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형준 사장 “MBC 민영화, 현실적으로 불가능…길들이기 시도”

최성진 기자 2024. 2. 1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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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문화방송 사장
“사주 찾아주려는 공영방송 사영화” 비판
“‘바이든-날리면’ 판결 2심서 바로잡겠다”
안형준 문화방송(MBC) 사장이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 본사 사장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안 사장 뒷편에 고 이용마 기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안형준 문화방송(MBC) 사장이 와이티엔(YTN) 지분 매각 등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공영방송 민영화와 관련해 “민영화라기보다 사주를 찾아주는 ‘공영방송의 사영화’”라며 비판적 견해를 드러냈다. 여당을 중심으로 꾸준히 언급되는 문화방송 민영화 주장에 대해서는 “정권과 권력에 고개 숙이지 않는 엠비시를 길들이려는 시도로, 국민이 가만히 두고 보진 않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못박았다.

안 사장은 오는 23일 취임 1년을 맞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바이든-날리면’ 보도와 관련해 정정보도를 명령한 1심 재판부의 판단, 방송사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무더기 법정 제재를 쏟아내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심의 행태 등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대응 방안도 밝혔다. 류희림 위원장 취임 이후 방심위는 언론계와 야당으로부터 ‘정권 청부 심의기관’으로 전락했다고 평가받는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 본사 사장실에서 이뤄졌다. 안 사장은 본격적인 인터뷰 시작에 앞서 문화방송의 지난 1년을 ‘절벽에 매달려 찬바람과 비바람을 이겨낸 1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문화방송 사장으로서 내세우고 싶은 지난 1년의 성과가 있다면.

“작년 이맘때 처음 사장이 됐을 때만 해도 광고 시장이 너무 얼어붙어 2023년 1천억원 정도 적자가 예상된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때는 막막했는데 ‘연인’ 파트1~2와 ‘열녀박씨 계약결혼뎐’ ‘밤에 피는 꽃’ 등 드라마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2~3 등 예능의 성적이 좋았다. 올 초 계산해보니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출연금 등을 모두 빼고도 80억원 가까이 영업이익이 난 것으로 집계됐다. 질적인 측면에서는 곧 발표하겠지만, 작년 봄부터 준비해 온 외부 제작기지가 곧 출범한다. 최근 미디어 콘텐츠 소비는 스마트폰과 오티티(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패스트(FAST·광고기반 무료 실시간 재생서비스), 에스브이오디(SVOD·구독형 주문비디오) 등을 통해 많이 이뤄진다. 이런 환경에 적합한 콘텐츠를 만들려면 우리에게도 스튜디오드래곤(씨제이이앤엠 자회사)이나 에스엘엘(SLL, 제이티비시 자회사)같은 외부 제작기지가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유튜브와 오티티 등의 견제 속에서 지상파인 문화방송의 예능과 드라마가 지속적으로 선전할 수 있을까.

“엠비시에는 사내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그러니까 후배들이 어떤 아이디어를 내도 찍어누르지 않는 민주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런 환경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우수한 콘텐츠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외부 제작기지를 통해 우리 피디가 훌륭한 작가와 웹툰사 등과 락인(Lock-in·가두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작 요소를 확보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최근에는 스포츠 중계까지 오티티 쪽으로 많이 넘어가고 있다. 이런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현대 자본주의를 플랫폼 자본주의라고도 하는데, 이윤을 추구하는 아마존이나 애플, 쿠팡 등 국내외 글로벌 유통 공룡 및 플랫폼 기업이 콘텐츠로 이용자를 락인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흐름 속에서 방송·통신 약자의 보편적 시청권이 배제되고 있다. 개선돼야 한다.”

