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도 매일 2시간씩… 쉼이 필요할 땐, 이 명상을

김한수 기자 2024. 2. 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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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찾는 사람들]
‘고엔카 명상’ 보급하는 이동환·이정수씨 부부
이동환(왼쪽)·이정수 부부가 가부좌를 한 채 환하게 웃고 있다. 15년간 인도에서 명상과 요가 수행을 한 부부는 “많은 분이 명상과 요가를 통해 현재에 머무르는 수행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고엔카 선생님의 첫인상은 ‘아기 코끼리’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명상가라면 떠올리기 쉬운 ‘마른 체형에 날카로운 인상’이 전혀 아니었지요. 그렇지만 수백 명에게 직접 명상을 지도할 때 일어나는 파장은 엄청났고, ‘담마(진리)를 공짜로 살포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바로 ‘비 해피(Be happy)’란 말씀이 떠오릅니다.”

이동환·이정수씨 부부는 1996년 고엔카를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두 사람은 2003년 한국인 최초로 고엔카 위파사나의 ‘지도 법사(assistance teacher)’로 임명받은 커플이다. ‘위파사나’는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으로 부처님 때부터 전해오는 것으로 알려진 남방불교 명상법이다.

위파사나를 현대화-표준화한 고엔카(왼쪽)와 부인의 모습. 이동환씨는 "고엔카 선생의 첫인상은 '아기 코끼리' 같은 푸근함이었다"고 말했다. /이동환씨 제공

부부는 당초 1994년 요가를 배우기 위해 각각 인도로 향했다. 인도에서 현대 요가의 대가 아헹가(1918~2014) 문하에서 요가를 배우던 그들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위파사나’와 ‘고엔카’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고엔카 명상에 입문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인도에서 평생을 함께할 세 가지, 요가와 명상 그리고 배우자이자 도반(道伴)을 얻었다. 부부는 인도 생활 15년 만인 지난 2009년 귀국해 명상과 요가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고엔카 위파사나는 EQ(감성지수) 창시자인 대니얼 골먼 등 서구 명상의 선구자들이 1960~70년대 인도로 찾아가 ‘10일 코스’에 참여하는 등 서구 지식인 사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고엔카 위파사나 지도법사인 이정수씨가 지난 2017년 말 인도 수행처에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를 만난 모습. 고엔카 위파사나 수행자들은 1년에 한 번씩 장기 수행을 한다. /이정수씨 제공

최근엔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등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발 하라리가 고엔카 명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라리는 자신의 지적(知的) 성과의 바탕에 명상이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하루 2시간, 1년에 한 달은 명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엇이 지식인들을 고엔카 명상으로 이끌고 있을까. 이동환씨는 “출가자가 아닌 재가자 위주로, 불교적 색채를 배제함으로써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까지 누구나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점, 10일이라는 짧은 기간, 전 세계에서 똑같이 운영되는 프로그램으로 보편화한 점 등이 고엔카 위파사나 확산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고엔카 명상은 인터넷(www.dhamma.org)으로 접속하면 전 세계 240개 명상센터에서 진행되는 코스 일정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전북 진안의 담마코리아 명상센터에서 진행된다. 코스는 첫 사흘은 호흡, 나흘째부터는 몸의 감각을 관찰한다. 감각 관찰을 위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캔하듯이 주의를 옮겨가며 집중하는 훈련을 한다. 매일 저녁엔 고엔카의 생전 육성 법문 녹음을 1시간 20~30분씩 들으며 그날의 수행을 확인한다. 한국어 버전은 이동환씨가 번역·녹음했다.

이동환-이정수씨 부부가 요가 동작을 취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이동환-이정수씨 부부가 요가 동작을 취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감각을 관찰하는 이유는 밖으로 빼앗기는 주의를 내면으로 돌리기 위해서다. 감각과 마음은 연결돼 있는데 순간순간 갈망과 혐오라는 불순물을 일으킨다. 흔히 갈망하는 것을 얻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괴로움의 씨앗일 뿐이고 방치하면 매듭이 계속 꼬여서 풀 수 없게 된다. 명상을 통해 정확히 관찰하면 이 불순물들이 뭉쳐 응어리(상카라)가 되지 않고 사라진다. 고엔카는 ‘휘발유와 물’의 비유도 든다. 평정심이 마음 깊은 곳이 아니라 표면에서만 유지된다면 ‘휘발유통’을 품고 다니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 휘발유통에 응어리진 마음의 불꽃이 튄다면 폭발하고 불이 붙는다. 그러나 불은 연료의 양만큼만 타게 마련이다. 명상은 연료통을 비워가는 과정이다. 계속 비우면 언젠가부터 사랑과 연민의 차가운 물이 차오른다. 이때는 불꽃이 튀어도 바로 꺼진다.

고엔카는 생활 속의 명상을 강조했다. 이씨 부부는 “특히 자기 전의 명상은 하루 동안에 쌓인 불순물을 제거하고 하루를 마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우리는 서로 다른 방에서 아침 저녁으로 명상을 한다”고 말했다. 고엔카의 부인은 한 동영상에서 “남편이 명상을 한 이후로는 화를 잘 안 낸다”며 소박하게 말한 적 있다. 이정수씨는 “우리도 부부 싸움 한다. 그렇지만 화를 냈다가도 바로 멈춘다”며 웃었다.

부부는 “최근 ‘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고 명상을 해보고 싶어졌다’며 10일 코스를 신청하는 분들이 늘었다”며 “한국에서도 하라리처럼 유명한 사람이 이 좋은 명상법을 체험하고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10일 코스 참가자가 는다고 해서 부부의 수입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고엔카 명상의 특징은 모든 프로그램이 숙식비도 없이 무료로 자발적으로 운영된다는 점. 이씨 부부를 비롯한 10여 명의 지도 법사들과 통역, 진행 요원들은 진안 담마코리아 명상센터에서 보수 없이 자원봉사한다. 센터는 참가자들이 코스 참가 후 기부한 금액으로 운영된다. 이씨 부부는 “저희는 명상의 혜택을 봤기 때문에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다”며 “생활비는 요가 지도와 강의 등을 통해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이동환-이정수씨 부부가 최근 펴낸 '요가 해부학' '요가 인문학' 표지. 부부로부터 요가를 지 받고 있는 박찬욱 감독과 노희경 작가가 추천사를 썼다. /판미동

부부는 최근 요가의 역사와 핵심 정신을 정리한 ‘요가 인문학’ ‘요가 해부학’(이상 판미동출판사)을 펴냈다. 이 책에는 부부에게 요가 지도를 받는 박찬욱 감독과 노희경 작가가 추천사를 써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명상 10일 코스 만든 ‘영적 스승’ 고엔카]

S. N. 고엔카(1924~2013)는 미얀마의 부유한 인도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청년 사업가로 성공한 그는 30대 초반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던 중 우바킨 선사(禪師)의 위파사나 명상 지도를 받으면서 두통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 우바킨 문하에서 14년간 수행한 그는 1969년 인도로 이주해 ‘10일 코스’를 선보이며 세계적 위파사나 선풍을 일으켰다. 달라이 라마, 틱낫한 스님 등과 함께 이 시대의 위대한 영적 스승으로 꼽힌다. 고엔카 명상은 그의 사후에도 1400여 지도 법사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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