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 고구려에서 비롯됐다? 젊은 유튜버의 ‘남다른 상상’ [책&생각]

최재봉 기자 2024. 2. 1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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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대한민국' 같은 말에 들어 있는 한(韓)의 유래는 무엇일까.

역사언어학 분야 유튜버 향문천은 그것이 고대 한반도 남부 세력이 자신들을 가리켜 말한 '가라'(伽羅)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가라'는 구개음화를 거쳐 '가야'로 변화했으며, 고대 일본어 자료에서 한국을 가리켜 쓴 말 '가라구니'에 '가라'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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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와 변화 관점에서 한국어 설명
“신라어는 한국어 조상 아니다”
“조사 ‘~가’는 일본에서 전래” 등
참신한 주장, 그러나 새겨들어야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있는 류큐 왕국 시대의 슈리성 정전. 2019년 화재가 나기 전의 모습이다. 향문천은 이 성의 이름인 ‘슈리’가 한국어 ‘서울’의 옛 형태에서 기원한다고 주장한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향문천의 한국어 비사
천 년간 풀지 못한 한국어의 수수께끼
향문천 지음 l 김영사 l 1만9800원

‘한민족’ ‘대한민국’ 같은 말에 들어 있는 한(韓)의 유래는 무엇일까. 역사언어학 분야 유튜버 향문천은 그것이 고대 한반도 남부 세력이 자신들을 가리켜 말한 ‘가라’(伽羅)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상고 중국어에서 한(韓)이 ‘가르’로 발음되었기 때문에 이 말로써 ‘가라’를 표기했다는 것이다. ‘가라’는 구개음화를 거쳐 ‘가야’로 변화했으며, 고대 일본어 자료에서 한국을 가리켜 쓴 말 ‘가라구니’에 ‘가라’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요컨대 고대 중국어 화자가 한민족의 자칭(自稱)을 듣고 중국식으로 표기한 글자를 나중에 한국어 화자가 다시 수입해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 ‘한’의 유래라는 것.

‘향문천의 한국어 비사(祕史)’는 2024년 2월 기준 17만7천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향문천-글을 울리는 샘’의 운영자가 쓴 첫 책이다. 한국어와 이웃 언어들의 접촉과 교류, 그에 따른 언어의 변화와 발전 등을 담았다. 근대 이후를 다룬 부분이 책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지만, 고대 한국어에 집중한 앞부분 3분의 2가 특히 흥미롭다.

향문천은 현대 한국어가 신라어에서 유래했다는 통설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설에 따르면 고대 한국어는 부여·한(韓)조어(祖語)에서 우선 부여계 언어와 한계 언어로 갈라졌고, 부여계 언어는 고구려어와 백제 귀족어로, 한계 언어는 신라어와 백제 대중어, 가야어로 각각 나뉘어졌으며, 신라어가 중세어를 거쳐 현대 한국어로 이어졌다. 그러나 향문천은 “(현대 한국어의 원형인 중세 한국어가) 후기 신라어가 사용되었던 한반도 동남지방이 아닌, 오랜 기간 고구려와 백제가 차지했던 중부 지방의 언어에서 유래”하는 만큼 현대 한국어의 뿌리는 오히려 고구려어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고대 언어에 관해 정확하게 말하기 어려운 까닭은 참고할 자료가 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조선 세종 때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 한국어 화자들은 한문으로 기록을 남기거나 한자를 음차해서 고유어를 표기했다. 이두와 향찰 같은 음차 표기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고대 한국어의 정체와 관련해서도 숱한 이설(異說)을 낳는다. 향문천은 특히 고대 한국어 자료 중 다수를 이루는 향가가 신라어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신라어가 중세 한국어로 곧바로 이어진다는 착시 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 언어들 사이의 유전적 계통을 반영하는 친연(親緣) 관계와 언어들이 주고받은 영향을 반영하는 유연(有緣) 관계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대 일본어가 백제어로부터 많은 어휘를 차용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어가 백제어의 후예라는 주장이 성립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멧돼지를 가리키는 고대 일본어 ‘위’와 거란어 ‘우이’는 모두 오이속 식물을 가리키던 고대 한국어에서 기원하며, 신라 금관총에서 출토된 환두대도에 새겨진 ‘이사지왕’은 자비 마립간이고, 한국어 주격조사 ‘가’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일본어에서 차용되었다는 등의 주장을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나름대로 근거와 논리를 갖추고 있어서 귀 기울일 만하지만, 지은이의 말마따나 고대 언어에 관한 연구는 “이론적 논의”와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다. 그럼에도, 언어학 전공자가 아닌데다 군복무를 마친 지 얼마 안 된 젊은 필자가 이 정도의 전문성과 밀도를 지닌 책을 썼다는 사실이 놀랍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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