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안전하게…미세 플라스틱 없는 생리대 만들었어요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② 김효이 이너시아 대표
‘여성용품계 다이슨’ 같은 회사 꿈
“기술로 여성의 삶 바꾸고 싶어요”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를 사용하지 않은 천연생리대를 개발한 김효이 이너시아 대표가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서울창업센터 동작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원 배지를 단 여성 국회의원은 18.5%다. 지난해 매출액 상위 100개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6%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은 여전히 비주류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보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여성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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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통이 엄청 심했어요. 한 달 중 생리하는 일주일 정도는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정도였거든요. ‘내가 겪었던 문제를 우리가 직접 해결해보자.’ 그러면 좋은 물건이 나올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김효이(25)씨는 2021년 7월, 이런 생각을 공유한 친구 셋과 뭉쳐 여성 헬스케어 회사 ‘이너시아’를 창업했다. 김씨는 당시 카이스트에서 의료 분야의 인공지능(AI)을 전공하던 박사과정 1년 차, 친구들도 같은 학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 하드웨어와 물질의 독성 연구 등을 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네 사람 모두 ‘탈선’한 공학도였던 셈이다. “기술의 영향력을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빠르게 끼치고 싶었어요. 우리 넷 모두 여성이기도 했고, (기왕이면) 여성의 삶을 기술로 바꿔보자는데 의견을 모았어요.”

김씨가 대표를 맡고, 회사 이름을 ‘이너시아’(Inertia)로 지었다.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1법칙’, 외부 힘이 없을 경우 같은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을 뜻하는 말 ‘관성’. 지난 15일 서울 동작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낡은 관성에서 벗어나 새롭고 좋은 관성을 만들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여성의 삶과 밀접하고 직접적으로 관련 있었으나, 발전이 더딘 생리대를 바꿔보기로 했다. 1년여의 연구 끝에 2022년 말 겉면, 날개, 속까지 유기농 순면을 사용하고, ‘수술용 지혈 소재’ 성분인 셀룰로오스를 활용한 천연 흡수체 라보셀을 넣은 생리대를 만들었다. 그는 2021년 말 한국공학한림원으로부터 차세대 공학 리더상 최우수상을 받고, 지난해엔 중소기업벤처부가 선정한 ‘소재·부품·장비 스타트100’에 선정되기도 했다.

—카이스트 여성 공학도들과 천연 생리대를 만들었다. 왜 생리대였나.

“의료 분야 AI를 전공하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 많은사람한테 빠르게 영향력을 주고 싶었다. 우리 넷 모두 여성이라, 여성의 삶을 기술로 바꿔 보자는데 의견이 모였다.

여성에게 밀접한 물건이지만 생리대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나는 좋은 제품을 고를 지식이 있는 ‘현명한 소비자라고 생각했고, 깐깐하게 고른 유기농 생리대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용하던 생리대에도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가 들어가고 있었다. 유기농 생리대라고 홍보하는 제품의 상당수는 겉면만 유기농인 경우도 많았다.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 없이 생리혈을 흡수하는 안전한 생리대를 고민하다, 수술용 지혈 소재를 떠올렸다. 이 기술을 생리대에 적용해보자는 단순한 아이디어였다.”

—생리대를 연구한다고 하니 반응은 어땠나.

“교수님들은 ‘뭐? 생리대?’라고 되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굳이 그런거 해야하냐’ ‘쓰고 버리는 더러운 영역을 처리하는 건데’라는 말들도 나왔다. 아마도 AI나 조선·해양·발전 등에 들어가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중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기존 업체도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기술을 생리대에 적용하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양산에 성공해 판매한다 하더라도 고객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기술보다는 어떤 마케팅 언어로 파는지가 중요하다고 하기도 했다.”

—‘왜 생리대에 기술을 쓰냐’라는 질문은 생리가 여성의 몸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임에도 거기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들린다.

