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공항, 이주 대책 없는 질주…흑산공항은 '80인승'에 붕 뜨나

김홍준 2024. 2. 1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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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공항 부지인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동 대항마을. 외양포마을과 새바지마을도 공항이 들어서면 사라진다. 마을 뒤로 가덕도에서 가장 높은 연대봉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여기 죄다 할매들이야. 새로 어디 가서 제대로 살지 모르겠네.”

지난 8일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 섬 남쪽 끝머리 외양포마을 이성태(70) 이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 가덕도를 비롯해 길게는 2032년, 짧게는 2027년 개항을 목표로 진행 중인 신공항 사업은 현재 8개. 총사업비만 25조원에 달한다. 기존 공항 15곳과 차별화를 위해 ‘신(新)’을 붙이고 일각에서는 그 앞에 ‘묻지 마’ ‘닥치고’ ‘너도나도’ 등의 수식어를 붙일 정도로 추진 속도가 거세다.

#가덕도 외양포·대항 사람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만만찮다. 특히 4월 총선을 맞아 지방자치단체와 해당 지역구 의원 등이 신공항 유치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무리수가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이 적잖다. 실제로 특별법을 통해 예비타당성조사를 건너뛰고(가덕도) 심의 발목을 잡았던 국립공원 지역에서 빠지기도 했다(흑산). 경제성 평가가 낮은데 추진을 강행하는 곳도 여럿이다. 총선을 앞두고 ‘공항 포퓰리즘’ 논란이 커지고 있는 신공항 현장을 중앙SUNDAY가 찾아가 봤다.

“여기가 모두 국방부 땅이요. 보상? 저기 대항과 새바지의 3분의 1도 안 될 거요. 그래도 이렇게 물러날 수는 없지.” 이성태 이장은 가덕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국방부 땅이라 사용료를 냈지만 자기 땅이라 여기며 열심히 밭을 일궜다. 그는 국수봉(269m)과 남산(189m)을 가리켰다. 공항이 들어서면 이 산들이 깎여나가고 대항·새바지·외양포 등 마을 세 곳도 사라진다고 했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바다 위에만 공항을 만들겠다던 당초 계획안은 1년 만인 지난해 4월 육지와 연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공사 기간을 27개월 앞당겼다. 이장이 말했듯 “여기 외양포가 (터미널이 생기는) 메인”이 된다. 대항마을엔 물류기지가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대항마을로 들어서니 공항 건설 관련 현수막이 급격히 늘었다. 그렇다고 연대봉(459m) 고개 북쪽 천성마을이 영향을 안 받는 건 아니다. 이곳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주모(51)씨는 “(신공항으로 향하는) 도로가 넓어지고 철도가 생기면 돈도 더 들고 우리도 불편해지지 않겠냐”고 걱정했다. 섬 전체가 ‘공항화’가 된다는 말이다.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정부 의지는 확고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부산을 두 달 만에 다시 찾아 가덕도 신공항 조기 개항을 거듭 약속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신공항 추진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여당도, 야당도 모처럼 한마음 한뜻이다.

이에 더해 2030년 부산 엑스포를 위해 국제공항이 필요해 2029년까지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며 예타 면제하는 특별법까지 만들었다. 사업비 13조7500억원으로 지난 10년간 최대 예타 면제다. 지난달 통과된 ‘달빛철도특별법’도 예타 면제 측면에선 가덕도의 아류라는 평가다. 게다가 엑스포 유치 실패는 되레 가덕도 신공항 건설 속도를 높였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총선 표를 의식해 부산 민심을 달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예타 면제? 그런 건 둘째 치고 이주 대책도 아직 나온 게 없소.” 대항마을 공모(63)씨가 낮으면서도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섬 분위기가 그랬다. 조용한 것 같은데 다들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가덕도 신공항의 비용 대비 편익(B/C) 비율은 0.58이다. 공항을 지어서 얻는 편익이 비용의 절반에 그친다는 얘기다. 안전성 문제도 거론된다. 특별법 처리 당시 국토부는 “진해비행장과 공역이 중첩되고 김해공항 관제 업무도 복잡해져 안전사고 위험이 증가한다”며 “수심이 30m에 이르고 태풍도 지나는 길목”이라고 지적했다. 2022년 사전타당성조사 연구진은 “바다~육지 공항은 지반 지지력 차이가 커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덕도 주민들이 “이러다 공항에 펑크(사고)라도 나면 어쩌나”라며 걱정하는 이유다.
새만금공항 부지. 2019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받았지만 2024년 2월까지 공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상언 기자
낮은 B/C에도 불구하고 국제 행사를 이유로 예타 면제를 추진한 신공항 사업이 또 있다. 새만금공항이다. 2018·2022년 국토부 조사에서 각각 0.479와 0.503 B/C를 받았다. 이후 세계잼버리 대회를 앞두고 예타 면제를 받았지만 현재까지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갯벌 훼손, 조류와 충돌 우려 등 곳곳이 논란이다.

