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내려가는 시시포스도 쉽지 않다고… 숲과 바람이 속삭였다[소설, 한국을 말하다2]

박동미 기자 2024. 2. 19.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1) 구효서
자연인 - 산도깨비
일러스트=변영근 작가

한국 대표 소설가들이 릴레이 연재하는 ‘소설, 한국을 말하다’가 시즌2의 막을 올린다. 구효서, 정이현, 손원평, 최진영, 천선란 등 꾸준히 묵직한 질문을 던져온 중견 작가들뿐 아니라 신선한 시각으로 문단에 활기를 불어넣는 젊은 작가들도 대거 참여했다. 12인의 소설가가 바라본 한국과 한국인, ‘지금, 여기’의 풍경은 매주 월요일 한 편씩 공개된다.

“딱 좋아, 딱 좋아.”

기분이 좋을 때 노영필 씨가 하는 말입니다. 지금처럼 산을 오를 때는 딱이라는 말에 맞춰 손뼉까지 딱딱 칩니다.

손뼉을 치면 장 기능이 강화되고 당뇨합병증도 예방된다고 굳게 믿습니다. 중풍과 치매에는 달걀 박수, 혈액순환에는 먹보 박수가 좋다며 노영필 씨는 친구들에게 열두 가지에 이르는 박수법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노영필 씨는 건강에 관한 것은 물론이요 드론 같은 무인 멀티콥터라든지 해송과 진백나무 분재, 그리고 이안 반사식 카메라에 이르기까지 두루 해박합니다. 무엇에든 꽂히기만 하면 기어이 남들보다 먼저 전문성을 획득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가 바로 올해 나이 예순셋의 노영필 씨입니다. 지금은 그가 꿈같은 노년을 보낼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영월의 시루산을 오르는 중입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모양입니다.”

중년의 일행이 그의 곁을 지나쳐 산길을 오르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좋다마다요. 이 산빛, 저 하늘, 산뜻한 공기가 얼마나 좋습니까.”

그가 힘차게 대답했지요. 물론 날이 맑고 바람은 부드러웠으며 하늘은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좋다고 중얼거렸던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드디어 아내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가 그동안 그를 속박했었냐면 그건 아니었습니다. 노영필 씨는 금융 관련 공공기관에서 줄곧 성실성과 능력을 인정받으며 정년에 이르렀고, 그의 아내는 가장으로서의 노영필 씨의 책임감과 수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다만 퇴직 후의 산중생활에 대해 아내는 회의적이었습니다.

“생각 같지 않을 텐데…. 게다가 나이 들어 자꾸 늙어 가는데 병원도 문화시설도 없는 산골에서 어쩌려고요.”

아내는 걱정이었던 거죠, 속박이 아니라.

“산골이 아니라 산기슭이라잖소. 나 건강한 거 당신 몰라서 하는 소리요? 공기 좋은 곳에 살면 몸이 더 좋아져요. 그리고 자연만 한 문화시설이 어디 있겠소? 전원이라니까, 전원생활.”

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고 싶었습니다. 이젠 그럴 나이도 되었고 자격도 있다고 생각했지요. 노영필 씨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만큼 평생 제대로 쉴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바위를 지고 끝없이 산을 오르는 시시포스와 같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지요. 정상에 올랐나 싶으면 어느새 바위는 굴러떨어지고, 애써 다시 지고 오르면 또다시 굴러떨어지곤 하던 고단한 삶이었습니다.

하여 틈날 때마다 노영필 씨는 노래까지 불러 가며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그러다 결국 며칠 전 아내와 타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노영필 씨가 바라던 이상적인 결론은 아니었습니다만 어쨌든 노영필 씨는 자연의 품에 안겨 사는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서울에 남고 노영필 씨 혼자 일단 실행에 옮겨 본다는 계획이었지요.

마침 노영필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대학 선배에게서 산중생활 20년 차 베테랑인, 일명 시루산 산신령이라는 사람을 소개받았습니다. 그 산신령으로부터 계곡 옆 집터가 하나 났으니 얼른 와 보라는 전갈을 받고 급히 가는 중이었습니다.

“조심해요. 산도깨비 같은 거에 홀리지 말고.”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말했습니다.

“벌건 대낮에 도깨비는 무슨.”

“당신 모르는 모양인데, 산에는 낮에도 도깨비가 산대요. 그거에 홀리면 혼자 길을 잃고 막 헤매다가 가시에 몸이 찔리고 넘어지고 그런대.”

“재수 없는 소리를 하고 그래.”

도깨비는커녕 날만 쨍쨍 좋고 하늘은 눈부실 정도로 맑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내라는 존재에게서 한 번 벗어나 보는 것도 나름 해 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영필 씨는 이래저래 좋아서 다시 손뼉을 치며 외쳤습니다.

“딱 좋아, 딱 좋아.”

그러나 좋은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지요. 시루산 산신령이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어딘가 자꾸 켕기는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산신령의 옷차림이 초라했기 때문일까요. 초라하다기보다는 남루할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몸은 꼿꼿했고 피부는 반질거렸습니다. 탄력 있는 목소리와 형형한 눈빛은 노영필 씨보다 외려 십 년은 더 젊어 보였습니다. 그의 장작 패는 기세야말로 노영필 씨가 꿈꾸어 오던 모습이었습니다.

