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폭력… 괴물같은 인간, 건조하게 그리기가 전략

이영관 기자 2024. 2. 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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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승부사들] [15] 웹툰 ‘신성한, 이혼’ 작가 강태경
왼쪽은 웹툰 ‘선산’의 주인공 윤서하, 오른쪽은 웹툰 ‘신성한, 이혼’의 주인공인 변호사 ‘신성한’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2인분 같은 1인분을 주는 웹툰 맛집이 있다. ‘강태경’이다. 글 작가 ‘강’(여·34)과 그림 작가 ‘태경’(남·40)으로 구성된 팀. 각각 작가의 성과 이름에서 따온 필명이다. 둘이지만, 모든 작품의 글과 그림 작가 이름에 강태경을 적는다. 그 때문에 한 명이란 오해를 종종 받는다. 최근 경기도 일산의 한 모임 공간에서 둘을 만났다. 언론과의 첫 대면 인터뷰. 강은 “작가가 남자라서 내용이 이렇게 전개된다는 댓글이 달리곤 한다. 웹툰 작가들도 종종 저희를 한 명으로 오해한다”고 했다. 태경은 “처음부터 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다. 웹툰을 보시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강태경은 웹툰 분업에서 독특한 사례다. 최근 웹툰계에선 웹소설 원작 웹툰이 잇따라 제작되고, 매 작품마다 다른 작가와 협업을 하는 일이 잦다. 하나의 웹툰에 대한 작가 개인의 지분이 줄어들고, 작품에 담긴 작가의 색깔이 옅어지는 이유다. 그러나 강태경은 2013년 ‘그것들’로 데뷔해 지금까지 6개 웹툰을 함께 만들어 왔다. 이혼 소송을 소재로 삼은 웹툰 ‘신성한, 이혼’은 국내 누적 조회 수 약 4500만회를 기록했고, 작년 드라마로 제작됐다. 카카오의 만화 플랫폼 픽코마에서 일본 기준 누적 좋아요 수 10만여 개를 기록하며 호평받았다. 최근엔 연상호 감독 등이 쓴 ‘선산’ 시나리오를 각색해 웹툰 글 작업을 했다. 그림은 조눈·리도 작가. ‘선산’은 북미, 일본, 중국, 프랑스, 대만 등 해외에서 연재를 앞두고 있다.

-어떻게 둘이 작업을 시작했나.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선후배 사이다. 대학 졸업하고 작은 영상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파투가 났다. 미대 가겠다고 5수를 해서 그때 나이가 서른이었다. 돈이 없어 생계 고민으로 주저앉았다. 꿈은 만화가였지만, 다른 사람들 만화를 보며 ‘나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강이 웹툰 데뷔를 해야 한다고 북돋아줬다. 함께 해보자고 강을 꼬셨다.”(태경)

“(태경에게) ‘일 안 하면 죽을 거야?’란 생각으로 웹툰 해보라고 했다. 오히려 저는 꿈이 없었다. 책을 좋아해 글 쓰며 살고 싶다고만 생각했는데, 웹툰을 함께 하게 됐다.”(강)

-팀으로서 작업 방식은.

“강이 하루 이틀 동안 글을 쓰면, 제가 5일 정도 연출하고 그린다. 강이 계획을 세우면 제가 끌려가는 식이다. 데뷔작을 끝낸 뒤에도 함께 말로만 얘기한 것을 강이 혼자 기획안으로 내버렸다. 제가 소재를 말하고 잊고 있던 것도, 강이 취재를 알아서 한다. ‘신성한, 이혼’이 그렇다. 데뷔 초 ‘아침마당’ 같은 TV프로그램에서 부부 갈등을 많이 접했다. ‘이혼은 서로의 밑바닥을 봐야 가능하다’는 말이 와 닿았었다.”(태경)

“글만 쓰기 때문에 다음 작품을 구상할 시간이 있다. ‘신성한, 이혼’ 때는 법 공부를 위해 각종 판례를 긁어 모으고, 변호사 등에게 자문을 많이 했다. 웹툰에 각색해서 담은 것보다 기상천외한 사건이 더 많더라.”(강)

강태경이 직접 그린 캐리커처. 외계인을 연상시키는 그림과 달리 실제 강은 긴 생머리, 태경은 짧고 단정한 머리였다.