그러다 보니 자칫 ‘유령 공항’ ‘무늬만 공항’만 하나 더 추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 유명해진 무안공항은 2022년 영업이익률이 -1693.8%다. 양양공항은 다른 공항들이 잘 나갔던 2019년에도 -1239.9%였다. 사천·포항경주 공항도 ‘마이너스 네 자리’로 악명 높다. 모두 경제성을 간과한 탓이다. B/C가 낮기로는 흑산공항도 마찬가지다.

#흑산도 예리 사람들

전남 신안군 흑산도 상라봉에서 멀리 흑산공항 부지인 대봉산이 보인다. 상라봉 아래로 12굽이고갯길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김홍준 기자
“위치로는 흑산도 다음에 홍도지만, 찾는 우선순위는 홍도 다음에 흑산이에요.” 지난 14일 홍어를 썰던 흑산도 주민 김선복(49)씨의 칼질이 더 날카로워졌다. 김씨는 “어차피 흑산공항이 생겨도 배로 40분이나 걸려 홍도에 들어가야 하고 기상이 조금만 나빠도 결항인데, 그 돈으로 흑산도의 매력을 높이는 데 투자하면 좋겠다”고 했다.

택시기사 겸 가이드 김용현(59)씨와 주민 이모(63)씨는 결이 다른 말을 했다. “이제 그만 왔다 갔다 하고 빨리 공항을 지으면 좋겠다. 흑산도 숙원 사업 아니냐”면서다. 이들 말대로 흑산공항은 표류했다. 무려 15년째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는 ‘철새 보호, 국립공원 훼손’ 등의 이유로 심의를 보류하거나 중단을 반복했다. 2018년 흑산공항 예타 결과 B/C는 4.38이나 됐지만 국토부가 2020년 재측정한 수요를 적용한 결과 0.78까지 떨어졌다.

최대 난제는 다도해국립공원 일부라는 점. 그런 가운데 국공위는 지난해 1월 흑산공항 부지인 예리 일원 0.675㎢ 구역을 국립공원에서 제외했다. 대신 명사십리 해수욕장 인근 5.5㎢를 집어넣는 ‘수(手)’를 뒀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꼼수”라고 꼬집었다. 반면 흑산공항 추진을 적극 옹호하는 측에서는 “묘수”라고 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당초 50인승 항공기를 기준으로 활주로를 설계했는데, 해당 기종이 단종 추세인 데다 수요를 늘리기 위해 국토부가 지난해 11월 80인승 기종으로 바꿨다. 중앙SUNDAY가 심상정 녹색정의당 의원실에서 입수한 국토부의 ‘도서 소형공항 시설 개선 방안 검토’ 자료에 따르면 소형 공항을 새로 만드는 흑산·백령·울릉은 ‘80인승’을 새로 적용하게 되면서 사업비가 최소 1.5~2배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15년 넘게 지역 숙원 사업으로 공항을 추진하던 흑산도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지난해 착공 계획이 ‘올해’로 바뀐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21일 경북 울릉군 울릉공항 건설현장. 가두봉을 깎아 공항을 만든다. 2026년 개항을 목표로 하고 있는 울릉공항은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업계 목소리를 반영해 80인승 항공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크기로 설계를 변경할 계획이다. 2024년 2월 초 현재 공정률은 44%다.[연합뉴스]
게다가 공항이 들어서면 흑산도 관광은 당일치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당일 생활권이 된 뒤 쇠락한 설악산 지구의 악몽을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훈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장은 “설악산처럼 당일 생활권이 된 관광지는 숙박업부터 쓰러진 뒤 유흥주점과 식당업까지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는 만큼 다시 찾을 만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상태로는 ‘홍도로 가기 위해 흑산도를 패싱’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80인승 변수’가 생긴 다른 소형 공항인 백령은 군민(軍民)공항으로 추진에 속도가 붙은 상태다. 울릉공항은 이미 44% 지은 상태라 되돌릴 수 없어 공사는 계속된다고 한다. 유정훈 교수는 “신공항은 각종 선거의 핵심 이슈”라며 “지역 민심을 들었다 놓았다 하고 국가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사안인데도 너무 정치적 이슈에만 끌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침 지난 14일 서울고법 행정10부는 용인경전철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해 혈세를 낭비했다며 당시 지자체장과 연구원들에게 214억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유 교수는 “국비로 건설하는 공항은 지자체가 주도하고 운영하는 철도와 달리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신공항, 자그마치 25조원이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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