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 “당신도 광야를 헤매는 누군가의 ‘천사’가 될 수 있다”

김윤덕 기자 2024. 2.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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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이 만난 사람] 다큐 ‘바울로부터’ 찍은 차인표
CGN 다큐 '바울로부터'에 출연한 배우 차인표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광야가 있고, 누구나 광야를 헤매는 이들의 천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극빈국 어린이 돕기, 탈북자 돕기에 이어 마약퇴치운동을 시작한 차인표는 "자신의 생애에서 제일 낮아졌을 때 예수를 만난 바울처럼 나 또한 다큐를 촬영하며 겸허해졌다"고 말했다. 2024.1.30. / 고운호 기자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광야가 있다고 차인표는 말했다. 사나운 벌판에서 수도 없이 넘어졌지만 굽이굽이 자신을 일으켜 세운 손길이 있었다고 했다. 입양으로 시작해 극빈국 아이들과 탈북자 돕기, 마약 퇴치 운동에 발 벗고 나선 것도 그 사랑을 되갚기 위해서였다.

영화 ‘바울로부터’ 시사회에서 차인표를 만났다. 그는 최근 사도 바울의 일대기와 행적을 다룬 CGN 10부작 다큐에 출연했다.

CGN 다큐 '바울로부터'의 한 장면. 독실한 크리스찬인 차인표는 "위기의 한국 교회에 사도 바울이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고 말했다. 10부작 다큐는 기독 OTT '퐁당'에서 볼 수 있다. /CGN 제공

◇위기의 한국 교회에 경종을

-왜 바울인가?

“바울은 예수 믿는 이들을 핍박하는 바리새인이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던 중 예수의 음성을 듣고 삶이 180도 달라진다. 돌과 채찍을 맞으면서도 예수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고 끝내 순교한다. 최초의 선교사였던 바울이 없었다면 오늘의 기독교도 없었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배우가 종교 다큐를 찍기가 쉽지 않을 텐데.

“지난해 1월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내 손에 들려 있던 책이 톰 라이트의 ‘바울 평전’이었다(웃음). 꽤 오래전 사둔 책인데 마침 새해 첫날부터 읽고 있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일까?

“그런 것 같다(웃음). 한 달 이상 집을 비우는 일인 데다, 암 투병 중이셨던 아버지 때문에 망설였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키프로스, 이스라엘, 튀르키예, 몰타, 이탈리아 등 여섯 나라에서 2~3일에 한 번씩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했을 때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비행기를 수백 번 넘게 탔지만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증세였다. 순간 내가 믿고 의지하고 목표로 삼아왔던 모든 것, 그것이 돈이든 얄팍한 명예든,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이든 그 어떤 것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저 하나님만 찾았다. 제발 숨쉬게 해 달라고. 그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없고 하찮은 존재였다. 바울처럼.”

-왜 바울처럼인가?

“유대교 최고 엘리트였던 바울은 예수를 만난 뒤 그의 생애에서 가장 낮아지고 겸허해진다. 스스로 재판관처럼 살아온 나의 교만이 바울 다큐를 찍으면서 무너져내렸다.”

-위기의 한국 교회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라고 하더라.

“바울은 명예나 부귀영화를 위해 예수의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살해 위협을 받으면서도 예수가 십자가를 통해 완성한 궁극의 사랑과 용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온몸을 던졌다. 지금 한국 교회에 그런 절박함이 있는지 바울은 묻는다. 전도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임을 일깨운다.”

탈북자의 삶을 그린 영화 '크로싱'(2008년)의 한장면. 차인표는 함경도 탄광마을에서 살던 김용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고비사막에서 만난 은하수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로 벼락 스타가 된 차인표의 이미지를 바꾼 건 탈북자를 소재로 한 영화 ‘크로싱’이었다.

“하기 싫어서 계속 고사했던 작품이다. 몽골로 중국으로 몇 달씩 촬영 다니며 고생할 테고, 흥행은 절대 안 될 거고(웃음). 누가 탈북자 영화를 보겠나.”

-그때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건가?

“몽골 고비사막으로 답사를 갔을 때 급체가 와서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오한에 떨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양탄자처럼 덮여 있더라. 수많은 탈북자가 이 사막을 건너다 저 은하수를 보며 죽어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이 영화는 내게 일이 아니라 사명이라는 확신이 왔다.”

-중국 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시위도 했던데.

“‘크로싱’ 개봉 4년 뒤 일이다. 중국 공안에 붙잡힌 탈북자 30여 명이 강제 송환 위기에 처했는데 영화 찍을 때 알게 된 여명학교 아이들의 형제와 부모도 포함돼 있었다. 그래서 중국 대사관 앞에 가서 호소문을 발표했다. 탈북자의 인권과 생존에 우리가 먼저 관심을 가져야 세계인도 주목할 거라고 믿었다. 탈북자들도 세계시민으로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지구촌 가족을 이루며 사는 차인표 신애라 부부. 2010년 포니정 혁신상을 받았다. /조선일보DB

◇입양, 후회한 적 없다

-남경필 전 경기지사와 마약 퇴치 운동을 시작했다.

“제 나이가 연예계에서는 이제 많은 축에 든다. 작품도 중요하지만 후배들을 위해 뭐라도 조금 돕고 은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예인들이 몹시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상의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소문이 날까 봐. 자살 충동을 느끼고, 마약을 하게 되더라도 상담과 치료의 길로 들어서기 힘들다. 그래서 남경필 형님께 연락을 드렸다.”

-단체 이름을 정했다고 하더라.

