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 5살, 이젠 일반진료도 못 받는대요”…문 닫힌 의사실
“뇌를 다쳐 중증장애가 있는 아이라 입원 치료를 받고 싶은데, 주요 병원 모두 입원이 어렵다고 해서 세브란스에 왔어요. 여기도 ‘전공의들이 없어서 지금은 입원이 힘들다. 언제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하네요. 집에서 기다려야 하는 데 너무 불안해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이른바 ‘빅5(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 병원 전공의들이 20일부터 집단 사직을 선언한 가운데, 19일 하루 먼저 전공의들이 무더기 사직서를 제출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대기실에는 의료 공백을 걱정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하소연이 넘쳐났다.
“주4일 치료받아야 하는데 이제 2번만 오라고…”
중증장애 환자(5)의 보호자 김미정(40)씨는 “어린이병원의 경우 전공의 집단 사직 때문에 당분간 일반 외래 진료도 안 받는다고 한다. 5월부터나 가능하다고 한다”라며 “아이가 언제 악화할지 모르는데 너무 조마조마하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난치병을 앓고 있다는 아이의 보호자 조현우(35)씨도 “부천에 사는데 아이가 중증이라 동네 병원에서는 치료가 안 된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올 수밖에 없다”며 “의사들 입장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언제 또 응급수술이 필요할지 알 수 없기에 걱정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이날 오전 4년차를 제외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모두 사직서를 냈다. 오전 찾은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9층 소아중환자실 내 전공의 의사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미 수술받은 환자들도 불안감을 호소했다. 심혈관 질환으로 며칠 전 수술 받았다는 입원 환자 ㄱ씨는 “병실에서 의사가 다른 환자에게 ‘오늘 수술이라 다행이다, 내일부터는 수술이 정상적으로 진행 안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며 수술 뒤 경과 치료가 제대로 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뇌수술 환자 이진욱(52)씨도 “병동 여기저기서 입원환자와 보호자들의 ‘수술 밀렸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급하지 않은 수술은 기약 없이 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공의들 이탈이 임박한 다른 ‘빅5’ 병원에서도 환자와 보호자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었다. 딸(17) 치료를 위해 주 4일 서울아산병원에 온다는 40대 김영숙씨는 “평소보다 진료 대기 시간이 30분가량 늘었다. 앞으로는 일주일에 2번만 오라고 했다”며 “(의료중단 사태가) 체감돼 걱정이 크다. 대화를 통해 잘 풀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SRT 타고 상경한 지역 환자들 ‘긴 줄’
치료를 위해 지방에서 서울 대형 병원을 정기적으로 찾는 이들의 걱정은 더 컸다. 경북 경주에서 아버지의 식도암 진료를 받기 위해 강남세브란스 병원을 찾은 주아무개(44)씨는 “원래 3월초 수술 예약이 가능했는데 파업 때문에 3월말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수술이 급해서) 다른 큰 병원에도 연락해봤는데 모두 ‘수술예약이 어렵다’고 하더라”며 “오늘 첫 진료는 받았지만, 수술 일정 잡는 게 걱정이다. 환자들에게 선택지는 없다”고 말했다. 경남 양산에서 강남세브란스 병원을 찾은 조민주(40)씨도 “오늘은 다행히 문제가 없었다”면서도 “멀리서 왔는데, 오는 내내 외래진료가 취소될까 불안했다”고 했다.
에스알티(SRT)를 타고 온 지방 환자들이 삼성서울병원행 셔틀버스 등을 기다리는 수서역 버스 대기 줄은 평소보다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신장암 수술을 받고 치료차 1년 반 전부터 삼성서울병원을 정기적으로 찾는다는 대전 거주 전아무개(70대 중반)씨는 “대전에서는 치료에 한계가 있어서 서울로 다닌다. 수술 이후 경과 검진하는 날인데 아직 취소되지는 않았다”면서도 불안함을 호소했다. 신촌세브란스 병원 외 빅5 병원 전공의들은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 중단을 결의한 상태다.
경찰은 이날 물리적 충돌 등 우발 상황에 대비해 신촌세브란스·한양대병원 등을 비롯한 전국 9개 병원에 각각 1개 제대(20여명)씩 인력을 배치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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