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석모도 찾은 귀한 손님…쇠홍방울새 무리 국내 첫 관찰
홍방울새 60여 마리, 쇠홍방울새 10여 마리 관찰
국내서는 이례적…‘진홍색 모자’ 쓴 아담한 진객
머리에 ‘진홍색 모자’를 쓰고 우리나라를 찾는 홍방울새는 매우 희귀한 겨울 철새다. 매년 주기적으로 관찰되는 조류가 아니며, 해마다 우리나라를 찾는 무리에도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60~80마리가 우리나라를 찾았고, 홍방울새보다 더 만나기 어렵다는 쇠홍방울새도 10여 마리 이상 관찰됐다. 몹시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인천 강화군 석모도에서 홍방울새 무리가 월동하고 있다. 외포항에서 서쪽으로 약 1.5㎞ 떨어져 있는 삼산면 상리와 하리 초입에 깨를 재배했던 밭을 월동지로 삼은 것이다. 지금은 석모대교가 놓여 차로 다닐 수 있는 곳이지만 과거엔 외포항부터 배를 타고 들어와야 했던 곳이다.
홍방울새들은 마치 지정석이라도 있는 듯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있다. 그러다가 탐조인들이 촬영을 위해 뿌려둔 들깨를 발견하면 경계를 풀고 거리낌 없이 먹이를 먹으러 땅바닥으로 쏜살같이 내려온다. ‘손쉬운 간식’에 제대로 맛을 들인 것 같다. 작은 깨를 어떻게 집어먹을까 의아스럽겠지만, 새들의 부리는 사람의 손 같은 역할을 한다. 부리가 섬세하게 잘 발달되어 있어서 그 조그만 들깨도 껍질을 잘 벗겨 먹는다.
그러나 경계심이 매우 강하고 소리에 민감해서 먹이활동을 지속해서 하지는 않는다. 전깃줄과 땅바닥을 바쁘게 자주 오가지만 주변 눈치를 살피는 조심성을 보인다. 특히, 도로를 세차게 달리는 차 소리에는 크게 놀라고는 한다.
특히 맹금류인 매나 황조롱이, 잿빛개구리매가 나타나면 혼신을 다해 쏜살같이 숨을 곳을 찾아 날아간다. 홍방울새가 사방으로 흩어지면 ‘쮸우이’하고 재잘대던 소리도 사라지고 먹이터에는 오랜 정적이 흐른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최종적으로 먹이터의 안전이 확인된 뒤에야 새들은 다시 전깃줄로 돌아온다.
이동할 때도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는데, 무리로 나는 모양이 마치 파도치는 모습과 비슷하다. 새들이 움직이는 동선은 거의 정해져 있다. 주로 동네 어귀로 날아갔다가 전깃줄로 돌아오고는 하는데, 30여분 동안 전혀 다른 곳으로 날았다가 갑자기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홍방울새를 관찰하던 중 뜻밖에 쇠방울새를 발견했다. 홍방울새와는 같은 방울새속이지만 크기와 깃색에 차이를 보인다. 생김새가 홍방울새와 흡사하지만, 아랫배와 허리 부분의 깃털이 더욱 흰색으로 구별된다. 쇠홍방울새는 국내에서는 관찰된 기록이 없고, 북한 함경남도와 평양북도에서 채집된 기록만 있을 뿐이다. 이토록 희귀한 새를 보게 되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마리도 관찰하기 힘든 조류인데 올해 십여 마리나 찾아왔다.
홍방울새와 쇠홍방울새는 함께 무리를 만들었지만, 그 안에서 따로 경계를 두는 것처럼 보였다. 워낙 비슷하게 생겨 육안으로는 식별이 어려웠다. 카메라로 찍어서 사진으로 확인하니 차이점이 보였다. 홍방울새는 전체적으로 회갈색과 흐린 흰색의 깃털을 보이지만, 쇠홍방울새는 전체적으로 흰색을 띠며 등과 옆구리에 갈색 줄무늬가 있고 허리가 흰색인 것이 특징적이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쇠홍방울새가 더 밝고 하얀빛을 띠는데 뺨의 갈색도, 수컷 가슴의 분홍색도 좀 더 연한 편이었다. 몸집은 쇠홍방울새가 홍방울새보다 약간 작았다.
5일간 한자리에서 10시간씩 홍방울새 개체 수를 확인하며 행동을 관찰·촬영했는데 새들은 마치 시계라도 있는 듯 규칙적으로 행동했다. 동틀 무렵이면 어김없이 깨밭 인근 전깃줄에 ‘출석’한다. 하나둘 개체 수가 늘어나 오전 10시30분~11시가 되면 가장 많이 늘어났다가 오후가 되면 50여 개체 이하로 줄어들었다. 다른 곳에 이동해 필요한 먹이를 섭취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오후 4시30분이 되면 활동을 중단하고 약 2.5㎞ 떨어져 있는 잠자리인 석모리 산기슭으로 돌아갔다. 석모도 홍방울새의 활동 반경은 주요 취식지에서 사방 약 2.5~3㎞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산림성 조류인 홍방울새는 평지 또는 산림에서 작은 무리를 이루어 생활한다. 주로 나무에 앉아 있다가 초지, 농경지, 과수원 등지로 이동해 식물의 씨앗 등을 먹는다.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지 않고 이곳저곳 이동하면서 먹이를 찾는 습성이 있다.
겨울에 식물의 씨앗에 의존해 살아가는데 먹이가 부족할 때는 분포권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홍방울새와는 사촌 격인 참새목 조류 양진이, 솔잣새, 콩새, 멋쟁이, 홍여새, 황여새 동이 올해 우리나라를 많이 찾은 것을 보면 새들이 찾는 지역의 환경 변화가 있었으리라고 추측된다.
홍방울새는 암수의 깃색에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암컷의 이마는 진홍색이며 턱밑은 검은색, 날개엔 두 개의 흰 줄 띠가 있고, 몸 윗면은 회갈색에 검은 줄무늬가 있다. 배는 흐린 흰색, 옆구리에 검은 가로 줄무늬가 있다. 수컷 홍방울새도 비슷하지만, 암컷과 달리 가슴과 볼이 분홍색이며 허리도 엷은 분홍빛을 띠는 경우가 많다. 몸길이는 약 13~14㎝, 체중은 약 12~16g이다. 쇠홍방울새도 홍방울새와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 밝게 보인다. 몸과 등허리가 홍방울새보다 더 밝은 흰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홍방울새의 번식은 5~7월 사이에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나무나 덤불 낮은 곳에 둥지를 짓는데 암컷은 3~7개의 알을 낳고 약 13일후 부화한다. 북반구의 추운 지역에서 번식하고 남쪽으로 월동하러 이동한다. 유럽, 동쪽 오호츠크해 연안, 중국 동북부, 한국, 일본, 캐나다 남부, 미국 북부 등이 월동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조류인 만큼 올해 관찰한 개체들을 바탕으로 ‘국내 월동 개체 수’를 추정해봤다. 지난해 12월6일부터 10일까지 닷새간 관찰한 개체 수를 조사일수로 나누어 평균 개체 수를 산정했다. 그 결과 홍방울 평균 개체 수는 62마리, 쇠홍방울새는 10마리로 조사됐다.
나름대로 세밀한 관찰을 통해 추정한 수이지만 정확지 않은 점이 있을 수도 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함께하는 마음으로 조언도 부탁드린다. 귀한 손님을 기쁜 마음으로 헤아리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홍방울새와 쇠홍방울새가 우리나라에서 배불리 먹고 편히 쉬어 간다면 내년에 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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