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소풍’ 김용균 감독

이원 기자 2024. 2. 14. 0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 배우 연기경력 합쳐 195년…중견감독인 저도 긴장 많이 했죠”

- 관록의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 60년 만에 고향으로의 여행
- 잔잔히 노년의 이야기 풀어내

- “알아서 잘 하겠다던 선생님들
- 두 번 찍을 필요없이 완벽 연기”

- 촬영지 남해 평산마을 어르신
- 보조출연·장소섭외에 큰 도움

- 임영웅 OST 사용 허락과 기부
- 부산연탄은행 독거노인 시사회
- “많은 분들 마음이 영화에 담겨”

“어린 적 친구는 몇십 년 만에 만나도 바로 그때 그 관계로 돌아간다. 서로 별명을 부르고, 똑같은 일에 삐치고 샘내고, 또 금방 화해하고 웃고 위로한다. 문득 혼자 된 어느 날에도 그런 친구 하나가 내 곁에 아직 있다면, 우리는 그 어깨에 기댈 수 있고 내 어깨도 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7일 개봉해 설 연휴 동안 극장가에 잔향을 길게 남기며 화제를 모으는 영화 ‘소풍’을 연출한 김용균 감독의 말이다.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이 주연을 맡은 ‘소풍’은 절친이자 사돈지간인 은심과 금순,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남해를 배경으로 수십 년 우정과 어린 시절 추억, 그리고 여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는 두 친구의 모습이 실제로도 50년 넘도록 우정을 쌓아온 나문희, 김영옥의 관계가 녹아들면서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고향에서 만난 친구 태호 역의 박근형도 큰 힘을 보탠다.

‘와니와 준하’, ‘분홍신’, ‘불꽃처럼 나비처럼’, ‘더 웹툰: 예고살인’ 등 장르를 넘나들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김 감독은 ‘소풍’이 지닌 미덕과 배우들의 호흡을 진정성을 담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름다운 노년의 우정을 현실적으로 다룬 김 감독에게 ‘소풍’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문희와 함께 찾아온 시나리오

영화 ‘소풍’을 연출한 김용균 감독. 영화 ‘와니와 준하’ ‘분홍신’ ‘불꽃처럼 나비처럼’등을 연출한 그는 특유의 섬세한 연출로 노년의 우정과 삶을 표현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소풍’은 참 특별한 영화다. 주인공인 나문희로부터 시작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나문희의 팬이 나문희를 떠올리며 손글씨로 쓴 소설 형식의 원안을 소속사에 전달했고, 이후 시나리오 작업을 거쳐 지금의 ‘소풍’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순서로 따지면 나문희, 김영옥 선생님이 이 작품을 하시기로 하고, 감독이 필요해 제게 시나리오가 오게 됐다”며 자신이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더 웹툰: 예고살인’(2013) 이후 차기작을 준비하던 중 2021년쯤 ‘소풍’ 시나리오를 봤다. 노년의 인물이 나오는 일반적인 영화들은 투자를 받기 위해, 그리고 젊은 층의 공감을 산다는 전략으로 젊은 주인공을 함께 넣는 기획을 한다. 원로 배우와 인기 있는 젊은 배우, 투톱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젊은 사람 시점으로 보게 되고, 어르신은 조연이 되거나 대상화된다”며 “‘소풍’의 특별한 점은 80대 이야기를 80대 배우들이 주인공 시점으로 펼치는 것이었다. 자기 당사자성을 지닌 영화였다”며 ‘소풍’ 시나리오를 읽고 느낀 매력을 설명했다.

‘소풍’의 특별한 점은 연출자에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투자에 어려움을 겪어 10억 원 정도의 매우 적은 제작비로 완성해야 했다. 김 감독은 “제가 주류 영화만 해서 제게도 굉장한 모험이었다.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있었다”며 “이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건 역시 배우님들 덕분이었다.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선생님이 연기하는 유쾌하면서도 가슴 아픈 복합적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면 다른 것을 놓쳐도 상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느낀 고민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 감독은 우리가 어릴 적 소풍을 앞두고 설레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사실 어르신들이 우리 중년이나 청년보다 마음이 어리고 젊다. 다시 10대로 돌아간다. 퇴행이 아니라 회복이다. 그 순수한 소녀 소년의 마음을 선생님들한테서 확인도 했고, 그래서 황혼에 들어 고향으로 돌아간 주인공들의 하루하루가 소풍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살이뿐만 아니라 죽음 또한 소풍 가는 마음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가 이 영화의 고민이고 질문이었다”고 누구나 마주할 죽음을 어떤 모습으로 맞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음을 전했다.

