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해진 남성 팬츠… 에르메스-디올도 짧게, 더 짧게
남성 쇼트팬츠 SS 런웨이 휩쓸어
재킷 등 포멀한 아이템과 조화
‘우아한 남성성’ 새로운 관점 제시
Z세대를 중심으로 성(性) 구분 없이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른바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패션이 대세로 떠오르며 여성의 전유물이던 크롭트 티셔츠와 핫팬츠, 스커트 등의 아이템이 남성복에 심심찮게 등장하며 금남의 벽을 허물고 있다.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열면 쇼트팬츠를 입고 각선미를 자랑하는 남성들의 스타일링 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발 빠른 스타들도 마찬가지. 옷 잘 입는 배우로 알려진 봉태규는 지난해 한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가죽 핫팬츠 차림으로 등장해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니삭스와 하이힐 부츠까지 그야말로 ‘미친’ 소화력을 자랑하며 젠더리스 패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를 거머쥐었다. ‘댄디남’의 대명사라 불리는 배우 박보검이 한 명품 브랜드 팝업스토어 행사장에서 선보인 파격적인 쇼츠 패션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주 등장하며 쇼트팬츠 유행에 불을 지폈다.
작년부터 시작된 쇼트팬츠의 기세가 남성 패션하우스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봄·여름 시즌 맨즈웨어 컬렉션에서는 쇼츠 길이가 더욱 짧고 과감해졌다. 주목할 점은 쇼츠가 셔츠, 블라우스, 재킷 등 포멀한 아이템과 조화를 이루며 스타일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반바지 슈트 차림도 우아하고 고매하다.
여성복으로 시작해 남성복으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디올은 1960년 이브생로랑이 선보인 디올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은 트위드 소재의 반바지 셋업을 대거 선보이며 남성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폴로셔츠, 재킷, 쇼츠 위를 빼곡히 채운 주얼 장식은 샤넬과 어깨를 견줄 만큼 충분히 가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멀한 디자인의 슈트에 쇼트팬츠라는 특이점을 내세운 루이비통의 모델들 역시 한층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었다. 하우스의 상징인 다미에 패턴과 카무플라주 패턴을 결합한 다무플라주(Damouflage) 패턴이 적용된 아우터를 더해 단조로운 슈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클래식의 대명사 에르메스마저 이번 시즌엔 짧게, 더 짧게를 외치며 쇼트팬츠 대열에 합류했다. 30년 넘게 하우스를 이끈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베로니크 니샤니앙은 허벅지를 겨우 가리는 한 뼘 길이의 마이크로 쇼츠를 쇼에 올리며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에게도 노출의 기회를 공평하게 주고자 했음을 밝혔다.
드리스 반 노튼은 한술 더 떠 하늘하늘한 시스루 소재의 톱과 재킷에 쇼츠를 매치하는 식으로 남성이 가진 관능적인 미를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마린 세르와 웨일스 보너는 언더웨어를 연상시키는 복서 스타일의 브리프 쇼츠로 천연덕스럽게 무대를 메우며 진정한 남성들의 하의실종 패션을 실감케 했다.
쇼츠가 런웨이에서는 대유행이라고 해도 과연 실생활에 녹아들 수 있을까? 무대 위 남자들이 아닌 보통 남자들, 그러니까 회사에 출근해 회의와 미팅, 외부 일정을 소화하는 남자들이 당장 쇼츠를 입기란 무리일지도 모른다. 점차 빨라지는 패션 주기에 쇼트팬츠의 유행을 두고 반짝하고 사라질 유행으로 치부하는 이도 적잖다.
그러나 1960년대 패션계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저속한’ 옷차림으로 치부됐던 미니스커트가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됐듯이 젠더리스 패션이 대중화되고 있는 지금, 남성용 쇼트팬츠의 유행은 마냥 가볍게 흘려보낼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쇼츠를 입고 두 다리를 드러낸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자유로운 느낌은 누려 본 자만이 알 수 있다. 이번에는 남성들이 용기를 낼 차례다.
안미은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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