해 학생’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들만 4명을 둔 그는 막내아들이 10여 년 전 초등학교에서 따돌림·괴롭힘 피해를 당한 일을 계기로 학폭이 피해자에게 주는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아들이 학폭을 당한 뒤 성격이 내성적으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며 “아내가 몇 번이나 학교를 찾아다녀야 했다”고 했다. 이 일은 형사과 등에서만 20년 넘게 근무하던 그가 ‘여성청소년과’로 옮기는 데도 큰 영향을 줬다. 그는 “학폭이 발생하면 곧바로 사안을 철저히 조사하고 학생들이 자기 행동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다 대화로 풀 수 있는 사안도 경찰까지 가져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시민 단체에서 일하는 주지헌(52)씨는 자녀 학교의 학폭 전담 기구에서 7년간 활동하다 조사관에 지원했다. 주씨는 “교사는 중립적 입장에서 학폭을 조사할 수밖에 없는데도 가·피해 학생은 ‘선생님이 한쪽 편만 든다’고 불만을 터트리는 걸 많이 봤다”며 “선생님의 업무 부담도 덜고, 조사를 통해 학생 간 입장 차이를 좁히는 역할도 하고 싶다”고 했다.

조사관들은 학폭 조사 건당 보수를 받는데, 서울은 18만원이다. 기본 수당은 없다. 보수는 낮은데 까다로운 업무를 해야 하니 꾸준히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서울교육청 측은 “추가 조사 수당도 있고, 학교마다 학폭이 적지 않게 발생하니까 보수가 크게 부족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 모집에도 당초 예상보다 많은 분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지원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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