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트렌드 1번지 메르시 대표, “파랑색 유행하면 스머프 천지, 핑크면 바비...끔찍해”

최보윤 기자 2024. 2. 1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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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강연 위해 방한, 아서 게르비 대표
프랑스 파리 메르시 대표 아서 게르비/메르시 제공

패션과 미식, 관광의 도시 프랑스 파리. 하지만 현지인들을 만나보면 “당신이 생각하는 파리는 지도에나 있는 곳”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프랑스의 또 다른 미덕이 ‘관용’이라지만, 어딜 가든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보니 ‘진짜 파리’를 만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유행가’가 곧 흘러간 노래를 뜻하듯, ‘유행 1번지’ 파리 그 안에서 숱한 유행을 만들고 거치고 비켜가며 파리만의 정신을 지켜가는 곳이 있다. 지난 2009년 프랑스 파리 마레지구에 들어선 복합문화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메르시(Merci)다. 프랑스 브랜드 봉쁘앙을 만든 창립자의 뒤를 이어 지난 2013년 메르시를 이어받은 아서 게르비(Gerbi·35) 대표는 자신이 지켜낸 10년 세월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원 매장 옆에 레지던스 새롭게 선보였다.

1770년대에 세워진 건물을 리모델링해 목재 패널과 낭만적인 19세기 프레스코화를 더했다. 촬영이나 대여가 가능한 공간으로 친구들이 모여서 ‘파리지앵처럼 살아보는 것’을 지향한다. 올 7월 파리 올림픽까지 앞두고 있어 미국 뉴욕타임스와 파리 르몽드 등은 메르시의 또다른 실험에 여러 페이지를 할애하며 ‘메르시적인 삶’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국내 강연과 젊은 디자이너 발굴을 위해 방한한 그를 만났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제랄드 다렐 창립자의 2세인 아서 게르비는 프랑스 파리 최고 경영대학원 HEC를 졸업한 뒤 본격 경영에 뛰어들어 메르시를 인수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사립학교 교육을 받으며 여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뽐내거나 나태한 삶을 경계하며 자랐다고 했다. “부모님은 신기루 같은 눈속임에 속지 말라고 하셨지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해 외관만 멋져보이는 것들 말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내실이 꽉 들어찬 진정성을 알아보는 눈을 키우고 싶었습니다.”

프랑스 파리 메르시/메르시 제공
프랑스 파리 메르시 레지던스/메르시 제공
프랑스 파리 메르시/메르시 제공

-메르시를 인수한지 10년이 됐습니다. 왜 메르시였습니까?

“메르시는 상점이지만 상점은 우리가 좋아하는 일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 언론인이나 인류학자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집착은 현대인, 도시인, 오늘날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르시(merci)는 ‘감사하다’는 뜻이지요. 메르시라는 이름이 정말 중요한 건 ‘메르시 라 비(merci la vie)’를 줄인 말이기 때문입니다. ‘삶(vie)에 감사한다(merci)’는 뜻(영어로는 thank you life)이지요. 메르시는 우리의 삶이자 삶에 대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다고 느끼시나요?

“그럼요. 왜, 어려운 가요? 저는 평화의 나라에 살고 있고, 오늘날 지구촌의 모든 혼란으로 인해 평화의 대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 평화로운 순간에 감사합니다. 지금 같은 평화와 평온이 절대 쉽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냉장고에 음식이 채워져 있어 감사합니다. 옷장을 열어도 옷이 있습니다. 아마,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곳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삶이 그럴 것입니다. 그렇죠?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메르시의 개념입니다. 우리는 이익의 일부, 성공의 일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줍니다. (수익 일부는 항상 기부한다) 우리가 이곳에서 이렇게 웃으며 밥을 먹고 옷을 입고 걸어 다닐 수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 ‘평범하다’고 말하는 많은 것들이 상당수는 ‘좋은 운’ 덕분입니다. 그렇죠? 그렇지 못한 이들을 위해 돌려줘야 합니다. 인생은 감사하는 것이고, 인생은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메르시의 개념입니다.”

프랑스 파리 메르시/메르시 제공

-메르시는 글자이면서, 당신이 추구하는 철학이자 하나의 개념인 거 같은데요. 메르시 매장이 인생에 무엇을 기여하나요? 개념은 훌륭하지만, 결국 상업적인 공간아닌가요?

“여기에 메르시의 또 다른 항목이 있습니다. 메르시가 존재하는 이유는, 제가 말씀 드렸듯이 우리가 지구에 있는 동안 생활 방식(라이프스타일)이 행복의 원천이라고 진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라이프스타일이란 최상급 디자이너 가구나 아주 비싼 물건으로만 거실을 꾸미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삶의 방식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최고의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방금 구입한 의자일 수도 있습니다. 할머니가 아끼던 도자기를 사용할 수도 있고요.”

-’낡은 것이 아름답다는’는 게 마치 시대정신처럼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레트로’나 ‘빈티지’라는 트렌드로 포장되기도 했고요.

