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답사기] 조선시대 양반부터 MZ세대까지…세월 넘어 사랑받네

박준하 기자 2024. 2. 1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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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 답사기] (71) 서울 ‘삼해소주’
음력 정월부터 돼지날에만 세번 빚어
지금은 수시로 빚고 병에 넣어 숙성
온순한 맛 … 숙취없고 목 넘김 깔끔
여러 부재료 넣어 다양한 취향 저격
삼해소주 두번 더 증류한 ‘귀주’ 인기
도수 높고 비싸지만 마니아층 찾아
서울 마포구 삼해소주 양조장의 대표 술. 왼쪽부터 도수 45도인 ‘삼해소주’ 250㎖·375㎖와 도수가 무려 71.2도인 ‘삼해귀주’.

조선시대엔 음력 정월 첫 돼지날(亥日·해일) 삼해주를 빚었다. 삼해주는 이날부터 세번의 돼지날 동안 만들어진다. 고 김택상 대한민국 식품명인이 빚은 ‘삼해소주’(45도)는 이렇게 탄생했다. 2021년 그가 지병으로 작고한 후 ‘삼해소주’를 잇는 이는 2016년부터 명인과 함께 술을 빚던 김현종 대표(57)다. 17일, 다가오는 첫 해일을 코앞에 두고 김 대표를 만났다.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만 해도 명인과 아무렇지 않게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어요. 갑작스럽게 명인이 별세하면서 누구도 ‘삼해소주’를 전수하지 못했죠. 대신 지역특산주로는 만들 수 있어 관련 면허를 취득하게 됐습니다.”

예전에 김 대표는 중국에서 컴퓨터(PC) 부품 무역업을 했다. 한때 매출이 100억원에 달했지만 PC시장이 죽고 사업을 접으면서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그때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술꾼도시처녀들’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미깡 작가의 한 단편 웹툰이었다. 그는 웹툰에서 우연히 ‘삼해소주’를 보고 양조장에 갔다가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김 대표는 김 명인과 마음이 맞아 함께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삼해소주’는 김 명인이 살아 있을 땐 명인이 빚은 술이기에 민속주였지만, 그가 작고한 뒤엔 그 자격이 상실됐다. 김 대표는 판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다가 지난해 지역특산주로 전환했다.

900년 역사가 있는 ‘삼해소주’의 핵심은 세번 술을 빚는 데 있다. 첫 돼지날에 쌀로 술의 바탕이 되는 밑술을 빚고, 두번째와 세번째 돼지날에 덧술(술의 품질이나 도수를 올리려고 추가로 전분을 투입하는 과정)을 한다. 발효·숙성까지 꼬박 100일이 넘게 걸려 ‘백일주’로도 부른다. 만드는 방법이 까다로워 조선시대 땐 양반이 마시는 술이었다.

김현종 삼해소주 대표가 서울 마포구 양조장에 있는 증류기 앞에서 ‘삼해소주’를 시음해보고 있다.

물론 지금은 삼해일에만 술을 빚진 않는다. 수시로 술을 빚고 증류하고 있다. 양조장에 가면 작은 상압식 증류기가 일렬로 놓여 있다. 세척도 편하고 삼해소주 아카데미 회원들도 이용 가능하다. 별도로 숙성 과정은 거치지 않고, ‘병입숙성(병에 넣어 숙성하는 방식)’을 지향한다. 숙성 과정이 없는 데도 둥글둥글하며 부드러운 맛을 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해소주’는 숙취가 없고 목 넘김이 깔끔하다. 어떤 이들은 이런 ‘삼해소주’를 두고 ‘술맛이 온순하다’고 표현한다.

부재료를 넣은 ‘삼해소주’와 ‘삼해귀주’도 눈길을 끈다. 김 대표는 기존 ‘삼해소주’에 여러 부재료를 넣어 다양한 사람의 취향을 저격한다.

부재료로는 포도·유자·국화·청수(청포도)·보이차 등이 인기가 많다. 이들 술엔 본래 재료가 지닌 향이 낱낱이 살아 있다. 특히 포도를 넣은 ‘삼해 포’가 반응이 좋다. 처음엔 쌀의 고소함이, 그 후엔 포도 껍질의 쌉싸래함이 느껴진다. 국화를 넣어 빚은 ‘삼해 국’도 매력 있다. 마실 때 구수하고 향긋한 국화향이 난다. 이밖에 사과·귤 등 각양각색 재료가 색다른 술을 완성한다.

도수가 71.2도로 한병에 30만원이 넘는 ‘삼해귀주’는 마니아들이 주로 찾는다. 귀주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처럼 마시면 목 끝이 쨍하게 울릴 정도로 강렬하다. 이를 삼키면 ‘사람은 귀신이 되고 귀신은 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삼해귀주’는 김 명인이 ‘삼해소주’를 두번 더 증류해 내놓은 작품이다.

“과거엔 고소득자들이 찾아 마시는 술이었다면 요즘은 2030세대도 ‘삼해귀주’를 마시려고 사가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술의 가치를 알아본 거죠.”

‘삼해소주’가 유명해진 건 삼해소주 아카데미와 한달에 한번 목요일에 여는 ‘불목 파티’ 덕분이다. 몇년 전만 해도 삼해소주 아카데미는 회원을 모집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대기 없이는 못 들어갈 정도로 성황이다. 정해진 목요일에 각자 안주를 가져오면 술을 시음할 수 있는 불목 파티는 애주가들이 만나는 장이다. 참고로 금요일이 아닌 목요일에 진행하는 이유는 술자리가 재미있어서 참석자들이 밤을 샐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번 불목 파티는 22일에 열린다.

“이제는 무탈하게 술 빚는 게 목표입니다. ‘삼해소주’가 다시 자리 잡는 데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많은 분이 꾸준히 사랑해주고 아껴준 덕에 이 자리까지 왔죠. 앞으로도 좋은 술을 만드는 데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ju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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