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테일'처럼 분 단위 토론수업 … 암기왕 아닌 해결사 키운다

서정원 기자(jungwon.seo@mk.co.kr) 2024. 2. 1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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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교육 이끄는 태재대
브레인스토밍·모둠토의 등
철저히 시나리오대로 진행
앵무새 양산 필기시험 폐지
팀 프로젝트·에세이로 평가
美석학도 정년보장 없어
교수가 자기 말만 하느라
발표 못 이끌어내면 경고
염재호 태재대 총장(맨 오른쪽)이 교수진과 함께 태재대의 수업 방식에 대해 토의하고 있다. 지난해 첫 학기 시작 전 강원도 양양 낙산비치호텔에서 진행된 워크숍 모습. 태재대는 '액티브 러닝'을 위해 지난해 3월부터 12주 동안 교수들을 대상으로 교수법 집중 훈련을 실시했다. 태재대

몇 년 전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화제였다. 서울대생 중 평점 평균 A0 이상을 받은 이들의 학습 태도를 분석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교수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다 받아 적는다' '강의 전체를 녹음한 다음 그대로 외운다' '별로 의문을 갖지 않고 앵무새가 되면 된다'는 답변이 대다수였다. 모든 내용을 그대로 필기하는 학생일수록, 비판적 사고력이 수용적 사고력보다 낮다고 답한 학생일수록 평점 평균이 높았다.

태재대학교는 이런 학습 방식에 반대한다. 학생들 발표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자기 말만 하는 교수들에게는 외려 경고를 준다. 주입식 강의, 일방적 지식 전달로는 21세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는 판단에서다. 태재대 수업은 철저히 학생이 주인공이다. 관련 책이나 동영상은 사전에 숙지해야 하고, 수업 시간에는 이를 전제로 토론과 토의가 이어진다. 수업이 끝나면 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당면한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도출한다.

애플워치를 어떻게 개선할지 수업 시간에 토론했다면 이후 추가 조사를 바탕으로 '어느 회사와 접촉할지' '예산은 얼마나 소요될지'를 포함한 좀 더 실현 가능성 있고 정교화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다. 교수는 토론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율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도움이 있으면 제공하는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한다. 지식을 배우는 강의가 아니기에 평가도 프로젝트와 에세이가 기준이다. 암기 여부를 확인하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없다.

역설적으로 교수 역량이 더 중요해진다. 기존 교수법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재대는 지난해 3월부터 12주 동안 교수들을 대상으로 집중 훈련을 실시했다. 실제 수업과 똑같은 길이의 100분짜리 프로그램을 매주 하나씩 연습하도록 했다.

교수가 자기 마음대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방지하고 일관된 학습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분 단위 '레슨 플랜'이 마련돼 있다. 첫 15분 동안 쪽지시험을 보고 지난 시간 주제를 복습한 뒤, 그다음 8분 동안 이번 주제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또 20분 동안 모둠 토의를 진행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제작할 때 그림까지 그려가며 시나리오를 촘촘히 짠다"며 "태재대는 수업시간마다 '봉테일' 시나리오가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교수진과 지원 조직 교육기획팀이 머리를 맞대고 수업 계획을 만든다. 주기적으로 개최하는 '교육과정 평가위원회'를 통해서다. 미네르바대 초기에 학장으로 참여한 스티븐 코슬린 하버드대 명예교수, 곽지영 태재대 데이터사이언스·인공지능학부장을 비롯해 각 학부 교수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사후 평가도 철저하다. 교육공학·교육학 박사들로 구성된 교육혁신원에서 수업 영상을 시청하고, 강의계획서·수업 자료를 분석하며 교수 개인별로 수업 역량 평가를 실시한다. 수업 중 학생들과 상호작용은 얼마나 하며, 학생들 참여도는 얼마나 높은지도 평가 대상이다.

결과는 여과 없이 교수들에게 전달된다. 예컨대 '교수가 말하는 시간이 기니 조금 줄이고 학생들의 발표를 북돋아 달라' 'A학생은 창의적 사고는 강한데 디테일이 부족하니 이를 보강해 달라'는 식이다. 교수 재임용·연봉협상과도 연계된다. 태재대에는 '테뉴어(정년 보장)'가 없고, 3년 단위로 계약한다. 스탠퍼드대·프린스턴대를 비롯해 세계 유수 대학에서 초빙했지만 태재대 교육철학에 맞지 않으면 재계약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태재대가 채택한 온라인 교육 플랫폼 '인게이지리'는 다양한 분석 도구를 제공하며 이를 가능케 한다. 모든 수업은 녹화되고,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발표를 하기 위해 몇 번이나 손을 들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바로 나온다. 누가 수업에 활발하게 참여하는지를 교수와 교육혁신원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뒤 '플레이백 룸'에서 지난 영상을 돌려보며 복습할 수 있다. 영어·스페인어 자막이 제공된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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