집이라기보다는 움막에 가까운 산신령의 어두운 거처 안으로 들어섰을 때 노영필 씨는 어째서 켕기는 마음이 생겼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살림이 구차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깔끔한 노영필 씨로서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실내가 어지러웠으니까요. 글음으로 시커먼 편수 냄비와 대바구니, 재 묻은 삼태기, 소나무 삼발이, 도끼와 물동이들이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었지요. 심지어는 바깥의 나무뿌리가 움막 흙벽을 뚫고 부엌 안으로 뻗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산신령님께서는 거처를 오랫동안 비우셨던 모양입니다.”

노영필 씨는 에둘러 물었습니다. 산신령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허허 웃고 말했습니다.

“거처를 비우긴요. 함께 이들처럼 사는 거지요. 이들 안에 들어와 신세를 지며 사는 거니까요. 사람의 질서로 이들을 밀어낼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요? 밀려나지도 않아요. 그러니 이들 법을 따라야지요.”

알 듯하면서도 모를 말이었습니다. 산신령이 말하는 이들이란 대바구니와 삼태기를 뜻하는 것인지, 굴참나무와 쪽동백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숲과 하늘과 바람을 말하는 것인지 모호했으니까요.

그러다가 노영필 씨는 그만 기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온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렸습니다. 흙벽을 뚫고 들어온 것이 나무의 뿌리인 줄만 알았는데 그것이 꿈틀 움직였던 것입니다.

어째서 노영필 씨가 새파랗게 질린 건지 산신령이 모를 리 없었지요. 산신령은 부뚜막 위에 놓여 있던 쪽빛 열매 몇 개를 집어 아궁이의 불 속에 무심히 툭 던져 넣었습니다. 알싸한 열매 향이 퍼지자 꿈틀거리던 나무뿌리가 움막 바깥으로 천천히 기어나갔습니다.

“흑칠황장이에요. 독 없는 뱀이니 걱정할 거 없어요.”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노영필 씨는 진저리쳤습니다. 전원생활에 대한 꿈을 영영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아졌습니다. 산신령이 소개해 주는 계곡 옆 집터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도망치듯 서둘러 하산했습니다.

한참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라갈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노영필 씨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바위에 앉아 숨을 돌렸습니다. 그러다가 놀라운 광경을 보았지요. 서둘러 떠난 계곡 옆 그 집터가 바로 눈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내려간다고 산을 내려갔지만 떠난 그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노영필 씨는 계곡 옆 집터를 외면하고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를 정신없이 걸어 내려갔지요. 그리고 숨이 차 잠시 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노영필 씨는 엉엉 울어버리고 싶었습니다. 다시 계곡 옆 그 집터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여보, 나 아무래도 산도깨비에 홀린 것 같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전원생활 꿈이 과하다 했더니.”

“과하다니?”

“당신의 전원이라는 게 몽땅 도시에 얌전히 앉아서 꾼 꿈이잖아요. 그런 데가 세상에 어디 있다고. 이제부터 다시 제대로 꿔 봐요.”

“제대로?”

“그래요. 내려놓을 거면 제대로 한번 내려놔 보라고요.”

듣고 있자니 아내도 산신령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도 숲도 바람도, 비웃는 건지 딱하게 여기는 건지 푸르고 부드럽게 노영필 씨를 감쌌습니다. 평생 짐을 지고 산을 오르던 시시포스도 고단했지만, 짐을 내려놓으려 산을 내려가는 시시포스도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노영필 씨는 하늘과 숲과 바람의 속삭임으로 어렴풋이 알아차렸습니다. 비운다 비운다 하고 실은 또 다른 헛된 꿈으로 채워가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 어떡하지?”

노영필 씨가 물었습니다.

“콧등에 침을 세 번 바르며 기도해요. 다시 이곳에 제대로 돌아오겠습니다아, 하고요.”

아내의 음성이 신령한 산울림처럼 들렸습니다.

“전원생활 꿈꿨지만 도시의 백일몽 불과 인식부터 바꿔가길”

■ 작가의 말

좋은 산빛, 맑은 하늘, 산뜻한 공기…. 전원생활에 대한 기대로 한껏 들뜬 노영필 씨가 인식한 자연은 딱 거기까지다. 그에게 뱀은 자연이 아니다. 질풍과 폭우도 그렇다. 한때 전원생활을 꿈꿨던 구효서 작가는 “자연인이 되고 싶었으나 실패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려고 했다”고 ‘산도깨비’ 집필 동기를 밝혔다. “강원도에 땅을 장만한 적도 있어요. 그게 다 탁상행정과 같은 ‘탁상소망’이라는 걸 깨달았지만요.” 구 작가는 전원에 대한 무지가 전원에 대한 무시, 나아가 전원에 대한 결례와 해악이 된다고 했다. 노영필 씨엔 구 작가가 투영됐는데, ‘산에는 꽃이 피네’를 자주 읊는 것도 닮았다. 구 작가는 스스로 전원생활을 할 자격이 없다고 결론 낸 후엔, 김소월의 시를 노래하는 것도 “시인과 꽃에 대한 결례”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소설은 ‘전원생활의 꿈’이 결국 도시의 꿈이지 전원의 꿈은 아니라고 말한다. 도시에서 꾸고 도시에서 만끽하며 도시에서 끝날 백일몽이다. “실행하려는 순간 무참히 깨어지는 꿈이지요. ‘아내’의 말처럼 ‘제대로 된 전원생활’이 어떤 것인지 알려면 우리 자신의 인식부터 재정립해야 합니다. 말로만 하고 꿈으로만 꾸는 자연이 과연 거기에 있을까요?”

■ 구 작가는…

1958년생. 1987년 등단 후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낯선 여름’ 등을 썼다.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수상.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