“맞다. 아직까지 기술의 발전은 조금 더 남성을 중심으로 개발되어 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저희가 생리대 개발을 하면서 만나뵀던 분들은 거의 다 남자였고, 여성은 대부분 마케팅팀, 디자인팀에서 일했다. 그러다보니 실제 사용자로서 물건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발전이 없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연구의 시작은 문제의 발견인데, 문제의 발견이 여성의 삶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던 것이다. 실제, 공대 남성 비율이 80% 이상이었다. 카이스트에 입학당시 여학생 비율이 30% 넘는 게 이례적이라고 했다.”

—‘왜 생리대를 연구하냐’는 반응에 흔들리진 않았나.

“흔들리는 마음도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해왔지만, 누군가 ‘왜 그런 걸 해?’라고 물었을 때 주눅들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남들이 부러워하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지않나. 기존 업계들의 부정적인 말들도 처음엔 원망스러웠다. 업계에 오래 있어서 생각이 굳은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2~3년 정도 이 업계에 있으니 그 분들도 안되는 케이스를 너무 많이 보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알아서 그런 조언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생리대를 연구하기로 한 건우리 4명 안에는 내가 경험했던 문제를 직접 해결하면 좋은 물건이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직접 해결하려는 용기를 가지지 않았던게 변화하지 않은 이유인 것 같았다. 여성, 고객, 개발자로서 창업한 것에 의의를 가졌다.“

—경험했던 문제는 어떤 것.

“생리통이 엄청나게 심했다. 거의 매달 응급실에서 주사를 맞아야만 통증을 줄일 수 있었다. 한 달 중에 생리하는 일주일 정도는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내가 생리하는 기간에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알았을 정도였다. 주변에 생리할 때 어려움을 겪는 친구 한 명씩은 있을거다.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면 ‘생활 습관 바꿔라’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그 시작이 생리대라고 생각했다.”

—2017년 생리대 독성 논란 등이 있었다. 그것도 반영된건가.

“생리대 파동 이후 변화를 발견하지 못했다. 유기농 순면을 사용했다고 홍보하는 제품도 피부에 닿는 겉면이 아닌 안쪽까지 유기농 순면을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생리혈을 흡수하는 소재로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를 사용하는 생리대도 있었다. 흡수력이 좋고 덜 짓무르는 게 좋은 생리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때문에 흡수력이 좋았던 거였다.

그래서 ‘안전한 생리대’ ‘내가 쓰고 싶은 생리대’를 만들고 싶었다. 생리대를 연구할 때 설문조사를 200명 이상 받고 80명 이상 대면 인터뷰를 했다. 기존 생리대의 문제점으로 ‘새고 짓무른다’, ‘밑이 당기는 느낌이 강하다’, ‘냄새가 고민이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어떤 한 분이 ‘흡수체가 들어가지 않은 걸 쓴다’ 했는데 좀 깜짝 놀랐다. 광고에서 보듯 물 부으면 생리대가 바로 흡수하는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흡수력이 너무 강하면 밑이 당기는 느낌이 들어 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실험은 어떻게 했나.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과 물은 조성 등에게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실제 피를 부어서 실험했다. 피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처음엔 대전의 축산시장에 갔는데 선지만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한 사장님이 충청지역의 도축장에 가보라고 조언하셨다. 그 분의 소개로 도축장에 미리 예약해 도축하는 날에 가서 피를 받아왔다. 매주 식용유 담는 통(18리터)으로 2~3통을 받아왔다. 10번은 간 것 같다. 사장님이랑은 깐부가 됐다.”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를 사용하지 않은 천연생리대를 개발한 김효이 이너시아 대표가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서울창업센터 동작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피를 그렇게 많이 본 경험이 없지 않았나.

“맞다. 그래서 엄청 매스꺼웠다. 피가 부패하면 냄새도 나고, 모습 자체도 굉장히 역겹다. 특히 한 공동 창업자가 힘들어 해서 실험도구 등 씻고 정리하는 건 내가 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 했다. 하루 2~3시간씩 자면서 학업과 실험, 그리고 업체 찾아다니는 생활을 1년 반정도 하며 샘플 300개 정도 만들었다. 만들고 사용해보고 반복했다. 생리 기간이 아닐 때도 생리대를 착용했고, 생리혈 흡수체를 피부에 붙여두고 3일 정도 생활하면서 피부 트러블이 나는지 확인했다.

