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대패삼겹살처럼…발명왕 되는 법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

한겨레 2024. 2. 1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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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에게 듣는 ‘발명 노하우’
수학·과학 재능 없어도 가능해
일상의 불편에서 출발하면 좋아
인근 발명교육센터 방문하고
발명대회 나가는 것도 도움돼
교육청 발명영재교육원 및 전국 207개 발명교육센터에서는 다양한 발명 체험 및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사진은 칠곡교육지원청 발명교육센터에서 학생들이 발명 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 칠곡교육지원청 제공

등교하면서 명찰을 달고 하교하면서는 명찰을 떼야 한다. 하지만 종종 까먹고 명찰을 달고 온종일 시내를 돌아다니는 때도 많다. 특히 요즘같이 개인정보유출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명찰을 잊지 않고 떼는 것이 중요하다. 명찰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번거로움 없이도 외부에선 내 이름이 노출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2년 전 ‘제34회 대한민국 학생발명전시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자동 전자명찰’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전자명찰을 발명한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형진성군은 인터뷰에서 “중학교 때 명찰을 떼지 않는 바람에 낯선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다가와 굉장히 당황한 경험에서 아이디어가 출발했다”며 “이 전자명찰은 학교 내 장소별로 위치 신호를 전송하는 기기를 설치해 둠으로써 영어 교실에서는 영어 이름이, 학교 밖에서는 빈칸으로 이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서양에서는 발명이 취미라고 밝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한국에서 발명이라는 취미는 흔하지 않다. 특히 과학을 전공하지 않거나 과학에 ‘젬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발명은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과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의외의 인물들이 발명을 한 사례를 보면 발명이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시공부를 하던 청년 시절 책 2권을 동시에 놓고 볼 수 있고 누워서도 책을 볼 수 있는 ‘2단 독서대’를 발명해 실용신안 특허를 받았다.

어릴 적부터 발명에 관심이 있었다는 심리학도 출신 탤런트 이시원씨는 코로나19 때 많이 쓰인 투명 마스크의 최초 특허권과 출원권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한 방송에 출연해 “청각장애인들이 입 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듣는데 마스크를 쓰게 되면 못 알아듣을 수 있는 게 안타까워서 발명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춤·노래 등 새로운 것 만드는 것은 다 발명”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발명의 재능을 키워줄 수 있을까?

오랫동안 청소년들의 발명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일을 하며 최근 ‘한권으로 끝내는 발명대회의 모든 것’(플루토)을 펴낸 문혜진씨로부터 어린이·청소년들을 위한 발명 노하우를 들어봤다. 미래산업과학고등학교에서 발명 특허를 공부한 뒤 서강대에서 아트앤테크놀로지를 전공한 문씨는 국제발명전시회 수상 경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관에서 발명 강의도 하고 발명대회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먼저 그에게 ‘수학이나 과학 재능이 없어도 발명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저 역시 수학과 과학을 잘 못하지만 발명을 굉장히 좋아한다”며 “과학적인 원리가 들어간 발명품도 있지만 정말 사소한 것 하나 바꿔서 사람들의 생활을 편하게 만드는 발명품도 많다”고 말했다. 그가 발명한 ‘책 지지대 조립 구조’라는 발명품도 그런 예였다. 책꽂이에 책이 꽉 차 있지 않으면 책이 쓰러지기 쉬운데 책꽂이 중간중간 지지대를 설치함으로써 책이 별로 없어도 쓰러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는 “옛날에는 빨대가 그냥 긴 직선이었는데, 발명가 프리드먼이 빨대 중간에 주름을 넣어서 구부러지는 주름빨대를 만들었다. 이건 과학적 원리가 들어갔다기보다 사소한 부분 하나를 바꾼 것”이라며 “과학을 못하는 사람도 누구나 발명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발명은 거창한 걸 만들어내기보다 일상의 사소한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서 출발한다. 문혜진씨가 발명한 ‘책 지지대 조립 구조’는 책이 꽉 차 있지 않아도 책이 쓰러지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다 발명됐다. 문혜진씨 제공

