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째 되풀이되는 정치권의 기숙사 공약…학생들 속만 탄다

김경민 기자 2024. 2. 1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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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일대 청년들 “반지하로 내려가야 겨우 월세 60만원”
야당에서 내놓은 기숙사 공약…기숙사 자체는 환영이지만 실현가능성 낮아
국민의힘은 청년주거비 관련 공약 발표하지 않은 상태
서울 주요 대학가 원룸(보증금 1000만원, 전용면적 33㎡ 이하) 평균 월세가 1년 새 11.6% 상승했다. 사진은 14일 서울의 한 대학가 알림판에 게시된 원룸 홍보물. 2024.02.14 문재원 기자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위치한 경희대에 재학 중인 공예진씨(21)는 개강을 보름 앞두고도 거처를 구하지 못했다. 학교 인근 월세가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공씨는 “회기동은 월세 70~80만원이 기본이고, 반지하도 60만원에 육박한다”며 “방을 구하기 힘들어 차선책으로 성북구까지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물가에 새학기를 앞둔 대학생들의 수요까지 늘면서 대학인근 원룸의 월세와 관리비 등 주거비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야당은 총선 공약으로 ‘월20만원’ 기숙사 확충안을 내놨지만, 기숙사의 수용률과 주민갈등 문제를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임대차 시장에 대한 공공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 운영사 스테이션3에 따르면 1월 서울 주요 10개 대학가 원룸(보증금 1000만원, 전용면적 33㎡ 이하) 평균 월세는 57만4000원으로 1년 새 11.6% 상승했다. 스테이션3 제공

경향신문이 지난 13일 경희대 일대를 돌아보니 월 50만원대 매물은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일대 부동산중개업소 창문에 빼곡히 붙은 매물 광고들은 대체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70만원대였다. 다른 대학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성신여대역 인근인 성북구 동선동 중개사 A씨는 “유동인구는 많지만 방이 귀하다”며 “60만원 넘는 원룸이 많고 5만원대였던 관리비도 지금은 8~9만원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 입학해 2주간 원룸을 구하러 다녔던 대전 거주 장모(51)씨는 “신촌이 보증금 1000만원에 80만원 수준인데 최근에는 안암동 근처도 비슷한 가격대가 형성되고 있더라”며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월 100만원 가량 드는 데 학교 기숙사는 태부족해 들어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 운영사 스테이션3에 따르면 지난 1월 대학가 원룸(보증금 1000만원 , 전용면적 33㎡ 이하 기준)의 평균 월세는 57만4000원, 평균 관리비는 7만2000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월세는 11.6%, 관리비는 20% 올랐다.

지난 13일 성북구 동소문 연합행복기숙사 전경. 2023년 2학기 첫 입주자를 받았다. 김경민 기자

이처럼 대학주변 월세와 관리비가 폭등한 것은 최근 고물가가 계속되는데다 공급부족까지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회기동만해도 7개 대학이 인근에 있어 유학생과 대학생 수요가 많은 상황에서 환승역(회기역)으로 인한 입지에 직장인 수요까지 몰리고 있다.

원룸 회전율이 떨어진 것도 가격인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매물로 나오는 물량이 적은데다 세입자가 나간 집의 경우 집주인이 월세를 크게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회기동 인근 중개사 B씨는 “코로나 때 비대면 수업이 늘면서 원룸 공실이 많았는데 그때 60만원짜리방이 40만원까지 떨어졌다”면서 “당시에 싼값에 원룸에 들어간 학생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이용해 눌러앉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원룸 회전율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주거비 경감을 위한 공공기숙사 확충안은 진보, 보수 가릴 것이 없이 선거 때마다 내놓는 단골 메뉴다. 2012년 국민의힘 전신 새누리당이 ‘행복기숙사’ 20만호 공급을 약속했다.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 2018년 지방선거 때도 기숙사 확대 공약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전신 민주통합당도 2012년 공공기숙사 확충 공약으로 시작해 2014년 지방선거, 2017년 대선 등에서 기숙사를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2020년 총선에서는 행복기숙사로 전환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번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청년 총선공약 1호로 ‘월 20만원대’ 공공기숙사 5만호 공급 계획을 내놨다. 도심 내 폐교부지, 국공립대 부지, 지자체 공공부지 등을 활용해 기숙사를 짓는다는 구상이다. 반면 국민의 힘은 아직 청년 주거비 경감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기숙사 부지 마련이 쉽지 않고 주민들과의 마찰도 계속되고 있다. 2018년 1학기 개관을 목표로 2015년 사업을 추진한 동소문 행복기숙사는 주민들이 생활여건 침해를 이유로 건립을 반대하면서 5년 뒤인 지난해 8월에야 첫 입주자를 받았다. 경희대도 인근 임대인의 반발로 동대문구가 기숙사 설립에 제동을 걸자 2014년 구청에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우여곡절 끝에 건축허가를 받아냈다.

기숙사를 만들더라도 그 자체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기숙사의 선정조건이 까다롭고 수용인원도 적어 혜택을 보는 학생들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소문 행복기숙사의 수용인원도 698명에 불과하다. 대학생 이지수씨(23)는 “기숙사가 소득분위를 따지지만 허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기숙사 수용 인원에도 한계가 있어, 자취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은데 기숙사 확충이 해결책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근본대책으로 정부의 월세 지원 대상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문동에 거주하는 대학생 서모씨(25)는 “이미 주거비와 생활비로 여력이 없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대책은 현금 지원금을 통해 월세를 보조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시행하는 청년월세 지원사업은 보증금 5000만원 이하(월세 60만원 이하) 주택에 거주하면서 중위소득 60% 이하(1인가구 기준 월 124만원)를 버는 청년이 대상이었다. 이 사업은 대상 기준이 너무 높아 지난해 예산 대비 실집행률은 14%에 그쳤다. 한국도시연구원 홍정훈 연구원은 “공공시설 확충도 필요하지만 청년들의 주거비를 경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 대책이 먼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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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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