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기업 ‘먹튀’ 하는데, 최소한의 노동자 보호도 없는 나라”

신다은 기자 2024. 2. 1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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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물량은 옮겨갔지만 사람은 옮겨가지 못했다.

2022년 10월 경북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이 불탄 뒤 모회사 닛토덴코그룹은 생산 물량을 경기도 평택의 다른 자회사 공장('한국니토옵티칼')으로 옮겼다.

닛토덴코가 화재보험금 1300억여원을 받은 점과 평택공장에서 신규 직원까지 뽑은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젠 구미공장의 LG디스플레이 물량도 평택공장에서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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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21]옥상 고공농성하는 노조, 강제철거하려는 회사…‘11명’ 고용승계 안 되는 까닭은
2024년 1월8일부터 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에서 소현숙·박정혜씨가 한 달 넘게 농성 중이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제공

공장 물량은 옮겨갔지만 사람은 옮겨가지 못했다. 2022년 10월 경북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이 불탄 뒤 모회사 닛토덴코그룹은 생산 물량을 경기도 평택의 다른 자회사 공장(‘한국니토옵티칼’)으로 옮겼다. 199명이 희망퇴직하고 단 11명이 남았으나 회사는 이들을 평택에 함께 데려가길 거부했다. 남은 이들은 2023년 2월부터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텅 빈 공장 터를 지키고 있다. 2024년 1월8일 노조 수석부지회장 박정혜씨와 조직2부장 소현숙씨가 옥상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그사이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은 구미공장을 철거하겠다는 회사 쪽 요구를 들어줬다. 화재로 구미공장 생산이 불가하다는 이유다. 닛토덴코가 화재보험금 1300억여원을 받은 점과 평택공장에서 신규 직원까지 뽑은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닛토덴코는 농성을 진압하려 노조 조합원들 전세보증금과 주택도 가압류했다.(관련 기사: 해고하고 전세보증금 가압류… ‘노란봉투법’ 있었으면?)

공장 철거가 예정된 2024년 2월16일, 영남권 금속노조 간부들은 공장 앞에 집결해 집행을 저지할 방침이다. 운명의 날을 사흘 앞두고 유선 통화로 박 부지회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옥상에서 어떻게 지내나.

“식사는 동료들이 잘 챙겨주고 있다. 잠은 핫팩을 끼고 침낭에서 잔다. 올겨울이 유달리 춥긴 했다.”

—현재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직원은 몇 명인가.

“11명이다. 회사가 우리에 대해 주택자금과 전세자금을 가압류한 것도 다 그대로 남아 있다.”

—닛토덴코는 고용승계 거절 사유로 ‘(구미와 평택) 법인이 다르다’는 점을 든다. 어떻게 보나.

“옵티칼 공장 내부를 잠깐이라도 본 사람은 안다. 평택 니토옵티칼 공장과 구미 한국옵티칼 공장은 생산 제품부터 직원 근무복, 명찰까지 똑같다. 쌍둥이 회사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오죽하면 구미 생산 제품이 평택공장으로 넘어갔을 때 우리 조합원들이 평택공장 가서 인수인계도 했다.

생산 제품도 똑같이 엘시디(LCD) 편광필름이고 고객사만 다르다. 평택공장은 삼성디스플레이, 구미공장은 엘지(LG)디스플레이였다. 이젠 구미공장의 LG디스플레이 물량도 평택공장에서 생산한다. 법인이 달라서 고용승계가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회사가 고용승계를 안 하려는 진짜 이유가 뭐라고 짐작하나.

“노조 했던 사람들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금속노조를 부담스러워하는 게 크다고 생각한다.”

최근 익명의 독자가 2023년 11월19일자 <한겨레21> 기사 등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소식을 접하고 ‘노조 사연을 알리고 싶다’며 만화를 그려 보내왔다.

—희망퇴직을 않고 고용승계 투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나도 강단진 성격은 아니다. 처음엔 희망퇴직하라면 해야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희망퇴직 설명회 등을 통해 회사 입장을 듣고 보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한번은 연차에 비해 위로금이 적다고 노동자들이 항의했더니 회사 쪽 노무사가 ‘그러면 2019년 희망퇴직 받을 때 나가지 그랬냐’는 취지로 말했다. 우리가 그때 회사 살리려고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이건 아니다, 저 사람들에게 사과는 받아야겠다 싶었다. 고용승계든 회사 재건이든 해야겠다는 결심이 그때 섰다.”

—농성 중 어떨 때 힘을 받나.

“옥상 밖으로 얼굴 내밀면 동료들이 손 흔들어준다. 또 가끔 커피나 간식을 말없이 올려준다. 사실 여기 있으면 식욕도 별로 안 난다. 그런데 동료들이 알아서 챙겨서 올려준 걸 보면 내가 이거 좋아했지,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집행일이 2월16일이다. 계획이 있나.

“버티는 것이다. 끌려 내려가지 않고 우리 스스로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동료들이 다칠까 걱정이다.”

—최근 락앤락 직원들도 외국투자기업 철수로 일자리를 잃었다. 제대로 된 노사교섭 없이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외투기업 ‘먹튀’ 관행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나라에서 최소한의 (고용승계 관련) 규정을 정해줘야 맞는다고 생각한다. 규정이 있으면 노동자도 기업도 이렇게까지 갈등하지 않을 거다. 지금은 일방적으로 기업 편만 들지 않나. 노동자 편을 드는 법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없으니 이런 갈등은 앞으로도 없을 수 없다. 그게 가슴 아프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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