강태경은 웹툰 후기 등 소통 공간에서 독자를 ‘왕자님’ ‘공주님’이라고 지칭한다. 이런 경쾌한 호칭과 정반대로, 작품들은 대체로 무거운 분위기여서 이질감을 유발한다. ‘신성한, 이혼’은 온갖 이혼 소송을 중심으로, 인간의 민낯과 밑바닥을 그린다. 이들은 SF적 요소부터 살인 등 현실적 요소까지 다양한 소재를 통해, 웹툰에서 세 가지를 추구한다고 했다. 괴물·범죄·하드보일드(폭력적 주제를 무심하게 묘사하는 것). 태경은 “문자 그대로 괴물, 그리고 괴물의 탈을 쓴 인간에 대해 그리되 건조하게 바라보려 한다”고 했다.

-독자를 왜 ‘왕자님’과 ‘공주님’으로 부르나.

“기자님도 왕자님이다(웃음). 누구에게나 마음을 절뚝이게 하는 사건은 있고, 그런 제게도 공주처럼 왕관을 쓰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독자들에게도 상처를 굳이 치유할 필요 없이, 안고 살아가야 한다며 북돋고 싶었다. ‘힘내! 어차피 인생은 거지 같은 거야’라는 느낌의 응원이다.”(강)

“저희는 냉소적인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다. 이야기의 방향이 항상 그쪽으로 흐른다. ‘신성한, 이혼’에서도 저희는 모든 등장인물에 대해 냉소적이다. 완전무결한 인간은 없다고 생각한다.”(태경)

-웹툰 ‘선산’에선 이야기의 흐름을 이끄는 내레이션의 힘이 돋보였다.

“원작이 주는 영감이 많은 작품이었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작품을 글로 구성했는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작품마다 플롯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내레이션을 잘 쓰기 위해 연구한다.”(강)

“(강이) 기존 만화 문법에 익숙하지 않아서 가능한 거라고 생각한다. 문체가 소설 같다. 저를 비롯한 만화가들은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자기 고집이 강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강은 굉장히 유연하다. ‘한 가지 이야기만 하면 한 가지만 하는 작가가 된다’는 걸 강이 알려준다.”(태경)

-웹툰의 영상화가 잇따르는 요즘, 기대와 우려가 있다면.

“영상화는 웹툰 작가로선 또 다른 기회다. 처음 웹툰을 시작한 1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크게 달라졌다. 웹소설과 웹툰이 섞이면서 새로운 장르가 펼쳐졌다. 또, 웹툰 작품의 다양성은 최근 축소되고 있지만, 사업 자체가 커져 기회가 열린 부분은 긍정적이다. 저는 작품 공백을 1년 넘게 가져가지 않으려고 한다. 웹툰 생태계는 바뀔 테니, 지구력 있게 버틸 생각이다.”(강)

“만화가들은 보통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씩은 있다. 저희는 데뷔작이 그렇다. 핵전쟁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포스트 아포칼립스(종말 이후의 세계)에 관한 것이다. 저희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넣으며 행복하게 연재했다. 그러나 한국의 시장은 현실적이고 있을 법한 이야기에 집착해, 작가와 독자가 좋아하는 작품의 괴리가 있다. 제 개인적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만화를 만화 자체로 인정해주지 않아 안타깝다. 팔리지 않을 이야기인걸 안다. 그러나 언젠가 돈에 구애받지 않을 때 저희의 원류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태경)

☞강태경

웹툰 글 작가 ‘강’(34)과 그림 작가 ‘태경’(40)으로 구성된 팀이다. 각각 작가의 성과 이름에서 따온 필명으로, 각자의 이름 대신 ‘강태경’이란 팀 이름만을 작품에 사용한다. 2013년 레진코믹스에 ‘그것들’을 연재하며 데뷔, 카카오웹툰에 ‘신성한, 이혼’ ‘선산’ ‘구독과 좋아요’ 등 작품을 연재했다. ‘신성한, 이혼’은 국내 누적 조회 수 약 4500만회를 기록했고, 작년 드라마로 제작됐다. 최근 글 작가를 맡은 ‘선산’은 북미, 일본, 중국 등 해외 진출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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