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나타났다” 수목원에 120만명 몰려
지난 12일 오후 숲속에서 백두산 호랑이 태범(4·수컷)·무궁(4·암컷) 남매가 나타났다. 무궁이가 눈이 반쯤 감긴 태범이를 앞발로 툭 치자 태범이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엎치락뒤치락 장난을 치던 무궁이가 오빠 등에 올라타자, 철창 너머 관람객들이 “와우~” 하고 탄성을 질렀다. 전주에서 온 박모(61)씨는 “동물원 우리에 갇힌 호랑이와는 뭔가 느낌이 다르다. 마치 산속에서 직접 호랑이를 마주친 것 같다”고 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내 호랑이숲. 3.8ha(약 1만1500평), 축구장 6개 크기로 국내 최대의 호랑이 사육장이다. 말이 사육장이지, 야생성을 잃지 않게 하는 게 목적이어서 자연 상태나 마찬가지다. 현재 최고령 한청(19·암컷)과 우리(13·수컷), 한(11·수컷)과 도(11·암컷) 남매, 2021년 에버랜드에서 온 태범·무궁이 남매까지 6마리가 산다. 2017·2020년 두만이와 금강이는 노환 등으로 먼저 떠났다. 김태환 백두산호랑이보전센터장은 “턱 근육을 키우려고 소 정강이뼈 등을 먹이고, 동선(動線)을 다양하게 해 사지 근육을 기른다. 시기별 특식으로 섭식 욕구도 늘린다”며 “이곳은 안전하게 백두산 호랑이의 종(種)을 보존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호랑이숲 오른쪽으로 10여 분 걸으니,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피라미드처럼 생긴 알파인하우스가 나왔다. 해발 1300m인 여기엔 히말라야와 안데스, 알프스 등 세계의 고산지대 식물이 빼곡했다. 이어 하얀색 자작나무숲이 마치 눈밭처럼 펼쳐졌고, 정문까지 40여 분을 걸어 내려오는 길에 야생화 언덕과 암석원, 매화원, 단풍식물원, 약용식물원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봉화군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다. 2018년 5월 문을 연 이곳은 5179㏊(1560여 만평) 규모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립한탐식물원(6229㏊)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큰 수목원이다. 산림청이 생물자원을 보전·활용하기 위해 만들었다. 수목원 내 식물만 4174종, 620만점에 이른다. 인구 2만9500명인 봉화군에 연간 관광객을 20만명 넘게 불러들이는 효자 중 효자다. 지금까지 총 121만명이 다녀갔다.
이 수목원의 핵심은 국가보안시설인 시드볼트(Seed Vault·씨앗 금고)다. 기후 변화나 환경오염으로 인한 멸종을 대비해 만든 일종의 ‘노아의 방주’다. 작년 말 기준 5792종, 23만8368점의 씨앗이 보관돼 있다. 희귀·특산식물인 구상나무와 노랑붓꽃, 세뿔투구꽃 등도 있다. 작년 6월엔 카자흐스탄의 장미속, 사과나무속 등 79종자가 건너왔다. 야생식물 종자를 보존하는 세계에서 이곳뿐이다. 작물 종자를 저장하는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시드볼트와는 다르다.
시드볼트는 해발 700m 고지대에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46m를 내려가면 127m 길이의 터널 형태의 저장고가 나온다. 콘크리트 외벽 두께만 60㎝다. 규모 6.9의 지진이나 미사일 공격에도 끄떡없다고 한다. 보안시설인 만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에도 안 잡힌다. 씨앗 하나도 심사를 통과해야 입고가 가능하고, 출입도 인가된 직원만 가능하다. 종자 보존을 위해 저장고는 항상 영하 20도와 습도 40% 이하를 유지한다.
겨울이라고해서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예년에 10마리 정도 보이던 겨울 철새 황여새가 올해는 100마리 넘게 찾아왔다. 덩달아 사진 동호인과 탐조객도 늘었다. 산수유와 개암나무 꽃눈도 볼거리다. 수목원 측은 꽃눈과 철새를 구경하라고 휴대용 망원경을 나눠준다. 오는 17일 태범·무궁이 남매 호랑이의 4번째 생일 파티도 연다. 수목원 관리기관인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류광수 이사장은 “백두대간의 산림 생물자원은 하나도 빠짐없이 보전·복원·활용하는 체계를 갖춰, 미래 세대로 이어지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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