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남편이 동성애자였네요”···한 남자의 성적취향이 불러온 나비효과 [사색(史色)]
[사색-57] “그들이 우리의 삶을 앗아갈지는 몰라도, 결코 우리의 자유를 빼앗을 순 없을 것이다(They may take our lives but they will never take our freedom).}”
적이 목에 칼을 들이댄 상황에서도,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목숨보다 중요한 건 민족의 자긍심이라는 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삶이 끝나더라도 자긍심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기개가 그에게는 있었습니다. 사형장에서 그가 외친 마지막 메시지인 “Freedom”(자유)의 가치는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갔습니다.
멜 깁슨이 연기한 윌리엄 월리스는 실존 인물입니다.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침입한 1300년대 독립 영웅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프리덤’이라는 대사는 영화적 각색이었지만, 그의 죽음이 스코틀랜드를 하나로 묶은 구심점이었던 건 사실입니다.
윌리엄 월리스는 죽음으로써 스코틀랜드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망치’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적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도 마침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사라지면서 독립운동의 불씨도 다시 살아납니다. 잉글랜드의 새 군주 에드워드 2세가 암군 중 암군이었기 때문입니다.
스코틀랜드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 건 1286년 봄이었습니다. 국왕 알렉산더 3세가 말에서 떨어져서 사망합니다. 후계자는 어린 손녀 마가렛 뿐. 그녀마저도 이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요. 나라의 기틀이 완전히 닦이지 않은 상태에서 후계 문제가 불거집니다.
스코틀랜드와 국경을 맞댄 잉글랜드는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이웃나라의 불운은 자국의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는 명군 중의 명군. 탁월한 군사전략가였던 그는 ‘브리튼섬’ 통일을 위한 작업을 구상하고 있었지요.
에드워드 1세의 눈은 북쪽을 향해 있었습니다. 거칠고 강한 사내들이 모인 스코틀랜드를 잡아야 유럽의 강자로 설 수 있었습니다. 마침 스코틀랜드는 분열의 늪에 빠진 시기.
에드워드는 채찍과 당근을 함께 꺼내 듭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귀족작위와 평화를 약속하고, 반항하는 자에겐 무력을 행사합니다. 리더로 임명된 존 발리올마저도 에드워드 1세를 군주로 모신다는 ’오마주‘를 바쳤지요. 스코틀랜드의 굴욕이었습니다.
에드워드 1세는 참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는 건 잉글랜드에 선전포고를 한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지요. 이제 군사적 정벌을 시작합니다. 1296년 4월의 일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던바 전투’에서 스코틀랜드 군은 참패를 당했지요. 1800명의 귀족이 전쟁에서 패한 뒤 잉글랜드에 충성을 맹세합니다. 이때부터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의 망치’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위기의 시기가 찾아와서야 애국자와 매국노가 가려지기 마련입니다. 멸국의 위기에서도 조국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하급 귀족 윌리엄 월리스와 앤드류 드 모레이였습니다.
앤드류는 던바 전투에서 패배해 포로로 잡혔지만 결코 포기를 몰랐습니다. 탈옥에 성공해 게릴라전으로 독립의 불씨를 이어갔지요. 윌리엄 역시 잉글랜드 관리를 암살하는 전략으로 식민지 시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전했습니다.
두 사람이 모이니 지혜는 배가 됐습니다. 기병 중심인 잉글랜드 군을 스털링 다리 인근 습지로 유인합니다. 질퍽한 땅에서 기병은 좀처럼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늪에 발이 묶인 사이 스코틀랜드 군이 나타났지요. 도륙의 시작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 군이 처음으로 잉글랜드를 상대로 유의미한 승리를 거둡니다. 이제 윌리엄 월리스는 명실공 ‘스코틀랜드의 수호자’였습니다.
1305년 8월의 일이었습니다. 잉글랜드에 충성하는 스코틀랜드 기사 존 드 멘티스가 글래스고에 매복해 있다가 윌리엄 월리스를 포로로 잡았습니다. 그는 즉시 런던으로 이송됐지요. 에드워드 1세는 분노를 그대로 표출했습니다. 목을 매달고, 창자를 꺼내고, 거세하고, 몸을 네등분으로 나눴지요.