이에 따라 그는 발명을 ‘특별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협소한 정의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이들의 발명에 대한 거리감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방탄소년단(BTS)이 새로운 노래와 안무를 발표하는 것도 하나의 발명이고, 요즘에는 에스엔에스에서 챌린지들을 많이 하는데, 남들이 따라하기 쉬운 춤을 하나 만들어 챌린지를 하는 것도 발명입니다. 예전에 백종원 대표가 고깃집을 차리려고 고기를 썰어주는 기계를 샀는데 기계를 잘못 사는 바람에 돼지고기를 넣으면 얇게 돌돌 말린 채 나왔다고 합니다. 그걸 본 손님이 ‘삼겹살이 대패처럼 말려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는데, 백종원 대표는 이걸 실패했다고 보지 않고 ‘대패 삼겹살’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상표권을 등록했어요. 이것도 발명의 사례죠.”

그렇기에 부모가 자녀의 발명 재능이나 감각을 키워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도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그는 “우리가 발명이 두려운 이유는 세상에 없는 엄청난 무언가를 창조해야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라며 “부모가 아이들에게 처음부터 엄청나게 대단한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우리 경험 안에서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탐구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좋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잠들려고 누웠는데 ‘아, 누군가 전등 좀 꺼주면 좋겠네’ ‘손뼉을 딱 치면 전등이 꺼질 순 없을까’ 이런 사소한 생각이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로 발전하고 나중에는 훌륭한 발명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씨의 최초 발명품 역시 이런 일상 속의 사소한 불편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키가 커서 허리를 굽혀 설거지를 하고 있는 사람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싱크대 높이가 고정돼 있으니 누군가에는 너무 높아서 힘들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낮아서 힘들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미용실 의자가 펌프질에 의해 높낮이가 조절되는 원리와 연결해 ‘높이 조절 싱크대’를 발명하게 됐다.

“발명은 자기주도학습에 이르는 길”

어린시절부터 발명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라면 이 재능을 더 꽃피우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발명에 집중해 교육하는 발명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의 미래산업과학고등학교, 수원의 삼일공업고등학교, 부산의 대광고등학교 등이 대표적인데, 한국발명진흥회 누리집(www.kipa.org) 방문 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신의 지역과 가까운 발명특성화고등학교를 찾아볼 수 있다.

일반 학교에 다니면서 발명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면 교육청 발명영재교육원 및 전국 207개 발명교육센터에서 발명활동을 할 수 있다. 특허청과 경북교육청이 지난 2022년 경주에서 오픈한 ‘경상북도교육청 발명체험교육관’도 학생들이 발명 체험을 통해 미래 혁신가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발명교육 포털 누리집(www.ip-edu.net)을 방문하면 발명교육센터와 발명교실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얻을 수 있다.

발명대회에 자주 참가하는 것도 자신의 발명 역량을 높이고 다른 이들의 발명으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우리나라에도 청소년들이 참가할 수 있는 발명대회들이 다양하다. 한국발명진흥회와 특허청이 주관 및 주최하는 ‘대한민국 학생발명전시회’는 전국의 초·중·고 재학생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며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등 200여명을 시상한다. ‘대한민국 청소년 발명 아이디어 경진대회’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참여 대상이 더 넓다. ‘전국 학생 과학발명품 경진대회’ ‘YIP 청소년 발명가 프로그램’ ‘전국 창업·발명경진대회’도 눈여겨볼 만한 대회들이다.

발명대회에 적극 참여하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한권으로 끝내는 발명대회의 모든 것’은 친절한 가이드북이다. 책은 발명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법부터 발명대회 준비 과정과 반드시 알아야 할 점, 발명대회에 참가할 때 가장 중요한 발명대회 문서 작성법, 발명 시제품을 만드는 법과 발명대회 대면 발표의 방법까지 꼼꼼하게 안내하고 있다.

한편, 입시교육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발명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보통 입시교육과 발명이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제 경험상 발명을 하는 게 입시에 도움이 됐어요.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아이디어가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다 보면 내가 전혀 모르던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접하게 되고 거기서 원리를 찾고 그 원리를 실생활에 적용해 보는 과정을 통해 ‘아 이래서 공부를 해야 되는구나’를 알게 됐어요. 발명을 통해 내가 왜 공부를 해야 되는지 이유를 찾게 됐고 그 뒤부터는 공부를 하는 게 굉장히 즐거워졌습니다.”

즉, 발명은 자기주도적 공부와 공부의 즐거움으로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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