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여성의 삶 바꾸고파” 생리대 뛰어든 여성 공학도들

장수경 기자 2024. 2. 1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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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② 김효이 이너시아 대표
“생리 문제, 나뿐 아니라 많은 여성 겪어
안전한 생리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연생리대 이너시아를 개발한 김효이 씨가 1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서울창업센터 동작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원 배지를 단 여성 국회의원은 18.5%다. 지난해 매출액 상위 100개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6%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은 여전히 비주류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보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여성들을 소개한다.

“생리통이 엄청 심했어요. 한달 중 생리하는 일주일 정도는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정도였거든요. ‘내가 겪었던 문제를 우리가 직접 해결해보자.’ 그러면 좋은 물건이 나올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김효이(25)씨는 2021년 7월, 이런 생각을 공유한 친구 셋과 뭉쳐 여성 헬스케어 회사 ‘이너시아’를 창업했다. 김씨는 당시 카이스트에서 의료 분야의 인공지능(AI)을 전공하던 박사과정 1년차, 친구들도 같은 학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 하드웨어와 물질의 독성 연구 등을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네 사람 모두 ‘탈선’한 공학도였던 셈이다. “기술의 영향력을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빠르게 끼치고 싶었어요. 우리 넷 모두 여성이기도 했고, (기왕이면) 여성의 삶을 기술로 바꿔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어요.”

김씨가 대표를 맡고, 회사 이름을 ‘이너시아’(Inertia)로 지었다.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1법칙’, 외부 힘이 없을 경우 같은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을 뜻하는 말 ‘관성’. 지난달 15일 서울 동작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낡은 관성에서 벗어나 새롭고 좋은 관성을 만들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 등이 마주한 ‘낡은 관성’은 생리대였다. 생리대는 여성의 삶과 밀접하고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물건이었지만, 발전이 더뎠다. 지독한 생리통 때문에 “응급실 가서 진통제를 맞아야만 버틸 수 있었던” 김 대표에게 생리대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김 대표는 “꼼꼼하게 따져 유기농 생리대를 사용했는데, 알고 보니 겉면만 유기농이었고 안쪽엔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를 사용하고 있더라”며 “(일회용 생리대에서 독성 물질이 검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2017년 ‘생리대 파동’ 이후 업계엔 큰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안전’한 것, 무엇보다 ‘내가 사용하고 싶은 생리대’를 만들기로 했다. 제품 개발을 위해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다 보니, 연구·개발 인력이 대체로 남성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실제 사용자가 직접 물건을 개발하지 않으니 발전이 없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김 대표는 ‘고객’이자 ‘개발자’로 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정확한 연구를 위해서는 ‘물’이 아닌 진짜 ‘피’로 흡수력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피를 찾아 충청 지역 도축장에 10번 이상 찾아갔다. 갈 때마다 식용유 큰 통(18ℓ)으로 2~3통씩 피를 받아왔다. 6개월 이상 2~3시간씩 자며 실험한 결과 샘플 300개가 쌓였다. 겉면, 날개, 속까지 유기농 순면을 사용하고, ‘수술용 지혈 소재’ 성분인 셀룰로오스를 활용한 천연 흡수체 라보셀을 넣은 생리대를 만들었다. 생리 기간이 아닌데도 직접 착용하고, 피부에 3일 동안 붙여 트러블이 나진 않는지도 확인했다. 그렇게 창업 1년6개월여 만에 ‘미세 플라스틱 없는 생리대’가 나왔다. 독일의 피부과학연구소인 더마테스트사에 맡긴 임상에선 안전성 최고 등급을 획득했다. 특히 ‘냄새 없음 100%’ 결과를 받았다.

‘안전한 생리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던 여성들은 즉각 화답했다. 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선 목표 금액의 202배를 모았다. 김 대표는 2021년 말 한국공학한림원이 주는 차세대 공학 리더상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너시아는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소재·부품·장비 스타트업 100’에 뽑히기도 했다. 1년여가 지난 지금, 지난해 초 매출과 말 매출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김 대표 등이 처음 생리대를 만들겠다고 할 때만 해도 사실 마뜩잖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서 조언을 구하면 “양산에 실패할 거다” “생리대는 기술이 아닌 마케팅의 영역”이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김 대표는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관성 때문에 생리대 발전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꿈은 이너시아가 “여성용품계의 다이슨”이 되는 것이다. 그는 “다이슨 드라이기나 청소기가 비싼데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그 기술력 때문”이라며 “기술로 여성의 삶을 바꾸고 싶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펨테크’(femtech)”라고 말했다. 그는 “다이슨 창업자도 아직까지 (제품) 개발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우리가 만들고 싶고, 불편함을 느끼는 걸 계속 해결해 나가 우리도 좋은 물건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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