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졸업앨범에서 사라지는 교사들

김기동 2024. 2. 19.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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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대한민국의 겨울을 '오겡끼데쓰까(잘 지내시나요)'라는 가슴 저린 외침으로 물들인 영화 '러브레터'.

추모식 날 히로코는 그의 중학교 졸업앨범에서 발견한 그의 옛 주소로 안부 편지를 띄운다.

그런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교사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2020년 서울교사노조 설문조사에서 교사 절반이 졸업앨범 폐지에 찬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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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대한민국의 겨울을 ‘오겡끼데쓰까(잘 지내시나요)’라는 가슴 저린 외침으로 물들인 영화 ‘러브레터’. 사랑했던 연인 후지이 이쓰키가 죽은 지 2년이 지났지만 약혼녀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 분)는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한다. 추모식 날 히로코는 그의 중학교 졸업앨범에서 발견한 그의 옛 주소로 안부 편지를 띄운다. 우리에게도 예전 졸업앨범 뒷면에 졸업생과 교사의 연락처를 적던 시절이 있었다.

학창 시절 추억이 담긴 졸업앨범은 이젠 ‘계륵’ 같은 존재다. 어쩌다가 이사라도 가게 되면 먼지 쌓인 졸업앨범은 처치 곤란이다. 처음엔 거실 책장에 고이 모셔둔(?) 앨범은 아이들이 커가면서 동화책과 문제집, 교양 필독서 등에 밀려 창고신세로 전락한다. 하지만 먼지만 털어내고 넘기는 순간 근사한 타임머신으로 변모한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한결같이 경직된 표정 속에 촌티가 풀풀 나는 친구들 모습에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가물가물한 선생님의 얼굴도 정겹다.

그런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교사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교사들이 디지털 범죄를 우려해 개인정보 노출에 동의하지 않고 있어서다. 원하는 교사만 사진을 찍거나 교장·교감, 졸업반 담임 외에는 사진을 싣지 않는 추세다. 졸업반 담임까지 사진 촬영을 거부하는 일도 빈번하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n번방 사건’에서 현직 교사의 딥페이크 사례가 알려졌다. 일부 학부모 사이에서는 담임의 앨범 사진을 공유하며 ‘예쁘다’, ‘험상궂다’는 식의 외모 품평까지 벌어진다. 2020년 서울교사노조 설문조사에서 교사 절반이 졸업앨범 폐지에 찬성했다고 한다.

서울·경기·강원교육청을 필두로 대전, 대구, 충남교육청은 수년 전부터 최근까지 제자와 교사를 연결하는 ‘스승찾기’ 서비스를 중단했다. 지난해에는 대전의 한 고교에서 20대가 사제지간이던 교사를 찾아가 흉기로 찌른 사건이 있었다. 학교 폭력 양상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정작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의 폭언·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감정 노동자 처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언감생심이다. 아날로그 공간에서 스승을 떠올리는 추억마저 사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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