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혹시 T야?” 이런 대화는 그만…의사소통 ‘훈련’이 필요한 겁니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
“나 속상해서 빵 샀어.”
한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재미 삼아 MBTI 성향을 가늠해 보는 테스트로 유행했던 말이다. 여기에 “무슨 일 있었어?”라고 답하면 감정을 중시하는 F(Feeling) 성향, “무슨 빵 샀어?”라고 답하면 사고를 중시하는 T(Thinking) 성향이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속상한데 빵을 왜 사?” “그만 먹어” “내 것도 샀어?” “나는 빵 안 먹어” 등 T 성향의 지인에게 각종 ‘오답’을 들었다는 SNS 인증 글이 다수 올라왔다.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기보단, 사실관계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너 혹시 T야?”라고 묻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
특정 성향이 더 옳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성향은 각자 다른 것이지, 맞고 틀린 게 아니다. 또 상황에 따라 감정이나 사고를 앞세워야 하는 경우가 다르듯, 각 성향마다 빛을 발하는 때와 장소가 다를 뿐이다.
오히려 이는 성향보다 의사소통 ‘능력’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언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아는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반면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고 표현이 서툴다면, 의도와 다르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쉽다. 평소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말이 안 통한다” “섭섭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면, 단지 ‘T라서’가 아니라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것일지 모른다. 다행인 것은 의사소통 능력은 훈련하면 발전할 수 있다. 수십 년간의 국내외 연구를 통해 입증된 공감적 소통의 기술을 살펴보자.
사리 대화 vs 심정 대화
심리학적 관점에서 대화의 유형은 ‘사리(事理)대화’와 ‘심정(心情)대화’로 나눌 수 있다.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사리대화보다 심정대화에 더 서툰 경향이 있다.
사리대화는 정보와 지식을 주고받는 대화다. 회의처럼 정보를 교환하고,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장단점을 논의하는 등 논리적 대화가 오가는 자리에선 사리대화가 필요하다. 심정대화는 감정을 주고받는 대화다. 회의 같은 공적인 자리보다 가족, 친구, 지인 등 친밀한 사람들과 사적인 영역에서 주로 이뤄진다.
두 대화 형식은 필요한 순간과 역할이 각각 다르기에 상황에 따라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대부분 공적인 자리에서 사리대화가 필요할 때는 잘 지켜지는 편이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심정대화가 이뤄져야 할 때 사리대화가 튀어나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말을 했을 때 객관적 사실관계를 앞세우는 답변을 할 때가 그렇다.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네…”
예를 들어 저녁에 퇴근한 배우자가 “나 오늘 회사에서 진짜 바쁘고 힘들었어”라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자.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지금이 심정대화의 타이밍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오늘 많이 힘들었구나?”라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자기네 회사 원래 바쁘잖아” “월급 받기 쉬운 줄 알았어?”라고 답한다면 심정대화가 필요한 순간을 구별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사리대화 “나 오늘 회사에서 진짜 바쁘고 힘들었어.” → “자기네 회사 원래 바쁘잖아” “월급 받기 쉬운 줄 알았어?” ●심정대화 “나 오늘 회사에서 진짜 바쁘고 힘들었어.” → “온종일 힘들었겠구나.” “고생해서 많이 피곤하겠구나.” |
물론 심정대화는 항상 좋고, 사리대화가 항상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당혹스러운 얼굴로 화장실이 어딘지 묻는 사람에게 “많이 급하시겠어요” “화장실을 못 찾아서 얼마나 힘드실까요”라고 감정에 공감해주는 것은 코미디다. 때와 장소에 맞는 대화를 할 줄 아는 의사소통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말의 내용보다 밑에 숨은 감정에 주목하기
심정대화의 기본은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고, 이를 반영해 답변하는 것이다. ‘너는 지금 ○○○한 감정이구나’라는 기본 문장 형식을 응용하면 된다. 그러려면 일단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어떤 마음일지 헤아려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동으로 튀어나오려는 사리대화의 욕구를 접어두고, 상대가 무슨 감정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인지 잠시 멈춰 생각해보자.
●심정대화와 사리대화의 예시 “엄마, 난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어.” → “그럼 네가 학교 안 다니면 뭐 할 건데?”(사리대화) → “학교 가는 게 의미 없게 느껴지는구나?”(심정대화) “아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 → “그럼 이직 준비해.”(사리대화) → “회사 생활이 힘들구나?”(심정대화) |
심정대화를 더 잘하려면, ‘우리’가 지금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네 말을 듣다 보니 나도 화가 난다” “네 말을 들으니 나도 마음이 아프다”는 식이다. 그러면 감정을 토로한 사람은 큰 공감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돼 더 긴밀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좀 더 깊이 공감해주려면? “우리 팀 ○○은 진짜 개념이 없어. 모르는 일은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 못하겠다고 해서 나한테 일이 다 몰린다니까.” → “그럼 너도 그냥 못한다고 해.”(사리대화) → “듣다 보니 나도 화난다. 너 정말 짜증 났겠다.”(심정대화) |
불만을 말할 땐 ‘나’를 주어로
상대의 감정을 잘 받아주는 것만큼 내 감정을 상대에게 잘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불만이 있거나, 화가 날 때 그렇다. 날카롭고 직설적인 말은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 또 듣는 사람 입장에선 자신이 비난받고 통제당한다고 느껴 반항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불만이나 화를 표현할 땐 주어를 ‘너’가 아닌 ‘나’로 바꿔서 표현해야 한다. 이를 ‘나 전달법’ 혹은 ‘아이 메시지(I-Message)’라고도 한다. ‘나 전달법’은 미국 심리학자인 토마스 고든이 개발한 부모 교육 프로그램에서 자녀와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방식으로 소개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1970년대 부모 교육에서 시작해 이후 학교, 기업 내 의사소통 훈련법으로 다양하게 응용됐다. 신경질적 표현을 배제하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 전달법’은 몇 가지 요건이 있다. 우선 △비난이나 판단 없이 상대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그로 인해 우려되는 상황을 설명한 뒤△‘나는 어떠한 감정을 느낀다’로 표현해야 한다. 시험 기간에 스마트폰만 보며 공부하지 않는 자녀 때문에 화가 났다고 가정해 보자.
‘나 전달법’을 통해 자녀에게 화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나 전달법’의 3요소 1. 상대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 2. 앞으로 우려되는 상황을 설명하기 3. ‘나’를 주어로 감정 표현하기 → “네가 공부를 안 하고 3시간째 스마트폰을 보니까(1) 시험을 망칠까 봐(2) 엄마(아빠)는 화가 난다/걱정된다/불안하다(3).” |
이렇듯,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은 빠르고 직관적이지만, 감정을 배려하는 말은 여러 생각의 단계를 거치는 노력이 들어간다. 그만큼 상대를 배려하는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롭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감정을 나누는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 곁에 오래도록 좋은 인연이 머물긴 힘들다. 가족끼리도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이유는 심정대화와 ‘나 전달법’ 표현이 부족해서인지 모른다.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표현에 서툴러서’라는 핑계는 잠시 내려놓고, 소중한 사람들과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위해 노력해보자.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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