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참사 21주기, 여전히 남은 추모과제…해결은 언제쯤?

백경열 기자 2024. 2.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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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기억공간’에서 지난 15일 시민들이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들의 얼굴사진이 붙은 벽면을 살펴보고 있다. 백경열 기자

지난 15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기억공간’.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이곳에 엄마와 아들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참사 희생자들의 사진이 빼곡한 벽 앞에서 한동안 머물며 엄마가 들려주는 설명에 어린 아들은 이해할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망자 192명, 부상자 151명이 발생한 대구지하철참사가 오는 18일로 21주기를 맞는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사회적 과제가 적지 않다. 유족과 부상자들은 대구시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2·18대구지하철참사 시민추모위원회에는 참사 21주기를 앞둔 지난 13일 기억공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민추모위는 “세월이 흘러도 참사의 아픈 기억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면서 “아픈 기억을 지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 기억을 딛고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참사의 기억을 소홀히 하는 동안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많은 사회적 참사가 되풀이됐다”며 “지난 참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안전 사회를 위해 노력했다면 소중한 생명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지 않고 지난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추모 과제가 남아있다는 게 시민추모위의 입장이다.

대구지하철참사는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53분쯤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 정차 중이던 열차에서 비롯됐다. 진천역을 떠나 안심 방향으로 향하던 1호선 1079호 열차에서 50대 김모씨가 인화 물질을 쏟아부은 뒤 불을 붙였고, 전동차 안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후속 열차의 진입을 막고 진화와 구조 활동이 즉각 이뤄져야 했지만 상황 전파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에 맞은편 선로에 진입한 1080호 열차 역시 불길에 휩싸였다. 기관사가 마스터키를 뽑아 달아나는 바람에 전동차 문도 열 수 없었다.

참사로 192명이 죽고 151명이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 6명은 지금까지 가족을 찾지 못한 채 시립공원 묘지에 안치돼 있다.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 설치된 ‘기억공간’ 내부 화재현장 보존벽의 모습. 백경열 기자

지하철참사 유족들은 참사를 계기로 2008년 들어선 ‘시민안전테마파크’ 명칭에 ‘2·18기념공원’을 추가하고 ‘안전상징 조형물’로 불리는 추모탑, 희생자 32명이 묻힌 묘역의 이름도 성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추모위는 사고 당시 전동차가 차량기지에 방치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유족과 부상자들은 매년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지만, 대구시의 대응은 소극적이다. 대구시는 시민안전테마파크가 관광지인 팔공산에 있어 인근 상인들의 반발이 크다며 난색을 표한다.

과거 대구시는 마땅한 추모공원 후보지를 찾지 못했다. 이에 팔공산 자락에 ‘추모공원이 아닌 안전테마파크’라는 명목으로 시설을 세웠다. 참사 피해자 추모사업 등을 전담하기 위해 설립된 ‘2·18안전문화재단’은 지난 2019년 ‘2·18기념공원’을 함께 적는 내용의 조례 청원서를 접수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상인들은 팔공산 일대가 추모 공간이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유족 측에는 추모공원으로 바꿔나가겠다고 밝혀 ‘이중 약속’이라는 논란도 일었다.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 설치된 ‘기억공간’ 내부 화재현장 보존벽의 모습. 백경열 기자

권영진 전 시장 때인 2022년 2월에는 관광 노면전차와 도시재생사업 추진 등을 조건으로 상인들이 공원 명칭 병기 등을 수용하겠다고 해 협약까지 맺었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명칭 병기 등이) 유족의 요구를 알지만, 상인들의 반발이 심해서 어쩌지 못하고 있다”면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참사 유가족들은 제대로 된 논의 구조라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성과는 없는 상태다.

참사 때 불탄 전동차가 ‘추모’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현재 안심차량기지에 보관된 차량은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 채 커버만 씌워놓았다. 최근 대구시와 대구교통공사가 경북소방학교에 교육용으로 비치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21주기 추모위 측은 지난 13일 기자회견 이후 추모사업 문제 매듭을 위해 홍준표 대구시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불발됐다. 조해녕·김범일·권영진 등 역대 대구시장들이 유가족들과 면담을 했다는 점과 대조된다. 홍 시장은 취임 이후 두 번의 추모주간을 맞는 동안 유족을 만나지 않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15일 기억공간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홍 시장은 추모식에도 모습을 비추지 않고 있다. 대구지하철참사가 정쟁의 도구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게 이유다.

지난해 20주기를 앞두고 홍 시장은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민노총, 시민단체 등이 모여서 매년 해오던 대구 지하철 참사 추모식을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추모식 불참을 선언했다.

당시 유족들은 “사회적 참사에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지 않는 행태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서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유가족까지 전국적인 연대로 이어진 것”이라고 밝힌 데 거부감을 표시한 것이다.

앞서 권영진 전 시장 등은 추모식에 참석한 바 있다.

대구시는 올해 추모식에 홍준표 시장의 참석할지는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불참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홍 시장은 추모식 전에 시민안전테마파크와 기억공간만 찾았고, 올해도 지난 15일 기억공간을 찾아 헌화했다.

‘추모할 준비’가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채 유족 등은 올해도 쓸쓸하게 관련 행사를 치른다. 시민추모위는 17일 궤도노동자 추모 집회를 열고, 18일에는 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21주기 추모식을 열 예정이다. 추모식 당일 오후 3시에는 중앙로역 광장에서 시민문화제도 개최한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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