에드워드 1세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가장 골칫거리인 인사를 제거했으니까요. 착오였습니다. 그가 처참하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스코틀랜드인들의 분노가 들끓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죽음은 스코틀랜드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에드워드 1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스코틀랜드 귀족들도 마음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월리스의 죽음이 일말의 애국심을 일깨웠던 것이지요. 로버트 더 브루스가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가 다시 총봉기를 시작했을 때, 에드워드 1세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1307년 7월 원정길에 병을 얻으면서였습니다. 이제 잉글랜드 총책임자는 에드워드 1세의 아들 에드워드 2세. 잉글랜드의 귀족들은 불안을 느꼈습니다.
에드워드 2세의 관심사는 그의 ‘애인’에게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애인은 남성 귀족 가배스턴. 그는 모든 걸 그와 논의해 결정합니다. 두 사람은 연인에 가까웠습니다. 남자인 가배스턴이 왕의 침실까지 마음대로 드나들 정도였기 때문이지요.
위기의 먹구름은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국고는 비어가고, 군대는 허약해져 갔습니다. 가배스턴을 내치라는 충언에도 에드워드 2세는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귀족들이 실력행사에 나섭니다. 가배스턴을 납치해 살해한 것이었습니다. 에드워드 2세는 분노에 찼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귀족들의 칼날이 가배스턴을 넘어 자신에게 향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 군주의 수준이 그 정도였습니다.
잉글랜드군은 스코틀랜드 군사보다 세 배나 많았습니다. 잉글랜드는 그만큼 이 전투에 모든 걸 걸었지요.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윌리엄 월리스가 죽음으로써 보여 준 결기를 잊지 않고 있었지요. 잉글랜드 군은 나약해질대로 나약해져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2세 치하에서의 국기문란이 원인이었습니다.
에드워드 2세가 진정한 혼군인 것은 대패 이후에도 나아진 점이 없어서입니다. 총애하는 귀족 휴 디스펜서에게 전권을 맡겼습니다. 에드워드 2세의 ‘문고리 권력’이 부활한 것이지요. 임금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휴 디스펜서를 통해야만 했습니다. 신하들은 ‘제 2의 가배스턴이 나타났다’고 수군댔지요.
두 사람이 약 1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목표는 에드워드 2세의 폐위와 휴 디스펜서의 처형. 소식이 알려지자 잉글랜드 전역에서 귀족들이 뜻을 함께합니다. 1326년 에드워드 2세는 결국 아들에게 임금의 자리를 양위합니다.
이사벨라는 휴 디스펜서의 옷을 벗기고 창자를 꺼낸 뒤 공개적으로 거세해버립니다. 반역과 남색 혐의였습니다. 국정농단을 한 자의 최후였지요.
로버트 1세를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인정하고, 에드워드 3세의 누이를 로버트 1세 아들 데이비드에게 시집보낸다는 내용. 스코틀랜드의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1328년 5월의 일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허락한 신을 위해서 죽어서까지 ‘성전’에 함께하겠다는 의지였지요. 죽어서도 그는 전사가 되고 싶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목에는 큐브 모양의 목걸이가 걸려 있었지요. 로버트 1세의 심장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가장 위대한 전사, 로버트의 용감한 심장이 여기에 있다.” 로버트 1세가 ‘브레이브 하트(용감한 심장)’으로 불린 배경입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도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제목이지요. 제임스 더글라스 가문은 이때부터 가문의 문장으로 ‘심장’을 새겼습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브레이브 하트(용감한 마음)’가 흥망을 결정짓는 열쇠라는 것.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진리입니다.
ㅇ1300년대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 무력 통합에 ’거의‘ 성공했다.
ㅇ하지만 대를 이은 아들 에드워드 2세는 동성애에 빠져 애인에게 모든 국정을 맡겼다. 스코틀랜드는 이를 틈타 활발히 독립운동을 펼쳤다.
ㅇ내전에 빠진 잉글랜드는 결국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을 허용한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배경이다.
ㅇ‘브레이브 하트’를 가진 국가 책임자가 중요하다. 700년전 영국이나, 현재 대한민국이나 마찬가지다.
<참고 문헌>
ㅇ찰스 디킨스, 영국사 산책, 옥당북스, 2023년.
ㅇ윌터 스콧, 스코틀랜드 역사이야기, 현대지성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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