“라이프스타일은 집과 삶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처럼 살려고, 다른 사람의 삶처럼 만들기 위해 우리의 에너지를 쏟습니다. 그건 나의 삶이 아니죠. 어디서 본 다른 사람의 모습을 내것처럼 하기 위해 에너지를 내내 쏟다 지쳐버립니다. 메르시가 내거는 것은 각자의 삶에 감사하고,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자는 겁니다. 우리는 불완전함을 숭배합니다. 낡은 것에도 의미를 둡니다. 화려한 매장이나 광고를 보면 하나같이 완벽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다 완벽합니까? 완벽해보이는 사람들 조차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결점이나 흠도 허용해야 합니다. 물론 디자이너 테이블을 가질 수도 있죠. 비싼 제품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것까지 막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물론, 페라리가 있다면 정말 멋진 삶이겠죠.”

-당신도 고가 브랜드의 유혹에 흔들리는 군요!

“페라리를 싫어하는 남자도 있을까요?(웃음) 저는 페라리를 사랑하지만 인생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브랜드,브랜드,로고,로고 같이 토털 룩을 강요하거나 마치 부표처럼 사람 그 자체보다는 꾸민 것들만 둥둥 떠 보이는(buoyant) 브랜드는 싫습니다.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것을 추구하자는 생각이 그것이 매장을 열 때도 또 다른 집착으로 작용했습니다. 보통 매장을 열 때 가장 번화가에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을 찾는 것과는 정반대를 택했으니까요.”

프랑스 파리 메르시/메르시 제공
프랑스 파리 메르시/메르시 제공
프랑스 파리 메르시/메르시 제공

-예전 파리를 찾았을 때 메르시는 꼭 가봐야 하는 장소 중 하나여서 가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로도 아니고 안으로 쭉 들어가야 했습니다.

“길거리 쇼윈도가 없는 첫 번째 가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우리 매장에 가려면 마당을 통과해야 합니다. 논리적이지 않지요. 지금이야 말씀하셨다시피 인기 장소가 돼서 오는 방법이 잘 알려진데다, 휴대폰 지도 하나로 지구 구석구석까지 찾아간다지만 메르시가 문을 열었던 당시 2000년대 후반에만 해도 그 동네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곳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관광객이 찾는 파리에 있지만, ·카메라 가게 외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우리는 지역을 만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새롭게 연 아파트(임대 공간)도 마찬가지고요. 주변에 에너지를 불어넣고 동네를 재창조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우리 주변에는 모든 멋진 가게가 있습니다. 더불어 잘 살아가는 것이지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정체성을 알린다는 것이 쉽지는 않아보입니다.

“우리 매장엔 ‘진짜’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보통이라면 아마 키 170cm이 훌쩍 넘는 늘씬한 모습에 금발이나 갈색 머리에 청셔츠를 입은 남자 아이들이 많이 보여야 사람들의 눈에 띌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길 건너편에 사는 할머니가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러 오실 수 있고, 저희는 그 할머니가 오시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저희를 찾아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파리지앵의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에 찾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메르시는 해외 여행객이나 파리 친구들에게도 진정한 파리지앵의 순간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진정한 장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프랑스 파리 메르시/메르시 제공

-파리지앵 라이프란 무엇인가요?

“메르시적인 이상적인 삶을 제안한다는 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이 삶을 아주 재미있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파리에 살고, 도시에서 매일 일하러 가면서도 휴가를 떠나는 사람의 마음가짐으로 활동하는 것이 바로 우리 같은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죠. 열심히 일할 수도 있고, 하루를 일찍 시작할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에는 예술을 소중히 여기고, 전시회에 가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게 되죠.

많은 이들이 도시가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며 불평합니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도시 안에서도 사람을 만나거나, 머리를 다듬거나, 문화를 습득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자신이 이용할 만한 여러가지 것들이 있습니다. 삶과 휴일이 어느 순간엔 같을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삶에 행복을 더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지요.”

-느긋하게 즐기면서 살자는 느낌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워크앤라이프밸런스’보다도 더 급진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삶과 일이 분리되지 않는달까? 매일 일폭탄에 시달리는데 여유를 가질 수 있을가요? 저만해도 미용실에서 진득하게 머리를 만질 시간도 없어서 제가 머리카락을 자르곤 하거든요.

“일을 하는데, 왜 피곤한 건지 그 고리를 하나씩 살피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마 많은 현대인들이 합정처럼 빠져있는 것이 본인들이 다 감당하지 못하는 수많은 광고와 정보들입니다. 갇혀서 빠져나오기 어렵고, 좀처럼 끊기도 어렵습니다. 머리가 터져버리기 일보 직전이에요. 가짜 뉴스가 될 수도 있고, 트렌드나 유행 정보가 될 수도 있지요. 21세기판 온라인 피폭입니다.

사람들이 메시지와 (과대) 광고, 각종 정보로 폭격을 받을수록 모든 사람들이 고급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란색이 유행하면 모두가 스머프가 됩니다. 분홍색이 유행하면 모두가 바비인형이 되죠. 정말 환상적이지 않나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동료 의식을 넘어 점점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슬프지 않나요?

우리는 가끔 우리가 왜 인간으로 태어나는 지 잊는 것 같습니다. 신기루에 빠지지 않고 판단력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조금만 다르게 볼 수 있다면, 앞서갈 수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것 이것이 메르시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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