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시다[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어린 손주가 할머니께 '할머니, 빨리 자셔요'라고 했다면 손주는 말을 잘한 것일까? 김삿갓이 가게에 가서 '이게 무엇이오?'라고 물었더니 '잣이오'란 대답을 듣고 값도 안 치르고 냉큼 먹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손주가 잠자리에서 한 말이라면 '주무세요'라고 해야 할 말을 잘못 한 것이겠지만, 밥상머리에서 했다면 대단한 어휘력이다.
김삿갓의 일화 속 '잣이오'의 발음이 '자시오'이니 이 단어를 아는 이라면 이 일화도 금세 이해가 될 것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린 손주가 할머니께 ‘할머니, 빨리 자셔요’라고 했다면 손주는 말을 잘한 것일까? 김삿갓이 가게에 가서 ‘이게 무엇이오?’라고 물었더니 ‘잣이오’란 대답을 듣고 값도 안 치르고 냉큼 먹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손주가 잠자리에서 한 말이라면 ‘주무세요’라고 해야 할 말을 잘못 한 것이겠지만, 밥상머리에서 했다면 대단한 어휘력이다. 김삿갓의 일화 속 ‘잣이오’의 발음이 ‘자시오’이니 이 단어를 아는 이라면 이 일화도 금세 이해가 될 것이다.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는 ‘먹다’로 대표되지만 높임법이 발달한 우리말에서는 매우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잡수시다’나 ‘잡숫다’는 가장 높여야 할 대상에게 쓸 수 있다. ‘자시다’ 역시 이와 같은 등급인데 더 예스러운 표현이어서 손주가 이 말을 썼다면 애늙은이 취급을 받을 것이다. ‘들다’ 또한 음식을 목적어로 삼으면 높임의 뜻이 더해진다. 이렇게 높임의 용도로 대체할 단어가 있다 보니 ‘먹다’를 높이기 위해 ‘먹으시다’를 쓰지는 않는다.
임금과 같이 특별히 더 높여야 할 대상에게는 ‘젓수시다’를 쓰기도 했다. 임금의 밥상은 따로 ‘수라’라고 불렀으니 먹는 행위 자체에 이런 표현을 쓰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 말을 쓰지 않는다. 반대로 먹는 것을 비하할 때는 ‘처먹다’를 쓸 수는 있지만 사람에게 써선 안 될 말이다.
높임의 등급이 복잡한 것도 모자라 이렇게 다양한 어휘로 높임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으로 상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런데 ‘자실’ 주체는 늘어나는데 ‘먹을’ 주체는 줄어드는 현실은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어르신들이 자실 것을 젊은이들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자실 분보다 ‘자셔요’라고 말할 사람이 더 많도록 유지하려는 노력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멱살·주먹질 아사리판’ 한국축구…국민 “태극마크 박탈하라” 비판
- 최순실 딸 정유라 “내 돈 300조 어디? 안민석 낙선 위해 오산 출마하고 싶어”
- 진중권, 노웅래·기동민 ‘컷오프설’에 “이재명 대표 혐의가 제일 커”
- “표적은 어린 여직원”…女공무원에 공포의 대상된 상사, 어땠길래?
- ‘빅5’ 병원 전공의 대표 “19일까지 전공의 전원 사직서 제출”
- 몸무게 95㎏ 건장했던 남성이, 세상에…러시아 포로로 잡혀갔다 풀려난 우크라 병사 충격적 근황
-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 부인, 통영 아파트서 숨진 채 발견
- “60억대 재산 김 여사, 300만원 백 눈에 차겠냐”
- 사고잦은 노후 전투기 F-5 보유국 세계 1위 된 韓…대만 60대 무더기 퇴역[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 박수홍 “그땐 죽고싶었는데… 김국진 덕에”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