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남자 드랙퀸이 DDP를 간 까닭은? [여기힙해]

이혜운 기자 2024. 2. 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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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패션위크 FW 2024' 여자의 모습으로 디자이너 '선우'의 옷을 입고 패션쇼에 참석한 모습(왼쪽)과 남자의 모습으로 BLR 패션쇼에 참석한 국내 대표 드랙퀸 나나영롱킴.

닭 볏 같은 화려한 모자, 원반으로 떨어지는 롱드레스, 갑옷처럼 보석 박힌 장갑.

지난 2일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아트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진한 분홍색으로 꾸민 한 사람이 들어오자 취재진뿐만 아니라 일반 관람객들도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쏟아지는 플래쉬 세례에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나나영롱킴(본명 김영롱)’. 국내 대표 드랙퀸입니다.

◇한국 대표 드랙퀸 나나영롱킴

드랙(Drag)이란, 사회에 주어진 성별의 정의에서 벗어나는 겉모습으로 꾸미는 행위를 말합니다. 흔히, 여장 남자를 드랙퀸, 남장 여자를 드랙킹이라고 합니다. 서양에서 드랙퀸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습니다. 연극·오페라 등에서 여자가 무대에 오르지 못하던 시절, 여성 역할도 모두 남성이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나나영롱킴과 함께한 댄스 크루 라치카의 가비와 원밀리언의 리아킴(왼쪽), 디자이너 선우와 함께한 나나영롱킴(오른쪽).

나나영롱킴은 국민대 연극영화과를 다니다 2007년 뮤지컬 ‘헤드윅’을 보고 드랙퀸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자신을 알릴 만한 소셜미디어가 없어, 무작정 드랙을 하고 홍대 부근이나 강남 등에서 열리는 큰 파티나 페스티벌을 찾아가 “나 좀 써봐라”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는 국내 대표 드랙퀸이 됐습니다.

디자이너 선우 옷을 입은 댄스크루 원밀리언(왼쪽)과 라치카(오른쪽). /Mnet

◇댄서들의 디자이너 선우

그가 이날 DDP에 등장한 것은 2024 F/W 서울패션위크 디자이너 선우(SUNWOO)’의 패션쇼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선우의 디자이너 장선우는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 출신입니다. 영국 노숙자들이 원터치 텐트로 마을을 이룬 것을 보고, 이 텐트를 옷에 녹인 디자인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디자인 철학은 ‘펀’과 ‘경계 파괴’. 그래서인지 그는 ‘댄서들이 사랑하는 디자이너’로도 불립니다. Mnet 서바이벌 ‘스트릿 우먼 파이터’ 시즌 1에서는 가비의 라치카가, 시즌 2에서는 리아킴의 ‘원밀리언’이 그의 옷을 입고 공연을 펼쳤습니다.

2024 서울패션위크 FW 선우SUNWOO. /이혜운 기자

◇한국인 없는 K팝 걸그룹

이렇듯 올해 ‘서울패션위크 F/W 2024′에서 제가 느낀 감정은 ‘경계와 공식 파괴’였습니다. 지난 5일 피날레를 장식한 디자이너 박윤희의 브랜드 ‘그리디어스’의 쇼 오프닝을 시작한 것은 K팝 걸그룹 ‘블랙스완’입니다.

'그리디어스' 패션쇼에서 '블랙스완'.

“순진한 척 하지만 자꾸 욕심 나잖아/ 좀 더 깊이깊이 은밀해지는.”

유창한 한국어에 영어가 섞인 노래, 칼군무의 춤 등 어느 K팝과 비슷하지만, 이들은 2020년 한국에서 데뷔한 ‘최초의 전원 외국인 K팝 걸그룹’입니다. 인도인 스리야, 아프리카 세네갈 출신 파투, 브라질인 가비, 미국인 앤비로 구성돼 있습니다. SES, 핑클 등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베이비복스를 만든 DR뮤직 소속입니다. 이들은 한국계나 한국인 멤버 없이 한국어 노래를 부르고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합니다. 이날은 오프닝 외에도 그리디어스의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스타들의 디자이너 박윤희

이번 그리디어스 컬렉션 콘셉트는 ‘스노우폴 아프리카’였습니다. 겨울에 아프리카, 그리고 스노우폴이라니! 평소 그의 유머러스한 센스가 옷에도 그대로 묻어납니다. 유니크한 디자인에 강렬한 컬러감으로 비욘세, 패리스 힐튼 등 ‘스타들이 좋아하는 디자이너’로 유명한 그는 이번에는 아프리카의 전통 아트와 기법에서 영향을 받은 패턴과 컬러로 더욱 다채로운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그리디어스 옷을 입은 패리스 힐튼(왼쪽)과 비욘세(오른쪽).

박윤희 디자이너는 “추운 겨울이 되면 아프리카 대자연과 뜨거운 햇살 신비로운 문화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항상 한다”며 “아프리카의 가장 위대한 자연과 문화를 그리디어스만의 위트로 재해석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드랙퀸 공연을 보려면?

패션쇼 이야기가 길어졌는데요. 이렇게 요즘은 ‘경계인’들이 주목 받는 시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경계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남들이 가보지 못한 세계를 가보고,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본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요.

교동 유토피아 대구 공연 포스터.

레터 초반에 등장한 드랙퀸 ‘나나영롱킴’의 공연은 오는 24일 오후 8시 보수의 성지 대구 동성로 12길 21 ‘교동 유토피아’에서 열립니다. 나나영롱킴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스타 드랙퀸 ‘링링’도 함께 나와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고, 술도 함께 마시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대구 시민 분들 한 번 가보시고요!

서울 드랙 캬바레 포스터. /경리단 소셜클럽

서울에서는 용산구 루프탑 ‘경리단 소셜클럽’에서 주기적으로 드랙퀸 공연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오는 3월 3일 낮 4시부터는 드랙퀸 ‘허리케인 김치’가 주최하는 ‘서울 드랙 캬바레’도 열린다고 하는데요.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에서 드랙퀸 공연을 접하신 분들은 한국은 어떤지 비교해보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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