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Energy 지정학] 패전국 獨의 평화는 소련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에 달려 있었다

최준영·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4. 2. 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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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핵심 중 하나는 에너지다. 더 많은 에너지를 확보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한 나라가 성공했다. 에너지 경쟁을 둘러싼 국가와 인물의 흥망성쇠·합종연횡. 유튜브 채널 ‘지구본연구소’를 운영하는 최준영 법무 법인 율촌 전문위원이 ‘에너지 지정학’을 연재한다.

독일 경제가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서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되면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것이 핵심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독일이 왜 러시아 에너지에 과도하게 의존했는지 많은 이가 궁금해하며, 일각에서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집착이 그런 결과를 일으켰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독일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은 평화를 유지하려는 독일 현대 역사의 결과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7세기부터 독일과 러시아 관계는 특별하며 밀접했다. 독일인들은 러시아 정부 요직에서 활동하면서 경제, 문화, 교육, 군사 등 많은 영역에서 크게 기여했다. 러시아인들에게 전통적으로 외국인은 독일인이었다. 1918년 10월 혁명으로 고립무원이 된 소련에 손을 내밀어준 유일한 국가는 독일이었다. 1920년대 독일 경제인들은 소련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였으며,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항공기 보유를 금지당했던 독일군은 소련 깊숙한 내륙 지역에서 항공기 개발과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소련은 이 과정에서 독일의 선진 기술과 군사 전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양국의 비밀스러운 협력은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막을 내렸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의 압도적 힘과 무자비함을 경험한 독일인들에게 소련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은 생존을 위한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1952년 소련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던 오토 볼프 폰 아메롱겐을 중심으로 한 서독의 기업가들은 동방위원회를 구성하고 소련과 관계 강화에 나섰다. 무역으로 상호 의존도를 높이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이었지만 소련과 무엇을 교역할지는 답을 찾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군으로 근무하다 소련군 포로가 되어 혹독한 수용소 생활을 했던 테오도어 바이서는 무작정 모스크바를 방문해 소련산 원유 도입 계약을 성사시켰다. 러시아에 풍부하지만 서독에는 없는 에너지가 양국 교역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소련과 1958년 무역 협정을 맺은 서독에게 시베리아 야말 반도에서 발견된 대규모 천연가스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천연가스 수송에 필수적인 대구경 강관의 대량생산 기술이 부족했던 소련에 서독은 미국이 수출 중단 압력을 가할 때까지 3년 동안 대구경 강관을 60만톤 판매하면서 양국 교역은 본격화되었다.

그래픽=김현국

1968년 중립국 오스트리아가 소련 천연가스와 자국 철강을 교환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파이프라인 연결 공사를 벌이자 서독은 이를 연장해 소련의 가스를 직접 도입하는 구상을 하게 된다. 저렴한 에너지가 필요했던 서독과 마르크를 확보해야 했던 소련은 공식 협상을 했고, 소련은 매년 30억㎥(3bcm) 규모의 천연가스를 서독에 공급하고, 서독은 전체 건설비를 소련에 대출해 주기로 하였다. 대출금은 소련이 가스로 상환하는 구조였다. 1970년 2월 1일 서독 에센의 카이저호프 호텔에서 계약 직후 공사가 시작됐고, 1973년 10월 소련의 천연가스가 서독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서독이 내세우던 동방 정책의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서독과 소련의 에너지 협력을 지켜보던 미국은 시베리아의 가스를 2400km 파이프라인으로 북극해의 무르만스크까지 수송한 후 LNG(액화천연가스)로 전환하여 미국으로 수송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지만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천연가스 판매가 외화 획득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소련은 벨라루스와 폴란드를 거쳐 서유럽까지 이어지는 야말 가스관 건설을 유럽 국가들에 제안하였으며, 오일 쇼크로 고통받던 서독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은 이를 환영하였다. 하지만 1979년 12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소련에 대한 경제 제재에 동참하기를 서독에 요구하면서 논의는 중단되었다. 그러나 서독이 1981년 11월 야말 가스관 프로젝트에 서명하자 서독과 미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결국 미국과 겪은 갈등은 1982년 슈미트 서독 총리가 중거리 핵탄두 미사일 배치를 허용하면서 일단락되었고, 야말 프로젝트는 진행될 수 있었다.

냉전의 갈등 속에서도 20년 동안 진행된 천연가스 프로젝트는 소련과 서독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 크게 기여했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상호 신뢰는 1990년 독일 통일에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소련을 대신하여 독일에 가스를 공급하는 계약을 이행하면서 양국 신뢰 관계는 유지될 수 있었고, 독일이 지불한 에너지 대금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러시아에 큰 도움이 되었다. 1950년대 서독의 기업가들이 꿈꾸던 교역을 통한 상호 신뢰와 평화라는 목표가 40년 만에 달성된 것이었다.

하지만 양국의 협력은 2009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에 따른 가스 공급 중단으로 전환점을 맞이한다. 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산 가스의 3분의 2가 통과하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불안이 에너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독일은 미국과 폴란드 등의 경고에도 발트해를 통해 러시아와 직접 연결되는 노르트스트림 1, 2가스관을 2011년과 2021년 각각 개통하면서 러시아와 에너지 협력을 더욱 강화했다.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가스프롬을 비롯한 러시아 여러 에너지 기업의 임원으로 재직하는 모습은 양국의 협력 수준과 폭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양국의 협력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이 러시아를 대신해 독일에 LNG를 대량 공급하고 군사적 동맹 관계를 강화하면서 ‘안보는 미국, 에너지는 러시아’라는 독일의 균형 전략은 깨졌다. 발트 해저에서 폭파되어 방치된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은 러시아와 독일의 협력 관계 종말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에너지로 시작된 평화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EU의 러 파이프라인 가스 도입… 우크라 전쟁前 41%→ 2023년 8%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EU의 에너지 수입에서 파이프라인을 통한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 비율은 2021년 41%에서 2023년 8%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대신 EU는 노르웨이, 북아프리카, 아제르바이잔 등에서 수입하는 비율을 50%까지 늘렸으며, LNG도 2021년 20% 수준에서 42%로 확대하였다. EU가 수입하는 LNG의 46%는 미국산이 차지하고 있다.

유럽의 LNG 수입 터미널은 러시아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 스페인 등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러시아와 인접할수록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 공급 비용이 LNG보다 훨씬 저렴하여 LNG가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LNG 수입 터미널 건설 이전까지 긴급하게 LNG를 도입하기 위해 독일 등은 FSRU(부유식 가스 저장·재기화 설비)를 빌려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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