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공항, 이주 대책 없는 질주…흑산공항은 '80인승'에 붕 뜨나
지난 8일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 섬 남쪽 끝머리 외양포마을 이성태(70) 이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 가덕도를 비롯해 길게는 2032년, 짧게는 2027년 개항을 목표로 진행 중인 신공항 사업은 현재 8개. 총사업비만 25조원에 달한다. 기존 공항 15곳과 차별화를 위해 ‘신(新)’을 붙이고 일각에서는 그 앞에 ‘묻지 마’ ‘닥치고’ ‘너도나도’ 등의 수식어를 붙일 정도로 추진 속도가 거세다.
#가덕도 외양포·대항 사람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만만찮다. 특히 4월 총선을 맞아 지방자치단체와 해당 지역구 의원 등이 신공항 유치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무리수가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이 적잖다. 실제로 특별법을 통해 예비타당성조사를 건너뛰고(가덕도) 심의 발목을 잡았던 국립공원 지역에서 빠지기도 했다(흑산). 경제성 평가가 낮은데 추진을 강행하는 곳도 여럿이다. 총선을 앞두고 ‘공항 포퓰리즘’ 논란이 커지고 있는 신공항 현장을 중앙SUNDAY가 찾아가 봤다.
“여기가 모두 국방부 땅이요. 보상? 저기 대항과 새바지의 3분의 1도 안 될 거요. 그래도 이렇게 물러날 수는 없지.” 이성태 이장은 가덕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국방부 땅이라 사용료를 냈지만 자기 땅이라 여기며 열심히 밭을 일궜다. 그는 국수봉(269m)과 남산(189m)을 가리켰다. 공항이 들어서면 이 산들이 깎여나가고 대항·새바지·외양포 등 마을 세 곳도 사라진다고 했다.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정부 의지는 확고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부산을 두 달 만에 다시 찾아 가덕도 신공항 조기 개항을 거듭 약속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신공항 추진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여당도, 야당도 모처럼 한마음 한뜻이다.
이에 더해 2030년 부산 엑스포를 위해 국제공항이 필요해 2029년까지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며 예타 면제하는 특별법까지 만들었다. 사업비 13조7500억원으로 지난 10년간 최대 예타 면제다. 지난달 통과된 ‘달빛철도특별법’도 예타 면제 측면에선 가덕도의 아류라는 평가다. 게다가 엑스포 유치 실패는 되레 가덕도 신공항 건설 속도를 높였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총선 표를 의식해 부산 민심을 달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자칫 ‘유령 공항’ ‘무늬만 공항’만 하나 더 추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 유명해진 무안공항은 2022년 영업이익률이 -1693.8%다. 양양공항은 다른 공항들이 잘 나갔던 2019년에도 -1239.9%였다. 사천·포항경주 공항도 ‘마이너스 네 자리’로 악명 높다. 모두 경제성을 간과한 탓이다. B/C가 낮기로는 흑산공항도 마찬가지다.
#흑산도 예리 사람들
택시기사 겸 가이드 김용현(59)씨와 주민 이모(63)씨는 결이 다른 말을 했다. “이제 그만 왔다 갔다 하고 빨리 공항을 지으면 좋겠다. 흑산도 숙원 사업 아니냐”면서다. 이들 말대로 흑산공항은 표류했다. 무려 15년째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는 ‘철새 보호, 국립공원 훼손’ 등의 이유로 심의를 보류하거나 중단을 반복했다. 2018년 흑산공항 예타 결과 B/C는 4.38이나 됐지만 국토부가 2020년 재측정한 수요를 적용한 결과 0.78까지 떨어졌다.
최대 난제는 다도해국립공원 일부라는 점. 그런 가운데 국공위는 지난해 1월 흑산공항 부지인 예리 일원 0.675㎢ 구역을 국립공원에서 제외했다. 대신 명사십리 해수욕장 인근 5.5㎢를 집어넣는 ‘수(手)’를 뒀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꼼수”라고 꼬집었다. 반면 흑산공항 추진을 적극 옹호하는 측에서는 “묘수”라고 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당초 50인승 항공기를 기준으로 활주로를 설계했는데, 해당 기종이 단종 추세인 데다 수요를 늘리기 위해 국토부가 지난해 11월 80인승 기종으로 바꿨다. 중앙SUNDAY가 심상정 녹색정의당 의원실에서 입수한 국토부의 ‘도서 소형공항 시설 개선 방안 검토’ 자료에 따르면 소형 공항을 새로 만드는 흑산·백령·울릉은 ‘80인승’을 새로 적용하게 되면서 사업비가 최소 1.5~2배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15년 넘게 지역 숙원 사업으로 공항을 추진하던 흑산도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지난해 착공 계획이 ‘올해’로 바뀐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80인승 변수’가 생긴 다른 소형 공항인 백령은 군민(軍民)공항으로 추진에 속도가 붙은 상태다. 울릉공항은 이미 44% 지은 상태라 되돌릴 수 없어 공사는 계속된다고 한다. 유정훈 교수는 “신공항은 각종 선거의 핵심 이슈”라며 “지역 민심을 들었다 놓았다 하고 국가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사안인데도 너무 정치적 이슈에만 끌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침 지난 14일 서울고법 행정10부는 용인경전철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해 혈세를 낭비했다며 당시 지자체장과 연구원들에게 214억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유 교수는 “국비로 건설하는 공항은 지자체가 주도하고 운영하는 철도와 달리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신공항, 자그마치 25조원이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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