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 불안, 초조, 공포"…전공의 공백 앞둔 세브란스병원, 환자들 패닉

정심교 기자 2024. 2. 1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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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일정 연기에 불안…사직·파업 없는 '국립' 병원에 환자들 눈길
"여러분이 만들어주신 고객만족도 1위" 무색해진 '환자 불만족'
19일 오전, 서울 신촌의 세브란스병원 앞. "여러분이 세브란스병원을 13년 연속 국가고객만족도 1위로 만들어 주셨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 뒤로 세브란스병원 본관이 안갯속에 싸여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한 '빅5' 병원의 전공의 전원이 19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내일(20일) 오전 6시부터 모든 업무에서 손을 뗄 것으로 예고된 가운데, 19일 오전 서울 신촌의 세브란스병원에서 기자가 만난 환자·보호자 대부분은 안절부절못하며 초조한 모습이 역력했다. 입원해야 하거나 수술적 치료 등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사직·파업과 관련 없는 국립 병원으로 옮겨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치료가 연기될 수 있다'는 통보와 함께 연락을 기다리며 불안해하는 보호자도 적잖았다.

강원도 원주에서 어머니의 뼈 조직검사를 받기 위해 이날 상경했다는 40대 남성 A씨는 "병원을 옮겨야 하나 알아보고 있다. 불안하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는 "원주기독병원(강원도 원주)에서 정밀검사를 권유하면서 해당 병원엔 검사 장비가 없으니 서울의 세브란스병원으로 전원할 것을 의뢰해줬다"이라며 "어머니가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에서 1차 검사 후 2차로 오늘 조직검사를 받는데, 그 결과에 따라 입원해 수술받아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들이 모두 사직한다고 해서 다른 병원을 알아볼까 한다"고 토로했다.

그의 어머니 조직검사 결과는 통상 2주 후에나 나온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사직·파업이 이어진다면 검사 결과가 제때 나올지도 의문이다. 이에 그가 옮기려 알아보려는 병원은 한국원자력의학원 소속 원자력병원으로 국립 암 전문 병원이라고. 그는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은 의사들의 사직·파업이 없을 것 같아 국립 병원 중 알아본 것"이라고 귀띔했다.

영유아 자녀를 둔 30대 여성 B씨는 이날 자녀의 진료를 받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가 재활의학과 주치의로부터 "진료와 입원 일정이 미뤄질 예정"이라고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가 재활의학과에 입원해 치료받아야 하는데 입원 일정이 얼마나 늦춰질지 연락을 기다리느라 초조하다"고 언급했다.

반면 평소 전공의가 원래 거의 없던 기피 과의 입원환자, 수술 치료가 필요 없이 약물만 투여해도 돼 전공의의 존재감이 약한 진료과의 환자들은 '전공의 단체 사직' 파동에도 비교적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약간의 온도 차를 보였다.

이날 오전 암 병동에서 소아암 환자인 초등학생 자녀의 퇴원 수속을 마친 30대 여성 C씨는 "소아청소년과 입원 환자들 사이에서 불안해하는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며 "다행이라 해야 하기 씁쓸하지만 원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별로 없는 탓에, 전공의 단체 사직으로 인한 타격감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19일 세브란스병원 본관 로비엔 환자와 보호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로비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병원 전공의 전원은 이날 사직서를 내고 20일부터 모든 업무에서 손을 뗄 예정이다. /사진=정심교 기자
전공의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할 것으로 예고된 19일, 세브란스병원 암병동의 중환자실에서 의료진과 보호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수술을 이미 했거나,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약물요법 환자들도 '안전지대'에 놓인 모습이다. 전공의가 없어도 교수(전문의)나 간호사가 약물을 투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 암 병동에 암 환자 가족의 보호자인 60대 여성 D씨는 "환자가 이미 암 수술 치료를 받아서 약물치료(항암화학요법)를 받는 중"이라며 "다른 환자들은 모르겠지만 전공의가 없어도 약물치료를 받을 수 있어 일정에 변동이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항암방사선 치료 환자의 보호자인 40대 남성 E씨는 "우리가 다니는 병원의 전공의들이 단체 사직서를 낸다는 뉴스를 접하고 진료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다"며 "다행히 진료 일정 변동 안내를 받지 않았고 예정대로 항암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왔다"고 언급했다.
이 밖에도 휠체어를 탄 채 이동하던 입원 환자 2명도 "진료는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며 "일정 변동에 대한 안내는 아직 없다"고 덧붙였다.

본관에서 마주한 의사 3명에게 "전공의 단체 사직 이후 진료 변경에 대해 논의해봤는가"에 대해 묻자, 이들은 한결같이 "전공의의 일일 뿐 나는 전공의가 아니"라는 답변만 남긴 채 황급히 자리를 떴다. 또 다른 전문의 1명은 "이번 전공의들의 사직에 대해 노코멘트하겠다"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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