-정부도 마찬가지겠지만, 문화방송 등 공영방송도 보편적 시청권 보장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유료방송이 일반화 됐다고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전파를 통해 안테나로 티브이를 보는 시청자가 100만명 가까이 된다. 이들 방송·통신 약자의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려면, 정부가 과도한 중계권 확보 경쟁 및 이윤 추구 행위에 대해 일정하게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엠비시나 케이비에스 등 공영방송도 컨소시엄 구성 등 다양한 형태로 보편적 시청권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안형준 문화방송(MBC) 사장이 지난 14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여권에선 ‘공영방송이 너무 많다’는 주장이 계속 나온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특정 정치세력이나 경제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제대로 된 소통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는 공영방송은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주의에 기반한 정책의 올바른 수립·집행을 위해서도 공영방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여당의 ‘1공영다민영’ 체제, 혹은 공영방송 민영화 주장 속에서 최근 와이티엔 민영화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서 승인됐다.

“민영화라기보다는 사주를 찾아주는 공영방송의 사영화 아닌가. 지난해 사장 출마에 앞서 한국기자협회 소속 언론사 156개의 소유 구조를 분석해봤는데, 민영·종교방송이 90% 가까이 됐다. 사주가 없는 공영 언론은 고작 10.6%에 그쳤고, 심지어 민영방송 중 15개가 건설사 소유인 것으로 파악됐다. 기업의 영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국민이 주인인 방송이 많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는 결과다. 공영방송 민영화는 민주주의의 흐름을 거스르는 잘못된 정책 방향이다.”

-와이티엔에 이어 문화방송 민영화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민영화 할 경우, 현명한 우리 국민들이 가만히 두고 보진 않을 것이다. 과거에도 일각에서 엠비시 민영화를 검토해본 적이 있는데, 현재 방문진과 정수장학회가 갖고 있는 엠비시 주식을 특정 사주나 세력이 사려면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방송법에서는 대기업의 방송사 지분 소유도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민영화 주장을 할 수는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문화방송 민영화를 계속 주장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정권과 권력에 고개 숙이지 않는 엠비시를 길들이려는 시도라고 본다.”

문화방송 민영화는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실제로 검토·추진된 적이 있다. 2010년 국가정보원이 작성해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실에 보고한 ‘엠비시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 문건을 보면 국정원은 3단계 ‘문화방송 정상화’ 방안을 제시했는데, 그 최종 단계가 ‘소유구조 개편’ 곧 민영화였다. 여기에는 ‘지방 엠비시 매각 대금으로 정수장학회 지분 30% 인수’(1안), ‘현재 자산규모에 맞춰 유상증자 실시 및 신주 발행으로 인수자 공모’(2안), ‘방심위의 왜곡보도 제재를 축적, 방송 재허가 거부로 폐업후 자산매각’(3안) 시나리오가 포함돼 있다. 이 시나리오는 2012년 대선 직전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 등 문화방송 관계자가 고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만나 지분 인수를 논의하는 단계에서 중단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와이티엔(YTN)지부 조합원 등이 지난 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방통위의 와이티엔 매각 승인을 규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최근 방통위가 올 연말 문화방송 본방송인 디티브이(DTV) 재허가 신청할 때에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공정성 객관성 확보 방안 등을 포함한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타당한 요구라고 보나.

“지나친 측면이 많고,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방송, 특히 시사·보도의 공정성에 관한 평가는 정치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 시청자들이 평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엠비시를 향해 일방적인 비판만 하는 분들은 스스로의 편향성은 없는지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짚어두고 싶다.”

-방통위 요구에는 어떻게 답변할 건가.

“일단 선거방송이나 인용보도 등과 관련된 보도 준칙은 저널리즘책무실을 중심으로 좀 더 섬세하게 다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엠비시 보도국에서는 다양한 토론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공정성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내부의 자정작용이 먼저 작동한다. 우리는 취재 과정의 정당성을 포함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앞으로도 잘 지켜나가되, 권력을 감시하고 약자를 대변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문화방송에 대한 신뢰도가 높게 나오는 여론조사가 있으나, 그런 조사에서도 동시에 ‘불신하다’는 응답이 꽤 높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문화방송은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나.

