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꺾이지 않은 연극 사랑…공간소극장을 지켜내다

김미주 기자 2024. 2.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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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故 허영길 선생 주도 개관

- 경영난 등 수차례 폐관위기에도
- 주민 축제·동인 활동 등에 매진
- 내달 최인훈 작가 희곡 무대에

- “OTT 등 볼거리 넘쳐나는 시대
- 연극은 그저 제 갈 길을 가겠다”

부산도시철도 2호선 대연역에서 2번 출구로 향하면,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 입구 옆 ‘공간소극장’을 만난다. 지난해 여름 극장 문을 활짝 연 채 ‘우리 동네 빨래터’라는, 동네 주민이 자유롭게 연극을 즐긴 축제가 열린 곳이다. 올해로 개관 20주년인 공간소극장을 지난 16일 찾았다.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은 공간소극장의 전상배(가운데 앉은 이) 대표가 동료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공간소극장 제공


이날 공간소극장에서는 다음 달 1~9일 열리는 공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를 앞두고 무대 설치가 한창이었다. ‘광장’으로 익숙한 최인훈(2018년 타계) 소설가의 동명 작품이 원작이다. 최인훈 작가는 스스로 “극작가로 남고 싶다”고 말할 만큼 희곡에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를 포함해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둥둥 낙랑둥’ 등 초단편 1편을 제외한 희곡 6편을 남겼다.

전상배 대표가 최 작가의 작품을 연극으로 연출한 건 세 번째다. 2022년 ‘봄이 오면 산에 들에’와 지난해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를 선보였다. 최 작가의 희곡 모두를 무대에 올리는 게 그의 목표다. 전 대표는 “최근 한국 연극계에서 ‘한국 연극에 한국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는 자각과 반성이 있다 “한국 연극의 고전과 거장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외국 고전에 밀려난 한국 작품을 조명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설화를 기반으로 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온달과 공주를 통해 권력과 인간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꿈과 회상 대화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며 비극이 된 부조리함이 신비롭고 독특하게 드러난다.

공간소극장은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2004년 수영구 남천동에서 한국 연극계의 거장 고 허영길 선생의 주도로 개관한 공간소극장은 초기 합류한 전 대표와 함께 몇 번의 풍랑을 겪었다.

2008년 건물주가 바뀌며 월세가 두 배가량 오른 게 첫 위기였다. 가까운 옆 건물로 옮겨 10여 년을 버텼다. 운영난으로 다시 폐관 위기를 겪었다. 전 대표와 배우 황미애 씨가 극장을 이어가고자 지금 위치로 또 한 번 자리를 옮긴 게 2018년이다. “지금은 (이런 일들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데 눈물 나는 과정이었다. 지역에서 소극장을 유지하며 겪는 딜레마와 갈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 대표의 회상은 깊고 묵직했다.

20년간 공간소극장을 스쳐 간 수많은 작품과 인연은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다. 지금 지역에서 활동하거나 사라진 다수 극단이 공간소극장에서 창단 공연을 올리는 등 소중한 시작을 함께했다. 전 대표는 “여기서 함께 작업했던 극단이나 스태프가 여전히 활동한다. 실타래처럼 확장된 인연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올해는 ‘공간연출동인’ 1기 출범 준비를 마쳤다. 서로의 공연을 보고, 연출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극적공동체 ‘고도’ 조창주 연출가, 극단 ‘막’ 최치환 연출가, 극예술실험집단 ‘초’ 김동규 연출가 등이 뜻을 모았다.

전 대표는 “연출가들이 연구와 공부 차원에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관객에게 연극 본연의 매력을 잘 전달하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연극만이 할 수 있는 특징을 살려 몰입감 높은 무대를 선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요즘 콘텐츠가 많아져 연극이 설 자리가 좁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연극은 제 갈 길을 가면 된다고 본다. 연극 무대의 핵심은 상상력인 만큼 다른 콘텐츠가 할 수 없는 생생한 무대를 만드는 게 먼저다”고 말했다.

그는 소극장이 사랑방이 되는 날을 기다린다. 지난해 치른 ‘우리동네 빨래터’가 그 예다. 소극장 문을 열어 놓고 꽹과리 장구를 치고 놀다가 동네 주민이 오면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즉흥으로 무대에 올렸다. 본인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무대에 오르니 어르신들도 좋아했다. 그는 “주민이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사랑방 역할을 소극장이 할 수 있다. 우리도 소극장을 벗어나 거리에서 주민을 만나는 등 상호 교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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