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영·미 뮤지컬과 무엇이 다를까

허진무 기자 2024. 2. 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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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없이 노래로만 구성된 ‘성 스루’ 형식
배우는 노래, 무용수는 춤만…실력 빼어나야
다양한 인간군상 등장…서사보다 인물 중심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배우 양준모(왼쪽)가 ‘콰지모도’를 연기하고 있다.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 장면.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

프랑스 뮤지컬의 대표작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국어 공연이 지난달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했다. 한국에서 공연한 해외 뮤지컬 대부분은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제작한 작품들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낯설지만 신선한 감성의 프랑스 뮤지컬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현재까지 오리지널 내한 공연과 라이선스 한국어 공연이 여섯 차례씩 열릴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미국·영국 뮤지컬과 다른 프랑스 뮤지컬만의 특별한 매력은 무엇일까.

프랑스 뮤지컬의 대부분은 대사 없이 전체가 노래만으로 구성된 ‘성 스루(Sung-Through)’ 형식이다. 프랑스 샹송과 발레 전통 문화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그만큼 완성도 높은 노래와 음악이 작품의 중심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1482년 프랑스 파리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의 흉측한 종지기 콰지모도(양준모),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주교 프롤로(민영기), 헌병대장 페뷔스(김승대)가 모두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솔라)를 사랑하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그렸다.

기자가 지난 4일 관람한 <노트르담 드 파리>는 막이 오르자마자 음유시인 그랭구와르(이지훈)가 유명한 넘버 ‘대성당의 시대’를 불러 객석을 휘어잡았다.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어.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 대다수 미국·영국 뮤지컬은 20곡 안팎으로 구성되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에는 무려 52곡의 넘버가 나온다. 록, 탱고, 클래식 등을 뒤섞은 강렬한 음악에 시적인 가사가 돋보인다. ‘아름답다(벨)’ ‘파멸의 길로 나를’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 등의 넘버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미국·영국 뮤지컬은 배우가 노래와 안무를 모두 소화하는 작품이 많지만, 프랑스 뮤지컬은 노래와 안무 역할을 분리한다. 배우가 노래에, 무용수가 춤에 전념하는 만큼 빼어난 실력을 보여야 한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도 뛰어난 가창력과 고난도 안무를 감상할 수 있었다. 양준모는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대 국립음악원에서, 민영기는 한양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솔라는 가창력으로 유명한 걸그룹 ‘마마무’의 메인 보컬이었다. 김승대도 2006년부터 수십편의 뮤지컬에 출연한 베테랑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무대는 뒤쪽 배경에 대성당을 닮은 거대한 벽을 두고 앞쪽 공간을 폭넓게 열어뒀다. 무용수들은 비보잉, 애크러배틱, 브레이크 댄스 등을 결합한 동작으로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안무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몸으로 표현하는 핵심 역할이다.

페뷔스가 에스메랄다와 약혼자 사이에서 갈등하며 ‘괴로워’를 부를 때 무용수들이 반투명한 장막 뒤에서 핀 조명을 받으며 격정적인 춤을 춘다.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에 대한 갈망을 고백하며 ‘성당의 종들’을 부를 때 무용수들은 총 100㎏짜리 대형 종 3개에 매달려 온몸으로 종을 흔들어댄다. “불행의 종소리, 행복의 종소리, 한 번도 결코 날 위해 울리지 않네. 대성당의 종들은 나의 사랑, 내 연인들, 이 마음 전해다오, 큰 소리로 울려다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음유시인 ‘그랭구와르’가 유명 넘버 ‘대성당의 시대’를 부르는 장면.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배우 이지훈이 ‘그랭구와르’를 연기하고 있다.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

주로 한 명이 주인공이 돼 서사를 이끄는 미국·영국 뮤지컬에 비해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 점도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이다. 서사보다는 인물이 두드러지는 편이다. 인물들이 내면을 독백하는 넘버가 19곡에 달한다. 콰지모도는 추한 외모 때문에, 프롤로는 금욕의 맹세 때문에, 페뷔스는 약혼자 때문에 에스메랄다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미국·영국 뮤지컬이었다면 세 남자와 에스메랄다가 ‘사각관계’를 이룰 법도 한데, 남자들이 서로 질투하며 충돌하지 않고 각자 괴로워한다는 점도 특이하다.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강렬한 음악과 사색적인 정서는 작품에 예술적 깊이를 부여하지만 미국·영국 뮤지컬에 비해 서사의 힘이 약하다는 비판도 있다. 영국의 거장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의 대표작이며 웨스트엔드 역사상 최장기 공연 작품인 <레 미제라블>도 원래는 프랑스 뮤지컬이었다. 1980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한 작품의 음악과 대본을 대폭 수정한 ‘영국판’이 ‘프랑스판’보다 더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현재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공연하는 <레 미제라블>도 ‘영국판’이다.

연극평론가인 조만수 충북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논문 ‘프랑스 뮤지컬의 극적, 서술적 구조’(2008)에서 프랑스 뮤지컬이 극의 진행과 독립적인 싱글 넘버들을 병렬적으로 연결한 구조를 가졌다고 설명한다. 조 교수는 “조금 과장되게 설명한다면 마치 레치타비보(극의 전개를 설명하는 노래) 없이 아리아(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노래)로만 구성된 오페라”라며 “아리아라는 용어 자체가 ‘분위기’를 뜻하듯이 드라마가 상실되고 정서와 감정만이 강조된다”고 적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 출연한 (왼쪽부터)‘콰지모도’ 역의 양준모, ‘프롤로’ 역의 민영기, ‘페뷔스’ 역의 김승대.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선 걸그룹 ‘마마무’ 메인 보컬 솔라가 ‘에스메랄다’를 연기했다.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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