“확증편향의 시대에 자기와 생각이 다른 보도를 비판하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불신하다고 답변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 자체를 어떻게 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어떤 사안에 접근할 때 최대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려 노력하고, 논조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다른 매체에 없는 팩트로 승부하는 우리의 문화와 전통이 내면화된다면 신뢰도는 더 오르고 불신의 폭은 더 줄지 않을까 싶다.”

-방통위에서는 ‘법적 소송 등 법률 관련 분쟁 관리 등 준법 통제 강화를 위한 구체적 계획’도 요구했다. 당장 ‘바이든-날리면’ 보도에 대한 항소도 진행하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른다라고 하면서 ‘바이든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음이 밝혀졌다’ 이렇게 정정보도 하라는 기이한 판결이 나온 것인데, 상식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앞뒤가 안 맞는다. 최소한 발언을 한 쪽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해야 비교가 가능한 것 아닌가. 우리 내부에는 이번 재판부의 결정이 국민의 상식과 법 감정을 넘어선 터무니없는 판결이다, 증거에 의한 재판이 아니라 판사의 주장일 뿐인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2심에서 바로잡아야 된다, 이런 의지들이 강하다. 다양한 대책을 고심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용산 쪽에 직접 묻는 방안을 시도해야 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인용 보도에 대해 방심위가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이에 대한 대응은.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과징금을 곧바로 내면 다음 본방송 재허가 심사 때 감점을 받는 게 확정된다. 우리가 변호사 비용을 쓰면서 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사실은 그 비용도 만만치는 않다.”

-그것 이외에도 ‘류희림 체제의 방심위’에서 문화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해 법정 제재를 내리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기본적으로 방심위도 합의제 기구인데, 구성·운영부터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하는 법적 대응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예컨대 엠비시가 새해 특집 여론조사를 방송하면서 김건희 여사 특별법, 명품 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한 질문을 넣은 것이 특정 정당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심의 대상으로 오른 것도 있다. 국민적 관심사이자 현안에 대한 인식을 물은 것인데 이걸 심의 대상으로 올린 것이다. 그 자체가 굉장히 비상식적이고 언론 자유를 탄압하려는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려스럽다.”

2010년 3월19일 오후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회의를 마치고 나가던 중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날 그는 ‘큰집 조인트’ 발언에 책임을 지고 방문진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겨레 자료사진

-오는 8월 방문진 이사진이 대거 교체된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엄기영 사장은 김우룡 이사장이 들어오면서 이내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안 사장은 어떤 선택을 할 건가.

“고 이용마 기자가 마지막 촛불집회에서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라고 외쳤던 그 뜻과 정신을 아직 기억한다. 나는 그 뜻에 맞게 낙하산이 아닌, 156명의 시민평가단의 선택을 받아 사장으로 선출됐다. 야구로 치면 고의사구를 던져서 불의와 맞서는 것을 피하는, 그런 비겁한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큰집 조인트’ 사태가 다시 반복된다고 해도?

“‘조인트 까이는’ 아픔이나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엠비시 구성원을 대표해서 국민의 방송인 엠비시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 ‘큰집 조인트 사태’ 당시와 지금의 정치 지형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태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한다.”

2009년 8월 출범한 김우룡 이사장 체제의 방문진은 이듬해 엄기영 사장을 자진 사퇴 형식으로 몰아내고, 문화방송 구성원들이 반대한 김재철 사장을 그 자리에 앉혔다. 그렇게 취임한 김 사장은 낙하산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복원을 요구한 노동조합 집행부 등에게 무더기 해고와 징계를 내렸다. ‘보복 인사’ 논란도 이어졌다. 김 이사장은 노조 탄압 등과 관련해 2010년 3월 월간지 ‘신동아’(4월호) 인터뷰에서 “(김재철 사장을) 큰집이 불러다가 조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한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큰집이란 청와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됐다. 큰집 조인트 발언 논란으로 김 이사장은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최성진 박강수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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