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농촌 ‘도시 쓰레기 떠안기’ 몸살

김다정 기자 2024. 2.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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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처리시설 등 건립 놓고
전국 곳곳서 업체·주민들 갈등
환경오염·건강 위협 불안 고조
농산물 신뢰·관광산업 악영향
이상학 의료폐기물 소각장 반대 포항시민 대책위원회 위원장(오른쪽)과 주민 김상항씨가 의료폐기물 소각장 건립 반대 현수막을 살펴보고 있다.

각종 폐기물 처리시설이 ‘농촌행’을 이어가면서 주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환경오염과 주민 건강에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지역 농특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도 하락과 농촌 관광 감소를 초래하는 등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농사짓고 살아야 하는데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웬 말이냐.”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맑은(淸) 물(河)’을 뜻하는 이름을 지닌 이곳엔 최근 이같은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곳곳에 펄럭이고 있다. 지역에 추진되고 있는 의료폐기물 소각장 건립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내건 것이다.

갈등이 시작된 건 2022년 폐기물 소각업체 A사가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청하면에 짓겠다고 나서면서다.

주민 대다수가 벼·딸기·과수 등을 재배하는 곳이어서 곧바로 반발이 터져 나왔다. 24시간 운영되는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지하수나 대기를 오염시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열흘여 만에 전체 주민 4700여명 가운데 4161명이 반대 서명을 했다.

주민 이태경씨(62)는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특히 지하수 오염에 대한 우려가 컸다”고 설명했다.

당장 우려되는 환경오염뿐 아니라 ‘청하 농산물’ 이미지 하락에 대한 걱정도 컸다. 이상학 의료폐기물 소각장 반대 포항시민 대책위원회 위원장(62)은 “청하는 산딸기가 유명한데 시설하우스보다는 노지에서 주로 재배된다”며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있는 지역에서 나온 산딸기를 소비자들이 사 먹겠냐”며 한숨지었다.

이곳뿐 아니다. 안동시 풍산읍 신양리에서도 의료폐기물 소각장 설치를 놓고 주민들이 5년째 반대 집회와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갈등은 폐기물 처리업체 B사가 2019년 9월 신양리 9560㎡(2900평) 부지에 보관 용량 300t, 하루 처리(소각) 용량 60t 규모의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설치하겠다는 사업계획서를 시에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예정 부지 인근에는 안동과 예천 5개 마을 266가구 499명이 거주하고 있는 데다, 부지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거리에 민가가 자리한다. 낙동강 본류까지 거리는 약 5㎞ 밖에 안돼 주민 건강은 물론 생활환경까지 위협받는다는 것이 반대 이유다.

충북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서는 지난해 11월 C업체가 지정폐기물을 하루 35t 처리, 660t 저장할 수 있는 폐황산 처리시설을 건립하겠다고 원주환경청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또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에서는 D업체가 34만8602㎡(10만5500평) 부지에 폐기물 매립시설 건립을 추진해 지역사회가 들끓고 있다.

농촌지역 주민들은 더이상 도시 쓰레기를 떠안을 수 없다고 항변한다.

청하면에서 벼농사를 짓는 김상항씨(62)는 “경북은 이미 경산·경주·고령 등 세곳에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있어 더는 건립이 필요 없다”며 “도내 폐기물 처리를 위해 짓겠다는 것도 아니고, 농촌만 희생하라는 건 참을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최재식 음성군 원남환경지킴이 회장(72)은 “해당 시설이 들어설 경우 공정 과정에서 유해가스가 다량 발생하고 폐황산이 유출될 수 있어 주민 건강권과 생존권이 위협받게 된다”며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혐오시설이 농촌관광산업이나 귀농인구 유입과 같은 ‘지속가능한 농촌 만들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학 위원장은 “건립 예정지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청하중학교는 교육청에서 선정한 ‘농어촌 참 좋은 작은학교’에 선정되는 등 도농교류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며 “그런데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들어오면 어떤 부모가 이곳에 아이를 보내겠나”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업체들은 대부분 소송전까지 불사하며 사업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아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청하면의 경우 포항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지난해 주민 수용성을 이유로 재심의를 결정했지만 A업체는 이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또 대책위를 상대로도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이태경씨는 “업체 측은 2주 만에 반대 서명을 90% 가까이 받았을 리가 없다며 ‘사문서 위조’ 주장을 펼치거나 불법 옥외광고물 부착,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민형사 고소를 8건 이상 했다”며 “주민들이 겁먹고 양보하기를 바라겠지만, 주민들은 업체가 포기하는 그날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원도의 한 관계자는 “일방적으로 불이익이 가지 않게 농촌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해결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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