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6450명 취업제한 파일…쿠팡, ‘출처 불명’ ‘고유 권한’ 갈팡질팡
쿠팡 주식회사의 물류를 총괄하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이하 쿠팡풀필먼트)가 계약직·일용직으로 일했던 1만6450명의 개인정보를 모아 채용을 배제하기 위한 목적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공운수노조 물류센터지부 쿠팡지회와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쿠팡대책위)는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쿠팡풀필먼트에서 일했던 노동자 등 1만6450명의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담긴 엑셀 파일을 일부 공개했다. 2017년 9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파일에는 개인정보에 더해 소속 물류센터, 로그인 아이디(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에게 부여되는 식별 변호)가 표기돼 있으며, 개인별로 ‘정상적인 업무 수행 불가능’ ‘업무지시 불이행’ ‘근무태만’ 등 50여가지 사유(평가)가 적혀 있다. 파일의 존재는 전날 문화방송(MBC)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쿠팡대책위는 이 명단이 “취업(채용)에서 배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쿠팡풀필먼트는 ‘쿠펀치’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물류센터에서 물품 상하차 등을 하는 일용직·계약직 노동자를 수시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명단에 포함된 이들은 영구적, 혹은 일정 기간 채용을 제한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권영국 쿠팡대책위 대표는 “(명단에 이름이 오른 노동자들은)부당한 일을 항의했더니 이후 취업이 배제됐거나, 아파서 근무가 어려웠는데 고의적 업무방해로 사유가 적혀 있었다”며 “(사유를 적은 쪽의)개인적 느낌이 많이 가미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파일에 포함된 명단에는 쿠팡 물류센터 등에서 일용직·계약직으로 일했던 노동자뿐 아니라 쿠팡에서 일한 적 없는 언론사 기자들 이름과 전화번호 등도 포함됐다. 특히 지난해 9월27일 기자 71명이 무더기로 명단에 등록됐는데, 이들 대부분은 경찰 취재를 담당하는 사회부의 팀장급 기자다. 이들 소속은 모두 ‘잠실센터’로 돼 있고, 사유란엔 ‘허위사실 유포’가 적혔다. 서울 잠실은 쿠팡과 계열사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물류센터는 따로 없다.
해당 명단이 실제 채용 제한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됐다면 근로기준법과 개인정보보호법 등 법 위반이라는 게 쿠팡대책위 쪽 주장이다.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퇴사한 이들의 개인정보 보유는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를 모으도록 한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명단에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해온 간부와 조합원 20명도 포함됐다. 김병욱 쿠팡대책위 변호사는 “노조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줬다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김혜진 쿠팡대책위 집행위원장은 해당 명단 존재가 “노동자를 비인간적인 통제에 순응하도록 만들어, 권리가 없는 현장을 만들었다”고 짚었다. 이런 방식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채용 제한이 이뤄졌다면, 그간 지적된 폭염 환경에서의 노동과 과로 같은 쿠팡의 안전 문제 등에 노동자들이 문제제기 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의미다. 그동안 쿠팡의 기간제 노동자들 사이에선 계약 갱신 과정이 불투명하며, 블랙리스트로 채용이 제한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다.
쿠팡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직원에 대한 인사평가는 회사 고유 권한이자 안전한 사업장 운영을 위한 당연한 책무”라며 “시에프에스(CFS)의 인사평가 자료는 엠비시 보도에서 제시한 출처 불명의 문서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쿠팡대책위는 고용노동부에 쿠팡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는 한편, 명단에 기재된 당사자들을 모아 집단 고소 및 손해배상 청구에 나설 계획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실관계와 함께 법 위반 여부나 근로감독 필요성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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