▮연기 경력 195년의 베테랑

절친이자 사돈지간인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세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영화 ‘소풍’.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등 세 배우의 명품 연기를 만날 수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소풍’은 63년 차 나문희, 67년 차 김영옥, 65년 차 박근형 등 연기 경력 도합 195년의 세 배우가 최초로 동반 출연한 작품이다. 수많은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추며 실제로도 절친한 친구 사이인 나문희 김영옥은 각각 서울내기 은심과 고향 친구 금순 역을, 나문희와는 처음 호흡을 맞춘 박근형은 두 사람과 학창 시절 추억이 있는 태호 역을 맡아 현실의 우정을 보는 듯한 연기를 펼친다. 관록의 배우들과 함께한 50대 중반 김 감독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선생님들께 ‘제가 어떻게 연출했으면 좋겠느냐’고 여쭤봤다. 그러면 ‘감독님이 알아서 하는 거지’ 하시며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할 거야’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베테랑들이시라 정말 마음대로 하시려고 하나’ 하는 오해를 잠깐 하기도 했다”며 촬영에 앞서 세 배우와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오해는 금세 풀렸다. 그는 “실은 당신들이 직접 경험하고, 잘 아는 이야기라 마음의 준비가 끝나서 더 터치할 것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었다”며 “저는 연출자라기보다 첫 번째 관객으로 의견을 말하면 되겠다는 태도로 접근했다”고 세 배우를 믿고 촬영했음을 밝혔다. 실제 촬영에서 두 테이크 이상 간 적이 없을 정도로 세 배우는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 두 번째 테이크도 첫 번째 테이크에서 OK였지만 혹시 편집 때 잘못될 수 있어 보험용으로 촬영했을 뿐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나문희와 김영옥이 맡은 배역이 반대였다. 지금까지 두 배우가 연기한 인물과는 반대 느낌의 캐릭터를 연기로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김 감독이 연출을 맡으면서 고심 끝에 현재의 인물로 바꾸었다. 김 감독은 “고민하다가 선생님들께 더 많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아무래도 선생님들의 이미지를 무시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와 함께 배역을 바꾸는 것을 한번 생각해 주십사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들이 쿨하게 제 생각을 존중해주셨다”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감사한 평산마을 주민과 임영웅

지난해 4월 초 크랭크인한 ‘소풍’은 대부분 남해에서 촬영했다. 특히 김 감독이 우연히 찾은 남해 평산마을이 두 친구의 고향 마을이 됐다. 김 감독은 “촬영지 헌팅을 하다가 우연히 한 마을을 발견했는데, 그곳이 평산마을이었다. 지금 농촌에는 어르신들밖에 없지 않은가. 이 마을도 70~80대 노인들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신들의 현실을 담는 이야기에 공감한 어르신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평산마을 분들뿐만 아니라 남해군, 경남도도 많은 도움을 줬다”며 감사해했다.

실제로 평산마을 어르신들은 보조출연을 비롯해 촬영지 섭외 등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야 할 대목에서 큰 도움을 줬다. 시장 장면에서도 통로 통제를 비롯해 분쟁이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큰 도움을 줬다. 그는 “어떤 것은 돈을 들여 해결해야 할 사안도 있었는데, 이분들은 돈이 아니라 정성으로 다 채워주셨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런 정성과 고마움이 영화에서 느껴지실 것”이라며 거듭거듭 감사함을 전했다.

한편 ‘소풍’에는 수많은 가요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임영웅의 ‘모래 알갱이’가 삽입돼 주목받는다. 촬영을 마친 김 감독은 우연히 지난해 6월 발표된 ‘모래 알갱이’를 들었고, 가사가 ‘소풍’ 주제와 맞기에 임영웅 소속사에 이메일을 보내는 등의 노력 끝에 OST로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임영웅은 ‘모래 알갱이’ 음원 수익금을 부산연탄은행에 전액 기부하기로 했고, 부산연탄은행은 ‘소풍’ 제작사와 부산영상위원회가 연 독거노인 초청 시사회를 후원하며 선행을 이어갔다.


김 감독은 “이런 모든 분의 마음이 ‘소풍’에 담겨 있다. 어르신들께는 추억과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삶을 잘 준비할 수 있는 마음을, 젊은 층에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관한 사색을 전했으면 한다”는 바람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소풍’에 담긴 소중한 마음이 더 많은 관객에게 잘 전달됐으면 한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