“‘Never Give Up(절대 포기하지 마라)’을 줄인 NGU,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은구(恩求)가 된다. 마약 치료 전문가인 조성남 국립법무병원 원장님과 셋이서 2주에 한 번 줌 회의를 하며 준비하고 있다. 남 지사님 말씀대로 마약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자식이나 손자들 모두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문제다.”

-그 사이 배우 이선균씨 사건이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했다. 사건 전말을 제가 다 모르니 뭐라 말씀드릴 순 없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올해가 ‘사랑을 그대 품 안에’가 방영된 지 30주년이더라. 이 드라마에서 만난 신애라씨와 결혼했다.

“아내한테 많이 배운다. 내가 갈피를 못 잡을 때 조언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다.”

-성격은 매우 다르다던데.

“지금도 안 맞는다(웃음). 아내는 외향적이고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는데 나는 내성적이고 집에 있기를 좋아한다. 살림에 대한 아내의 깨알 원칙을 내가 잘 못 따라가 매일 잔소리를 듣는다.”

-부부가 함께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텐데.

“성격은 다르지만 인생의 한 방향을 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입양한 예은이, 예진이는 많이 컸겠다.

“예은이는 고3, 예진이는 고1이다. 공부하기 좋아하는 예진이는 언어 치료사가 꿈이고, 공부엔 별 관심없는 둘째 예은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꿈이라 메이크업을 가르쳐주는 학원에 다니고 있다.”

-잔소리도 하나?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꼭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할 일은 아이들한테 충분히 기회를 주는 것, 그리고 실패했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버팀목이 돼 주는 것이다.”

-입양을 후회한 적은 없나?

“한 번도. 너무 오래된 일이라 우리가 입양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웃음). 내가 젊다면 또 입양할 텐데. 이젠 우리 세 아이가 결혼해 입양을 하지 않을까.”

CGN 다큐 '바울로부터'의 한 장면. 최종상 선교사와 함께 출연한 배우 차인표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광야가 있고, 힘들어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 세워주는 천사의 손길이 있었다"고 했다. /CGN 제공

◇ 내 인생의 광야

-차인표의 인생에 광야는 언제였나.

“1987년 한국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산 6년이다. 한 푼 두 푼이 절실할 만큼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시간이다.”

-아버지가 해운업을 하지 않았나.

“내가 중학생 때 부모님이 헤어지셔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차인표의 이미지는 언제나 금수저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웃음).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 11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뉴저지의 한 정신병원에서 간호 보조사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덕분에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를 맞기도 했다.”

-어떤 크리스마스였길래?

“40년 전인데도 정확히 기억난다. 그날 중환자 병동에서 내가 맡은 임무는 마약중독 환자를 밤새 지켜보는 일이었다. 자살할 위험이 있어 화장실 갈 때도 따라다니고 잠들었을 때도 병실 문 앞에 앉아 그를 지켜봐야 했다. 그러다 문득 예수님이 다시 세상에 온다면 어디로 오실까 생각했다. 에드워드라는 저 남자처럼 누가 쳐다봐 주지 않으면 자기 목숨 하나 지킬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오지 않을까. 순간 누군가 뒤에서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청년들에게 ‘오늘 하루로 인생이 결정나지 않는다. 포기하지 말고 버티라’고 했더라.

“한국에 돌아와 200군데 이력서를 냈는데 딱 한 군데서 연락이 왔다(웃음). 그런 내가 배우가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 했다. 조상님들 묘를 정리하러 선산에 갔다가 증조할아버지부터 손자 손녀까지 30~40명 이름이 적힌 비석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증조부는 빈농으로 태어나 빈농으로 살다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만일 힘들다고 중간에 삶을 포기했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 우리는 수백 수천 대의 어머니들이 품어온 사랑의 결정체이자 누구도 폄훼할 수 없는 존재다. 이 기적 같은 삶을 포기해선 안 된다.”

-소설도 쓰더라. 벌써 3권을 발표했다.

“글을 쓸 때 내가 가장 자유롭다고 느낀다.”

-위안부 피해자인 훈 할머니를 모티프로 삼은 첫 소설 ‘잘 가요 언덕’은 이어령 선생이 극찬했던데.

“큰아이가 4학년일 때 ‘나눔의집’ 봉사를 함께 다녔는데,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돌아가시는 게 안타까웠다. 이분들이 다 떠나시면 누가 이 슬픈 역사를 알려줄까, 하는 생각에 동화처럼 써본 작품이다.”

-본업은 배우다. 아카데미상에 대한 포부는 없는지.

“저까지는 기회가 안 올 것 같다(웃음). 그리고 한 번도 그런 영예가 내 삶에 중요하지 않았다.”

-컴패션을 통해 20년간 후원해온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나?

“우리 부부가 가장 처음 후원한 아이가 리카다. 개중엔 변호사, 국회의원이 된 아이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리카는 자기 엄마처럼 싱글맘이 됐다. 얼마 전 만났는데 아내와 부둥켜안고 울더라. 그래도 우리는 변함없이 리카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할 것이다. 끝까지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당신은 돈이 많아서 나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부자라도 나누지 않으면 거지이고, 거지라도 나누면 부자라는 말은, 구두를 닦아 모은 돈으로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김정하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다. 당신도 광야를 헤매는 누군가의 천사가 될 수 있다.”

서울 용산구 온누리교회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배우 차인표. 2024.1.30. / 고운호 기자

☞차인표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암고, 미국 럿거스대학을 졸업했다. 1993년 MBC 탤런트로 입사,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강풍호 역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배우 신애라와 결혼해 1남 2녀를 두었다. 두 딸은 공개 입양했다. 컴패션을 통해 빈곤국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으며, 탈북의 아픔을 그린 영화 ‘크로싱’에서 열연했다. ‘잘 가요 언덕’ 등 세 편의 소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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