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났다 4', 기술은 더하고 신파는 덜었다

아이즈 ize 신윤재(칼럼니스트) 2024. 2. 1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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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신윤재(칼럼니스트)

사진=MBC

늘 그렇지만 명절은 현대사회에서 어쩌면 희미해지고 있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간이다. 명절이 되면 먼 데서 가족들이 찾아와 모이고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눈다. 이 모습은 때론 격려와 응원이 되기도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차가운 비수가 돼 와 꽂히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가족이 아예 없는 경우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번 설에도 또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화제가 됐다. 2020년 시작돼 어느새 방송 4년 차에 네 번째 시즌을 맞은 MBC '너를 만났다'다.

프로그램의 네 번째 시즌은 지난 11일 설 명절 다음날 오후 9시 방송됐다. 3년 전이던 2020년 급성 뇌출혈로 4남매 중 맏이인 이서준군을 떠나보낸 안유진-이창원 부부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2020년 첫 시즌 희귀 난치병으로 세상을 떠난 7살 딸의 모습을 처음으로 조명했던 시리즈는 시즌 2에서는 사별한 아내를 만나는 남편, 3에서는 먼저 떠난 어머니를 찾는 자녀들의 에피소드가 공개됐다. 네 번째 시즌 만에 '너를 만났다'는 딸과 아내, 어머니와 아들 등 세대를 가리지 않는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를 모두 선보인 셈이다.

'너를 만났다'는 다음 시즌이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시청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누리꾼들의 반응이 이어지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최첨단 기술인 '가상현실'(VR)을 통해 지금은 만나지 못하는 가족들과 재회한다는 한 줄짜리 시놉시스만 가지고도 방송가에 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시즌이 거듭된 현재에는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여, 따로 영어나 그 외 언어로 번역된 자막이 없음에도 유튜브에는 각종 언어로 제작된 자막과 함께 주요장면이 유통되고 있다.

AI(인공지능)의 방송가 진출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많은 프로그램이 AI의 도움을 빌리고 있기에, 이제 단순히 프로그램에 AI가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얻지 못한다. '너를 만났다'는 프로그램 자체의 강력한 최루성과 더불어 시즌이 지날수록 변화하는 구성과 기술의 추이를 보는 면에서도 흥미로움을 제공한다.

사진=방송 영상캡처

이번 시즌 '너를 만났다'가 새롭게 한 기술적인 시도는 여럿이다. 일단 이전 시즌 가족을 잃은 부부가 있다면 한 명 배우자만 재회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13살에 세상을 떠난 아들을 엄마와 아빠, 두 사람이 동시에 만나는 설정이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엄마와 아빠의 기억에 맞는 적절한 가상공간을 구현해 같은 시간에 두 사람을 각각 다른 설정 속에 집어넣었다.

컴퓨터그래픽(CG)의 세밀함을 빼놓고도 또 관심을 모았던 것이 가상 캐릭터의 실시간 대응이었다. 과거 시즌 등장한 출연자들의 가족 모습은 철저하게 제작진이 사전에 기획하고 구성한 틀 안에서만 움직였다. 대사 역시 사전에 입력된 대로밖에 할 수 없었고, 감정적인 교류 역시 되지 않아 디지털 캐릭터가 혼자 말하고 움직이는 대로 출연자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쌍방향 소통형 AI 기술의 구현으로 출연자가 하는 말을 AI가 적극적으로 분석해 그에 합당한 대답을 실시간으로 도출했다. 따라서 출연자들은 디지털 캐릭터와 감정을 나누고 기분을 나누는 대화가 가능해졌다. 한층 진보한 그래픽과 더불어 몰입이 더욱 깊어졌음은 물론이다. 출연자의 몰입은 자연스럽게 시청자의 몰입으로도 이어졌다. 바로 전 시즌이었던 지난 2022년 5월 방송 시즌 3 '엄마의 꽃밭'의 마지막 회차 시청률 1.1%(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에서 이번 시즌은 1.9%의 시청률을 기록해 소폭 상승했다.

또한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에 특화된 콘텐츠답게 짧은 영상들도 빠르게 100만 조회수에 육박하며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기술적 진보에 걸맞게 구성에서도 세련됨을 가미해, 이번 시즌에는 본격적으로 심리상담사들이 참여해 출연자들의 치유를 돕고 디지털 캐릭터의 대사 정서를 메우면서 완성도를 높였다.

사진=방송 영상 캡처 

기술적으로는 더해졌지만, 구성에서는 오히려 덜어내는 모습이 역력했다. 시즌 2부터 기본 세 개 회차를 방송하던 분량이 1회로 줄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훨씬 담백한 구성을 볼 수 있었다. 회차가 길어지면 출연자들의 생활에 집중하게 되고, 하이라이트인 재회 장면으로 가는 길은 멀어진다. 그 사이를 자연스럽게 신파 정서가 채울 수밖에 없다. 한 회로 줄어든 '너를 만났다 4'는 재회 장면 이후에도 촬영을 마무리하는 장면이 담백하게 담기면서 오히려 시청자들이 감정의 여백을 느낄 수 있는 공간도 남겨뒀다.

과거 '너를 만났다' 종류의 다큐멘터리에서밖에 볼 수 없었던 AI나 가상현실 기술은 이제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 실제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김대호 아나운서가 집에서 혼자 VR 콘텐츠를 즐기는 모습이 공개돼 화제가 됐으며, 이는 이미 상용화돼 생활 속에 들어와 있다. 이제 제작진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내세우지 않고, 그 안에 무엇을 채우는지 고민하게 되는 단계에 진입했으며 실제 이번 시즌의 결과물을 통해 그 고민의 흔적을 드러냈다.

기술을 뺀 '너를 만났다 4'의 정서는 바로 헤어진 아들과 조금씩 이별하고 그 안에 슬픔을 이겨내는 일상을 채우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과거 단순히 가족을 잃은 이들의 일상을 전시하는 수준에 그쳤던 구성은 심리상담사와 국제죽음교육상담전문가의 투입으로 세세하게 안전망이 짜였다. 이러한 고심 속에 체험을 마치고 난 부부의 모습이 차라리 홀가분했던 것은 반드시 필자의 기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너를 만났다' 시리즈는 기술과 함께 인간의 정서를 살피는 섬세함으로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상 TV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하는가 하면, 대외적으로도 한국 방송 기술력과 구성의 진보를 나타내는 증거가 됐다. 우리는 늘 기술의 미래를 생각하면서도 그에 뒤떨어지는 인간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궁리하곤 한다. '너를 만났다' 시리즈는 그 모범적인 사례이며 실험이 되는 듯하다.

워낙 조심스러운 접근과 긴 기술적 회의가 진행되는 탓에 이 시리즈는 한 해 한 편의 제작도 장담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비효율의 극치'다. 하지만 모든 게 가성비로 소비되는 '효율의 시대', 이러한 긴 고민과 접근이 있기에 가치있는 콘텐츠도 분명 존재한다. 우리가 아직 '너를 만났다'로 눈시울을 붉힐 날들이 많으며, 이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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