—생리대 포장지가 붉은 색이다. 지금껏 생리대 업체 중에 붉은 색을 강조한 생리대는 거의 없었는데.

“붉은색으로 결정한 뒤에 5번가량 지적 받은 것 같다. 아직까지 사람들이 붉은색에 대해서 반감이 있을 거라는 거였다. 생리혈과 비슷한 색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면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색 바꾸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는 우리가 예쁘다고 생각한 컬러, 여성들에게 조금 더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드러낼 수 있는 컬러를 사용하자고 싶었다. 유독 여성용품 분야에만 많은 의미와 책임이 부여되는데,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펀딩을 진행한 와디즈에서 목표금액 2만207%를 달성했다. 생리대 부문 역대 펀딩금액 1위를 기록했다고.

“펀딩 결과를 보고 우리의 예상이 맞았다는 걸알게 돼 뿌듯하고 감사했다. 사실 주변의 의심들 때문에 제품을 내는 순간까지도 걱정이 많았다. 고객들이 우리 기술을 알아봐줄까라는 불안감도 있었다. ‘한 번만 써보세요’ ‘저는 진짜로 이거 덕분에 정착했고 오래오래 파세요’ 같은 후기들이 있는데, 힘이 됐다. 이런 걸 알아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지난해 1월 매출보다 12월 매출이 10배가 넘는다. 누적 투자액도 20억이 됐다.

독일의 피부과학연구소인 더마테스트사에 맡긴 임상에선 안전성 최고 등급을 획득했다. 특히 ‘냄새 없음 100%’ 결과를 받았다. 분비물과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가 만나며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이너시아 생리대는 냄새가 거의 안났었다. 그래도 냄새 없음 100%를 받을 줄은 몰랐다.”

—펨테크를 지향한다고?

“맞다. 우리는 단순히 여성이 사용하는 것만으로 펨테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성이 생활하고 사용하는 것에 기술을 더할 때 ‘펨테크’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생각하는 펨테크가 가끔은 여성이 사용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기술을 초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너시아가 가진 가치는 여성이 사용하는 물건을 바꾼다가 있는 게 아니라 여성이 사용하는 물건을 기술로 바꾼다에 있다고 생각한다. 더 편리하고 편안하게, 그리고 더 안전해지는 거에 있어서 저희가 근본적인 이유를 제공할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편견이 있다.

“남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더라도 여성이 있을 때 아직까지는 신기하게 생각하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저희 회사를 신기하게 보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카이스트에서 여학생 비율이 30% 정도였는데, 그 안에서 창업을 하다보니 비율이 낮은 편인 것 같다. 이너시아는 지난해 중기부에서 진행한 ‘소재 부품 장비 스타트업 100’ 선정식에 갔을 때, 여성은 나를 포함해 2명이었고, 20대 여성은 나뿐이었다.

—여성뿐만 아니라 이렇게 다른 범주로 확장 계획도 있나.

“여성의 삶의 편리성을 더하다 보면 전 인류적인 삶을 바꿀 기술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가 진출 못할 분야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목표하는 이너시아의 모습은 여성들의 삶의 불편함을 과학 기술로 해결하는 여성용품계의 다이슨이 되고 싶다. 비싼 드라이기, 청소기라고 하지만, 결국 기술력으로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지 않았나. 또 다이슨 창업자는 아직까지도 개발하고 있다. 우리가 만들고 싶고, 불편함을 느끼는 걸 계속 해결하고 좋은 물건을 개발했으면 좋겠다.

—여성 과학도를 꿈꾸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삶의 선택지가 단조로웠던 것 같다. 삶의 선택지를 다채롭게 채우는 게 사회, 환경의 문제 일수도 있지만 의지도 중요하니, 의지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손을 내밀면 손을 잡아줄 여성 선배들이 정말 정말 많으니 시도했으면 좋겠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